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는 서점엘 갔다
혼자서 서점에 가는 것
뭘 하든 어디에 있든 누구랑 있든
그 사실들을 아무에게도 알려줄 의무없이 완전하게
오롯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는 것
솔로에게는 더 없이 당연하고
볼품없는 그 일들이 막상 애인이 있는 사람들에겐 은밀한 바람
오늘 이 여자는 남자친구의 출장을 틈타
그 은밀한 바람을 실현해 보기로 한것이다
서점에 가서 아무책이나 하루종일 뒤적여 보리라
멋진 남자가 책을 읽고 있다면 몰래 흘깃거리면서
나도 같은 책을 집어 들고 보리라
실연 당한 사람처럼 슬픈 연애소설을 읽으며
한껏 외로움도 느껴 보리라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했다
넓은 서점안을 휘휘 돌아다니며 이 책 저 책 집적거렸고
잘생긴 남자를 보며 남몰래 흐뭇한 웃음을 짓기도 했고
맘에 드는 연애소설 한권을 발견해서 열장쯤 읽어 치우기도 했고
그렇게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
그러던 그녀 발길이 만화코너에 다다르자 함박 웃음을 지으며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음.. 만화 좋지'
그녀는 남자친구와의 첫 키스를 떠올렸던 것이다
두 사람이 이마를 맞대로 만화책을 본 적이 있었다
일부러는 아니고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된 상황
그러니까 여자가 무슨 만화책을 읽다가
'이 그림 좀 봐봐' 말을 했고
남자가 불쑥 고개를 디밀었고
둘은 서로 좀 어색함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누가 물러나기도 좀 그렇고
결국 이마를 붙인채 둘은 그 책을 끝까지 봐야 햇었다
그래 그때 이마에 느껴지는 숨결이 기억난다
그 인간도 어지간히 긴장했는지 숨을 씩씩거렸었지
더이상 가까울 수도 없는 거리
나도 책을 읽는 척 했지만 신경은 온통 다른데 쏠려 있었고
얘가 책을 읽고 있구나
이 페이지를 다 읽었구나
나한테 다 봤냐구 물어볼까 말까 망설이는구나
얘가 지금은 책이 아니라 나를 훔쳐보고 있구나. 두근두근..
그녀는 그때 상황을 가만히 생각하며 저절로 웃음이 났고
그 다음 순간 조금 뜨끔했다
그땐 더 가까이 못가서 안달이었는데
이젠 떨어져 있음에 이렇게 신나하다니
하루종일 둘만 있고 싶어서 엄마 아빠도 귀찮았는데
이젠 남자친구 전화도 귀찮아 하고 있었다니
혼자인게 지겨워서 소개팅을 수십번 나간 끝에
겨우 만난 사람이었는데 내가 둘인 걸 지켜워 했다니
그녀는 갑자기 남자친구가 보고 싶어졌고
괜히 눈물이 그렁해서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돌아오면 잘해줘야지..라고
#사랑을 말하다_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