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대조영의 아쉬운 종영

신용연 |2008.01.01 19:07
조회 222 |추천 2


대조영의 아쉬운 종영

 


                       2007년 12월 26일 수요일 심리학자 김태형님의 글

                                      

발해를 소재로 한 대하역사드라마 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으나 은 걸출한 역사드라마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은 사상적으로는 자주적·민중적 입장을, 사회적으로는 건강한 지도자와 민중의 결합이 낳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역사극에서는 보기 드물게 캐릭터를 생생하게 묘사했고 각 인물들이 가진 심리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민중의 지도자, 대조영


 

발해에 대한 사료가 많지 않으므로 대조영에 대한 인물묘사는 주로 작가적 상상력에 의존했을 가능성이 많다. 드라마에서 대조영은 권력욕에 불타는 야심가가 아니라 백성을 위해 한 몸 바치는 정의로운 지도자로 묘사되고 있다. 즉 대중의 지지를 받는 민중의 지도자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설정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고려해볼 때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첫째, 대조영은 기성체제에 근거지를 가지고 있지 못한 인물이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나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나름대로 기존 체제에 인적, 물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즉 두 사람 다 지방호족으로서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데 필요한 근거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조영은 이름난 고구려의 귀족 출신도 아니었고 특정 지역에 탄탄한 기반을 꾸리고 있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민중적 지지를 획득하지 못했다면 건국을 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둘째, 대조영은 고구려가 망한 조건에서 새로 나라를 세워야만 했다. 왕건이나 이성계는 이미 허약해지고 있는 나라의 내부에서 힘을 키우다가 쿠데타나 반란을 통해 새 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대조영은 이와는 달리 아예 망한 나라를 다시 세워야 했으므로 그것은 참으로 험난하고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조건에서 건국사업을 추진한 대조영은 민중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덕망 있는 지도자였을 가능성이 많다.


셋째, 대조영은 초강대국인 당나라의 견제와 탄압 속에서 건국사업을 추진해야 했다. 왕건이나 이성계의 건국사업은 외세의 탄압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대조영은 당시 동아시아의 유일 초강대국이었던 당나라의 집요한 방해와 공격을 이겨내며 건국을 해야만 했다. 따라서 대조영이 투철한 민족자주적 입장과 민중의 힘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면 발해를 건국하지 못했을 것이다.


넷째, 대조영은 여러 이민족들을 통합한 나라를 건설했다. 발해는 고구려, 백제 유민들만이 아니라 말갈 등 여러 부족들이 포함되어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이런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대조영이 인종, 민족차별주의자가 아니라 개방적이고 포용력을 가진 인물이었을 가능성을 암시해준다.

 

 

따라서 드라마가 주인공인 대조영을,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며 그들로부터 존경받는 정의롭고 덕망 있는, 민중적 지도자로 묘사한 것은 전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 같다.


 

영원한 맞수, 대조영과 이해고


대조영의 영원한 적수로 등장하는 이해고는 운명적인지는 몰라도 대조영과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기 때 부모와 헤어져 다른 사람의 손에서 자랐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의 성장과정에는 서로 다른 변수들이 작용했기에 이후 두 사람은 도저히 화합할 수 없는 라이벌로 만나게 된다.


대조영은 비록 연개소문의 몸종 신분으로 자랐으나 연개소문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 속에 자라난다. 대조영에 대한 연개소문의 사랑이 얼마나 유별났던지 대조영 본인뿐만 아니라 연개소문의 아들인 연남생에게도 보일 정도였던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한 연남생의 비뚤어진 태도와  대조영에 대한 강한 질투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연개소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대조영은 그를 아버지처럼 여기게 되고, 자신의 탄생에는 뭔가 말 못할 중요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게 된다.


반면에 이해고는 대조영과는 달리 상류층의 일원으로 자라났다. 이때 거란족 왕인 이진충은 인격적으로 건강한 편이어서 이해고의 역할모델이 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이었던 이진충이 직접 이해고를 양육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므로 고아인 이해고가 그를 아버지로 여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조건들 때문에 이해고는 필연적으로 심한 결핍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결핍감을 보상하기 위해 그의 심리적 에너지는 모조리 소꿉놀이 친구이자 거란국의 공주였던 초린을 향했던 것 같다. 따라서 이해고에게 있어서 초린은 자기 삶의 모든 것이자 이 세상 모두와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던 셈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초린만 얻을 수 있다면 이해고는 세상이 망하든 흥하든 상관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대조영은 청년기에 진입하며 어머니, 아버지와 감격적인 상봉을 한다. 비록 긴 시간을 같이 하지는 못했으나, 어머니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진 고문을 이를 악물고 견뎌내며, 죽음까지도 기꺼이 맞이하는 그런 훌륭한 분이었다. 아버지 또한 상상 속에서 그려보았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고구려 최고의 무장이었다. 따라서 연개소문의 사랑 속에서도 만족스럽게 채워지지 못했던 결핍은 부모와의 재회를 통해 상당부분 만회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대조영이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부조리한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이해고는 심리적 문제점이 악화되고 있는 어른이 되어서야 자기 부모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기가 막히게도 아버지는 조국인 고구려를 배신한 사람이었다. 이해고는 이미 악화되고 있었던 심리적 상처 때문에 아버지 문제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없었고 그것은 그의 상처를 더 악화시켰다.

그러나 이해고에게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준 것은 역시 초린 문제였다. 그에게 있어서 자기 인생의 전부였던 초린을 대조영에게 빼앗긴 것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거대한 상실이었다. 게다가 훌륭한 아버지인 대중상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대조영을 보는 것만으로도 부모 문제로부터 생겨난 그의 결핍감과 열등감이 극심하게 자극되었을 테니, 대조영에 대한 이해고의 질투와 분노는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심각했을 것이다.


그러면 왜 초린은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라난 이해고가 아니라 생면부지였던 고구려인 대조영에게 마음이 끌렸을까?


초린은 아버지 관계가 매우 좋은 친아버지 딸이다. 그런데 대조영은 INFJ(순교자)로서 초린의 아버지인 이진충과 성격이 같다. 따라서 대조영에게서 은은히 펴져 나오는 친밀감과 익숙함은 아버지와의 다정한 관계 속에서 자라난 초린으로서는 참으로 거부하기 힘든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에 더해 대조영과 초린은 서로 ‘그림자'(Shadow)에 해당하는 성격이다. 내향(I)-외향(E), 직관(N)-감각(S), 감정(F)-사고(T)의 대립쌍 중에 대조영은 한 편인 INFJ(순교자)이고 초린은 다른 편인 ESTJ(보안관)인 것이다. 대조영과 초린은 심리적으로 건강한 인물이므로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반대성격을 무의식적으로 원했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두 사람은 서로가 상대방을 성격적으로도 강하게 끌어당겼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INFJ(순교자)는 연애할 때 그리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편이 못 되므로 수동적인 연애를 많이 한다. 또한 대조영은 어머니와의 관계가 결핍된 아들이므로 더더욱 여성과의 관계에 서툴렀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대조영으로서는 초린처럼 적극적이고 당찬 성격을 가진 여성의 구애를 거부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연애에 있어서 대조영과 초린이 모두 도덕적, 심리적으로 건강했던 것이 중요한 전제조건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초린이 점차 이해고를 사랑하게 되고 결국 그와 함께 죽는 길을 택한 것은 분명 이해고에 대한 그녀의 사랑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초린의 성격이 책임감의 화신인 도덕적인 ESTJ(보안관)임을 고려해보면 그녀의 행동에는 자신을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았던 이해고에 대한 책임감이 짙게 배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해고는 대조영과 숙명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된 이해고의 콤플렉스는 초린이 대조영을 선택하자 급기야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했고, 그 해결되지 못한 심리적 상처는 해를 거듭할수록 악화되었다. 사실 이해고는 기본적으로 건전한 가치관과 도덕 그리고 합리적인 판단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성격적으로 보더라도 심지가 강하고 합리적인 특성을 가진 INTJ(장군)가 아닌가. 그런 이해고가 신홍 같은 간신배에게 휘둘려, 대조영과 단결해 당나라에 맞서자는 이진충, 초린, 검이의 합리적인 주장을 거부하고 파멸의 길로 치달았던 것은 역시 ‘논리적인 판단’의 잘못이 아니라 그것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강력했던 대조영에 대한 분노와 질투심 때문이었다.


비록 대조영과 이해고의 관계에 국한해 살펴보았지만 드라마 은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얽히고설킨 개인사를 놓치지 않고 정교하게 그려냈으며, 사람들 간의 애증관계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이것 또한 높이 평가받아야 할 의 미덕이라 할 것이다.


몇 가지 아쉬운 점

그러나 별다른 흠 없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던 드라마 은 100회를 넘어서면서부터 몇 가지 문제를 드러냈다. 눈에 띄게 긴장감과 속도감이 떨어져 다소 지루한 감을 주기 시작했다.


특히 아쉬운 점은 주인공인 대조영에 대한 묘사와 관련된다.


드라마 속에서 대조영은 아주 진지하고 침착한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이 좀 지나쳐서 그런지 때때로 그가 재미없고 우울한 캐릭터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몸종의 신분으로부터 발해의 국왕으로까지 성장한 인생역정으로 보나 인격적, 성격적 특성으로 보나 대조영은 분명히 경쾌하고 낙천적인 면모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조영은 똑똑하고 건강한 INFJ(순교자)이므로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잘 다독거리는 성품을 타고 났으며, 온갖 시련과 난관을 이겨내면서도 결코 굴하지 않았던 강인한 사람이었으니 단단한 자신감과 낙천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대조영이 우울한 사람이었다면 부하들과 백성들의 열정을 불러일으켜 대업을 완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중하고 무거운 모습에 비해 밝고 낙천적인 풍모를 균형감 있게 그려내지 못함으로써 대조영을 다소 우울한 사람처럼 보이게 한 것은 아쉽다.


대조영은 명령과 권위를 통해 좌중을 호령하는 호랑이 같은 용장이 아니라 스스로가 모범을 보이며 설득과 감동으로 대중을 움직이는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는 덕장이다. 그런데 이런 대조영에 대한 그림은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100회를 넘어서면서부터 상당히 변질되었다. 부하들이 자신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반대하기까지 하는데도, 대조영이 권위와 호통으로 사람들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자주 보였던 것이 하나의 예일 것이다. 특히 미모사와 같은 전략가를 충분히 납득시키면서 일을 추진하지 않아 그와 반복적으로 갈등을 겪었던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대조영의 감정통제력이 후반부로 갈수록 약해지는 것처럼 그려진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젊은 시절 대조영은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복수는 잊으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여 어머니를 죽인 만고의 원수 부기원조차 용서하려 했었다. 그랬던 그가 대업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수하들의 죽음을 보고는 이성을 잃고 울부짖으며 군사적으로 모험주의적 판단을 내리고 직접 행동에까지 나섰던 것은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부하들의 울부짖음과 지나친 흥분을 진정시켜야 마땅함에도 대조영 자신이 가장 감정적으로 행동했기에 부하들은 울 기회조차 갖지 못했고 대조영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과 아픔도 묵묵히 감내하며 속으로 삭이던 대조영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자기 감정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일관성과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흑수돌을 구하겠다며 대조영과 걸사비우 단 두 사람이 말을 타고 전선으로 달려갔던 것이나 적진 한복판에 뛰어들어 흑수돌의 시체를 탈취해온 것은 대업을 한 순간에 수포로 돌릴 수도 있는 억지스러운 장면임이 분명하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고구려가 망한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던 드라마의 에너지와 상승기류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막상 대업을 완성하는 중요한 시점부터는 상당히 우울하고 맥빠진 분위기로 바뀌기도 했다.


그러나 몇 가지 결점에도 불구하고 은 한국의 대하역사드라마 분야에 뚜렷한 자취를 남길 것이다. 드라마 은 시청자들에게 소중한 희망과 교훈을 주었으며, 거세차게 흘러가는 역사무대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정확히 묘사했고, 사상적으로 수준 높고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대사를 구사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몰입과 공감을 자아냈다.


과거 김수현의 드라마들은 인물 특히 성격에 대한 묘사를 사실적하고 탁월하게 함으로써 많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그녀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치 사회나 역사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인 것처럼 개인적, 가족적 영역에서만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드라마가 보여준 사실주의적 인물묘사는 비현실적인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시대의 요구와 사회모순에 정면으로 맞선 인물들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묘사한 이 김수현 드라마의 한계점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찬일까?


애청하던 드라마 이 막을 내리니 마음 한 켠이 공허해진다. ‘만인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대조영의 마지막 대사를 기억하며, 이를 뛰어넘는 드라마가 다시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아! 대조영 같은 지도자를 드라마가 아니라 암울한 한국의 사회현실에서 만나게 될 날은 언제일까?


추천수2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