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세모(歲暮)의 비탄(悲嘆)

윤화숙 |2007.12.31 22:15
조회 66 |추천 0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그야말로, 다사다난 했던 정해년을 넘기고 무자년 새해를 맞게 되었다.


1997년 11월, 우리나라에 IMF외환위기가 도래하였으니 올해로 만 십년이다.


그 당시, ‘늦어도 10년 내에는 그 후유증을 극복하고 재기하리라!’고 굳은 결의를 했었고, 그래서 하루가 십년과도 같은 힘든 나날도 꿋꿋이 참아내며 이 날까지 견뎌 왔는데....


그 십년이 이제, 막 지려 하는데.....

 

나는 아직도 그 수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체 이렇게 해매고 있으니....

 

한없는 자괴감과 함께, 크나 큰 허탈감이 몰려온다.



1998년, 우리보다 한발 먼저, 일본의 국내 경기가 곤두박질을 쳤다.


그 여파로 거의 30년이나 건재했던 우리 회사의 주요거래처도 도산을 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한국발 환란을 또 다시 맞게 된 것이다.



  그 이후, 국가의 외환 부족과 시중은행의 신용장 개설 기피 등으로, 미국에서 내가 주력했던 한일 대상의 곡물거래는 일시에 중단되고 말았다.


그 해 12월에 한국정부는 미국의 농산물 수출금융인 GSM-102 자금 10억 6천만 달러를 활용하기로 미 정부와 합의를 하였으나 우리 같은 민간기업에까지 그 혜택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부득이, ‘국제곡물유통업계에서 우리 국적 메이저의 탄생을 내 손으로 달성해 보리라!’던 내 꿈의 날개를 중도에 접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 거의 일년간을 사업을 정리하느라 아무런 소득도 없이 미국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1998년 말, 그간 모아 두었던 돈과 시간을 거의 다 소진하고 완전히 빈손으로 귀국했을 때 참으로 막막했다.


한국경제가 거의 다 망가져서, 돈이 있다고 해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어려원고, 능력이 있다고 해서 쉽게 취업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두문불출을 하고 있었는데, 중국의 한 지방정부에서 통상자문관 자리를 주겠으니 와 달라는 연락이 왔다.


구미가 당기어 1999년 초, 심양으로 날아갔다.


어느 지방도시에서 직영하는 200만 무(1억 평?)인가의 농지에다 내가 추천하는 농작물들을 모두 다 재배하겠으니, 그걸 한국에 수출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대우도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쾌히 승낙을 하고 돌아와서 다시 출국보따리를 싸자니, ‘이렇게 해외를 유랑하다 생을 마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기가 막혔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한국정부에서도 개방형 계약직공무원을 공모한다는 공고가 났다.


이왕이면, 한국에서 생활하고 싶었던 나는 출국준비를 잠시 미뤄두고 일단, 거기에 한번 응모해 보기로 했다.


응모자 중에서 나이도 가장 많고 객관적인 조건에서도 나보다 나은 사람이 없지 않았음에도 최종 단계에서는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내가 임용이 되었다.


대우보다는 일에 대한 보람을 더 중시했던 나로서는 우리의 가장 큰 경쟁상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보다는 우리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이 좋았다.


비록, 내가 미국에서 가졌던 원대한 포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국제시장에서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우리 인삼산업을 한 단계 더 높이 고도화시킨다는 임무를 맡은 것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더욱이, 내가 사업에서 부도를 내고 도피 중이라는 헛소문을 잠재우는 데도 공무원이 되는 것 이상으로 더 좋은 선택이 없었다.



어떤 제품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일은 어디까지나, 기업이 해야 할 일이고 정부는 단지, 그에 필요한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그러한 기업 활동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지역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소위, 플레이스 마케팅 효과를 도모하는 것이 일반 자본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경제정책이다.


그런데도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 관료들이 기업과 공동으로 어떤 사업을 한다는 데 큰 경계심과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정부의 가용자원과 시간을 대부분, 별 효과도 없는 정책부문에 다 써버리고 정작,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연구개발 부문에는 좀 벅차기는 했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관심과 투자를 병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최종 단계에서 그걸 다시, 정부정책과 접목시키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또 어떤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 개인기업은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산출을 얻기 위하여, 제약적인 자원과 시간을 전략적으로 투입하는 게 원칙인데 반하여, 공공기관은 목표지향적인 과업 수행보다는 절차와 규정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8년을 예정했던 나의 목표가 4년 만에 달성되었고 미련 없이,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곧 바로 그 동안의 연구개발 성과를 산업화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처음에는 나의 의도대로 산. 학. 관. 연 간의 협력관계가 순조롭게 이루어졌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그 방향이 내가 당초 그려놓은 구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전히, 내가 충분히 이해를 시켰다고 생각한 플레이스 마케팅 개념을 관련 공무원들이 끝내, 소화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짐을 모두, 나 혼자서 떠맡게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투자자 모집 단계에서는 그 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던 벤처투자 부문이 국민들의 관심으로부터 크게 멀어지고 있었다.


그 바로 일년 전, 중간기술을 산업화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사업설명회장이 미어졌고, 단번에 50여 억 원의 자금이 모아졌지만 막상 최종 완성 기술을 산업화하는 데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도 얼씬하지 않았다.


어떤 사업이든, 적정 사업규모가 있게 마련이어서, 그 보다 작게 또는 크게 했을 때에는 그에 따른 비효율이 불가피함에도 어쩔 수 없이, 계획사업의 규모를 대폭 다운사이징 할 수 밖에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최초투자비와 그 2.5배 정도의 시장진입비용을 마련해서 공장을 건설하고 시제품을 출시했다.


그러나 선도기업의 기득권은 너무도 완강했다.


그럴 줄 알았다면 애초부터 시장진입비용을 최소한 초기투자비의 3배 이상 확보를 한 후에 시작하는 건데.....

 

 


그리고 기존 유통업계의 관행 역시, 제조업체나 소비자에겐 너무나 불리한 것이었다.


소위, “먹튀(엉터리 제품을 만들어 팔아 대박을 내고 곧 바로 잠적해 버리는 행위)”가 아니면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것은 곧, 악덕 유통업자만 배불리는 것일 뿐 선량한 소비자나 공급자는 모두 피해자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년 말, 또 다시 용단을 내려 공장 매출액의 대종을 소재판매로 바꾸고, 완제품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내가 직접 챙길 수 있는 다이렉트 마케팅 네트워킹 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리고 올해 내로 그 손익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10개 내외의 대리점을 개설하는 것으로 이 지긋지긋한 십년의 고난을 마감하려고 했었는데.......

  

오늘 현재, 그 목표의 반도 채 이루지 못한 채, 지금 이 시간 저무는 정해년의 끝자락을 속절없이 맞고 있는 것이다.



제삼자 수치에 의하면, 오늘 날 사업을 시작해서 정상궤도를 진입하는 데에는 약 7년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나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때문에, 난 그걸 단 3년 만에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사업을 시작했다.


작년에는 최소한, 창립 5주년이 되는 금년 말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 목표를 쟁취하고야 말리라고 굳은 결심을 했다.


그러나 나는 끝내, ‘어떤 일이 있어도, 10년 안으로 IMF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리라!’는 내 자신과의 약속을 끝내 지킬 수 없게 되고 만 것이다.


그것도, 결코 크다 할 수 없는 약간의 마지막 자금조달을 이룩하지 못한 나의 이 못남 때문이라 생각하니 더욱 내 자신이 밉고 또한, 한없이 초라해진다.



‘내년에는 기필코.....’

 

이렇게 맘속 다짐으로, 다시 한번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어 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그 뒷맛은 쓰디쓰기만 할 뿐인데, 이를 어쩌랴!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