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훈도, 아키야마도 모두 나예요.” 하지만 그는 ‘한국의 아키야마, 일본의 추성훈’으로 불리는 영원한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종합격투기 선수 추성훈은 한국 유도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아버지(추계이)를 둔 재일동포 4세다.
그는 1998년 긴키대 시절 귀화를 조건으로 내건 일본 실업팀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태극마크를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2001년부터 각종 국내 대회를 휩쓸었지만 재일동포에 대한 국가대표팀 선발 텃세 논란 속에 결국 일본 귀화를 택했다.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일본대표팀으로 출전한 ‘한국의 아키야마’는 안동진(경남도청)과 맞붙어 금메달을 따낸 뒤 “조국을 메쳤다”는 비난을 들었다.
2004년 일본에서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한 뒤 추성훈은 유도복 오른 어깨에 태극기를, 반대쪽엔 일장기를 달고 나왔다.
최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2006년 12월31일 일본의 격투기 영웅 사쿠라바 카즈시와 경기에서 몸에 크림을 바르고 승리했다는 이유로 무기한 출장정지 중징계를 받았다. 부끄러운 행동이 지적되자 이번엔 ‘일본인’들이 그를 한국인으로 취급했다.
2007년 마지막 날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종합격투기대회 <프라이드 ‘야렌노카! 오미소카’>.
‘크림사건’ 뒤 일본 복귀무대였던 이날 추성훈은 1라운드 종료 1분46초를 남기고 프라이드 웰터급 챔피언 미사키 가즈오의 주먹에 쓰러졌고, 얼굴에 사커킥까지 허용해 코뼈 부상까지 당하며 주저앉았다. 그가 당한 공격이 무릎과 양손이 캔버스에 닿은 ‘4점 포지션’ 상황에서 킥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어겼다는 논란을 낳을 만큼 과격했다.
사실 대다수 국내 팬들은 이번 경기의 승패보다는 경기 직후 벌어진 상황에 더 큰 관심이 쏠려있다. 관심이라기보다는 분노와 울분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미사키는 일방적인 일본 관중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연장자인 추성훈에게 이지메식 훈계를 하는 비상식적인 언행으로 국내 팬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경기 시작 전 파이팅을 다짐하는 추성훈의 손을 쳐낼 때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던 미사키는 경기에서 이긴 뒤 또다시 손으로 추성훈을 밀어내는 무례함의 극치를 드러냈다.
진지한 태도로 승자에게 축하를 건넨 추성훈은 미사키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오를 만한 상황이었지만 현장 분위기를 감안, 거푸 모욕을 당하고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의 상황은 더 가관이었다. 미사키는 침통해있는 추성훈에게 다가가 “너의 더러운 경기는 많은 실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없다”면서도, “직접 상대하면서 너의 마음이 내게도 전해졌다. 앞으로는 팬들과 어린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는 훈계로 일본 관중들의 환호를 한 몸에 받았다.
물론 사쿠라바와의 경기에서 규정에 어긋난 행동은 명백한 추성훈의 실수였다. 하지만 분명 고의는 아니었고 일본 격투사를 되짚어봤을 때 그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른 파이터들도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미사키는 1년여 동안 일본에서 죄인취급을 받고 경기에서도 패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추성훈을 관중들과 함께 농락했다. 역대 어느 파이터도 이 정도의 가혹한 처벌을 받은 경우는 흔치 않다.
또한 “유도최고!”라는 멘트와 함께 “일본인은 강하다!”는 말까지 내뱉으며 일본 국적으로 금메달까지 땄던 추성훈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 민족감정까지 부추길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었다. 어쩌면 지난 서울대회에서 “대한민국 최고!”를 외친 추성훈의 발언을 의식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승리 후 관중들에 대한 보답의 차원에서 내뱉는 외침과 만신창이가 된 패자를 두고 뱉어내는 말은 분명 다르다. 따라서 미사키의 발언과 행동은 ‘공개처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군자복구 십년불만(君子復仇 十年不晩)’이라는 말이 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말로, 큰 뜻을 품은 사람은 멀리 내다볼 수 있어야 하며 눈앞의 어려움에 쉽게 의지가 꺾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날의 치욕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더욱 강한 격투가, 절대 물러서지 않는 무쇠 같은 남자 추성훈을 기대해본다.
위 기사는 데일리안, 한겨레에서 발취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