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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컬러로 채워진 디자이너들의 런웨이 팔레트.

슈리팜 |2008.01.05 11:04
조회 500 |추천 2













캔버스에 물감을 뿌렸던 잭슨 폴록, 환상적인 컬러 배합으로 면을 나누었던 마크 로스코, 빛의 변화와 색의 움직임을 화폭에 담아낸 모네…. 이렇게 색을 연구하고 탐구했던 화가들이 이번 시즌 런웨이를 본다면 놀라지 않을까. 자신들이 캔버스 위에 짜놓은 물감이 그대로 런웨이에 펼쳐졌으니까. 그렇다면 화가가 아닌 디자이너가 펼친 캔버스 속으로 들어가볼까?













우선 이번 시즌 런웨이를 가장 멋스럽고 화려하게 장식한 컬러는 핑크. 아트 북스에서 출간된 에선 사람들이 ‘행복’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색이 핑크라고 한다. 사람들은 핑크를 통해 ‘따뜻하고 밝고 명랑하고 개방적이며 상쾌한’ 이미지와 ‘평안, 치유, 안심’ 같은 긍정적인 기분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꼼므 데 가르송의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은 연분홍색을 꿈꾸듯 몽환적이면서 유쾌한 분위기였고,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DKNY의 핑크 드레스는 젊음과 에너지 그 자체였다. 또 시클라멘 꽃망울처럼 활짝 핀 랑방의 핑크 드레스는 우리 여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고, 발렌시아가 런웨이의 핫핑크 재킷은 경쾌한 문화적 충돌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핑크와 함께 F/W 컬렉션에 톡톡 튀는 신선함을 더해주었던 컬러는 오렌지. 레몬즙을 약간 짜고, 오렌지 두 개를 넣어 얼음과 함께 믹서기에 갈아 만든 오렌지 주스처럼 신선한 컬러 퍼레이드가 밀라노와 파리에서 이어졌다. 클로에의 새틴 미니 드레스, 프라다의 달콤한 오렌지 니트, 오렌지 스타킹과 매치해 80년대 무드가 느껴지는 푸치의 오렌지 원피스 등…. “주황색은 불의 강렬한 빛과 석양의 부드럽고 찬란한 빛의 색을 나타내므로 따뜻하고 기쁨을 느끼게 한다”고 했던 괴테가 이들의 런웨이를 봤다면 분명 반가워했을 것이다.

핑크, 오렌지 컬러에 비해 차분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그린 역시 이번 컬렉션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허리 라인을 강조하고, 장갑과 모자로 독립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준 셀린의 그린 룩도 인상적이었지만, 울창한 숲을 떠올리게 하는 마르니의 그린은 색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한껏 살린 편안한 룩이었다. 하긴 그린은 평온과 자연을 상징한다. 영원토록 어린 아이로 살아가는 피터팬의 순수함은 그의 녹색 옷으로 연결되며, 애니메이션 주인공 슈렉의 피부색이 녹색이 아니었다면 관객들은 그에게 더 거부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파버 비렌이 쓴 에 따르면 “녹색을 싫어하는 사람은 대개 정신 상태가 불안하다”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블루 또한 생리적, 심리적으로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에 따르면 12세기부터 르네상스까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색이 블루였고, 화가들은 그림 배경에 자연스럽게 블루를 많이 쓰며 숭배의 색으로 여겼다. 또 20세기 프랑스에서 블루는 온건한 중도파로서 공화주의를 상징했으며, 공산주의의 빨강과 사회주의의 분홍과 대립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생각하면 이번 시즌에 블루의 향연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손을 대면 푸른 물감이 묻을 것만 같은 질 샌더의 블루 원피스, 세련된 핏이 돋보였던 막스마라의 블루 수트, 다리아 워보위의 매니시한 매력이 한껏 살아났던 웅가로의 블루 코트까지. 심지어는 화가 이브 클랭이 퍼포먼스를 통해 선보였던 아주 깊고 짙은 ‘클랭 블루’도 올가을 런웨이에서 자주 눈에 띄었다.

다음은 레드. 아무리 정치 색이 짙은 레드라도 런웨이에선 모든 컬러와 평등하다. 다만 시선을 더 사로잡을 뿐. 레드의 시각적인 효과는 투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소가 붉은 천을 보고 흥분해서 달려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소는 색맹으로 펄럭이는 것에 흥분하는 것일 뿐. 투우장의 관중들이야말로 붉은색에 흥분한다. 이렇게 열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레드는 이번 시즌 베르사체 쇼에서 관객들의 숨을 가쁘게 할 정도로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또 언제나처럼 발렌티노의 레드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은 고혹적이며 우아했다.

가시광선 중 파장이 가장 긴 레드와 정반대로 가장 파장이 짧은 보라. 보라는 장 폴 고티에와 잭 포즌 등의 캣워크에서 오묘한 빛을 뽐냈다. 알베르타 페레티는 신비롭고 몽환적인 보랏빛 무드를 런웨이에 멋지게 표현했는데, 깔끔하게 빗어넘긴 헤어 스타일과 어울린 퍼플 드레스는 액세서리 하나 없이도 돋보였다. 보라와 보색 관계인 옐로의 활약도 뛰어났다. 1947년 처음 발표된 스위스 학자 뤼셔의 저서에 따르면, 여러 가지 색상 중 노랑을 제일 먼저 선택하는 사람들은 지적이며, 혁신을 좋아하고 항상 큰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막스마라에서 혜박이 입은 밀리터리풍의 코트,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옐로 원피스와 케이프는 스마트하고 생기 넘치는 옐로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 칵테일 준벅을 떠올리게 하는 라임그린, 샤넬의 칼 라거펠트가 사랑에 빠진 터쿠아즈 등 이번 시즌 런웨이는 그야말로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한 컬러 페어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르네상스 시대와 그 이후까지도 큰 영향을 미쳤던 명암법을 선보인 천재적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색이 갖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채로운 물감이 스며있는 스펀지를 벽을 향해 던지면, 풍경화처럼 보이는 어떤 얼룩들이 남는다. 보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그 얼룩은 얼굴로 보이기도 하고, 동물•바다•구름•숲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번 시즌 팔레트를 펼치고 섬세한 붓으로 다양한 룩을 런웨이에 그려냈던 디자이너들은 이 강렬하고 사랑스러운 컬러들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 컬러들을 통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될까?

- 에디터 / 김은지
- 포토 / MI KYUNG CHOI, JAMES COCHRANE, BAE JUNG HEE
- 출처 / www.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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