
살아가면서 무엇을 얻어야 했는가?
그리고 무엇을 잃어야 했는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얻고 싶은 걸 얻으면서
잃고 싫지 않은 걸 잃어버리면서
무지개의 끝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저멀리 무지개 끝에 기다리고 있을 나만의 특별한 그 무엇을 향해...
거대하고 영롱한 무지개빛 끝나는 저편에
정말 내가 바라는 것이 있을까?
만약, 그곳에 도착한다면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지금까지 겪었던 무지개의 끝처럼 끝은 또다른 시작이었듯이 다시 더 큰 새로운 무지개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내 경험상 아마도... 또 그럴 것 같다.
흐르는 물처럼,
봄이면 다시 피어오르는 새싹처럼,
다시 맑아지고 다시 흐려지는 하늘처럼,
끝을 모르는 끝을 향해 시작하고 또 시작하겠지?
무지개의 끝은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될 수도 있는 거다.
즉, 인생의 목표점은 누구나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건 추억과 인연일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남겨져 다른 누군가의 목표를 위해 쓰여질 것이다.
벗어나기 전에는 벗어나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모른다.
포기와 기권도 스스로 할 수 있지만
내가 말하는 궁극적 의도는 절망하거나 기권하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임무든 이상이든 간에 중도에 스스로 끝내는 걸 기권이라 한다.
이 끝은 스스로 정할 수 없는 것이고
자연스런 환경이 끝을 알려주며 정해주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낮과 밤을 시작하고 끝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깐 스스로 목표의 끝을 정하는 거라더니
이젠 말이 틀리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무지개의 끝을 이상적인 목표점으로 정했을 때
무지개의 큰 활은 주위 환경의 울타리이다.
여기서 저 끝(목표)으로 이어지는 환경의 제약을 통해서
무지개의 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지개를 따라가고 있는 현재 그 자리가
멀리서 보는 누군가에겐 무지개의 끝일 수도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을 벗어나서 살 수는 없다.
사람을 벗어나서 사회생활을 단절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일 것이다.
당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관계(가족, 친구, 동료, 고객 등)와 임무 역할이
누군가에겐 평생을 쫓아온 무지개의 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람에겐 공감대가 있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나도 편하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로
불편한 것이 다반사이다.
세상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고 목표는 멀리에도 있지만
가까이에도 있습니다.
마음 편하게 이 세상과 인사할 수 있을 때,
그 때가 바로 무지개의 끝에 다다른 곳이 아닌가 싶다.
자연스럽다는 말처럼 자신이 사라져도
자연(세상, 사회)이 좋아하는 스스로가 되었을 때가
모두에게 공통된 궁극적 목표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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