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30년 예수의 십자가 처형
AD 70년 마가복음의 성립
AD 100년 요한복음의 성립
AD 150년 마르시온 정경(11서체계)의 성립
AD 172년 4복음서 디아테사론 성립
AD 300년 무라토리 정경(23서체제) 성립
AD 367년 아타나시우스 27서 정경 성립
1. 정경이 교회를 정립시킨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정경을 성립시켰다.
다시 말해서 27서체제의 정경화작업에는 교회라는 조직의 이해가 얽혀있었다.
2. 27서정경이 성립하기 이전에는 정경과 외경의 분별이 성립할 수 없다.
27서정경화 작업이 이루어질 당대에만 해도 27서에 편입되지 못한 수많은
정경후보의 책(비블로스)들이 있었다. 그 책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물론 그 방대한 인류의 유산인 그토록 화려한 예술품, 그리스, 로마의
신전들이 하루아침에 우상파괴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무녀져 버리듯,
분서갱유의 대상이 되어버릴 것은 명약관화한 이치이다.
이제 우리는 이 수많은 고귀한 비블로스들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타나시우스 이후
우선 이 기구한 운명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만 한번 생각해보자!
아무리 아타나시우스가 권위가 있다고 해도 그가 부활절에서 발한 메시지
하나로 전 로마기독교세계가 27서성경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기실 아타나시우스는 단지 목록만을 확정했을 뿐이다. 그는 평생의 에너지를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데 다 써버렸기 때문에 그의 저작도 이단에 대한
아폴로지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는 엄밀한 서지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성서라는
텍스트를 크리특 할 수 있는 입장이 있질 않았다. 그는 27서정경을 물리적으로 만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27서를 확정지을 수 있을 정도의 서지학적 안목은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선정한 27서의 수준이 타 경정에 비해 정경 속에
편집될 만큼으 ㅣ가치가 있었던 문헌이었음에는 틀림이 었다.
단지 요한계시록이 편입된 것은 향후 1700년의 인류사를 위하여 매우 유감스러운
사태이지만 요한계시록만 해도 이단과 배교에 대한 위협적 묵시로 가측차 있어
이단과 배교와 평생을 싸워온 아타나시우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문헌이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종말론에 대한 현세적, 실존적 해석을 거부하는 모든 무지한 설평파들의
몽매한 영감의 원천으로 끊임없는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희랍교회에서는 아타나시
우스가 27서를 발표했을 때도 요한계시록만은 사도저작성이 의심될 뿐만 아니라
정경의 자격을 근본적으로 결하고 있으므로 정경에 빼버려야 한다고 반박성명을 내었던
것이다.
시리아교회들의 반대입장
그리고 시리아교회들은 5세기말까지 디아테사론을 계속 선호했다. 그리고 시리아지역
에서는 에데사의 주교(dishop of Edessa)인 라 불라(Rabbula)가 만들었다고 하는 22서
짜리의 정경이 쓰였는데 이것을 보통 페쉬타(Peshitta)라고 부른다. 페쉬타에는 베드로
후서, 요한2서, 요한3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이 빠져있다. 시리아기독교인들은 1세기
초대교회로부터 매우 주류적 감각을 지니고 내려온 뼈대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사소한 상기의 5서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보다 합리적인 결단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6~7세기에 수정판으로 등장한 필록세니안 판(the Philoxenian version)과 하르클리안
판(the Harklian version)부터는 동방희랍교회 라틴서방교회에서 사용하는 27서체제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루터의 입장
종교개혁을 주도했지만 일차적으로 성서학자 언어학자였던 마틴루터는 정경의 기준을
"사도저작성"과 오직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was christum treibet)이라는 두 항목만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 기준에서 볼 때,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은
정경의 자격이 없다고 규탄했다. 그가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을 때 이 4서를 빼버렸다면
프로테스탄티즘의 성서개념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루터는 전통의 하중에
굴복하고 이 4서를 그냥 신약의 말미에 덧붙였다.
내가 독자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타나시우스가 27서성서의 목록을 제시했다
할지라도 27서체제는 인류사를 통하여 절대적인 그 무엇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성서라는 문헌에 대한 새로운 이해
우리는 성서라는 문헌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막연한 공포감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그 공포감이란 그것이 성령의 계시에 의한 절대적인 말씀이라서 일점일획도 건드릴
수 없는 성스러운 것이라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세뇌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성서는 한 글자도 변동시킬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신앙 세계를
우리는 존경해야 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성서는 절대불가침의 신성한 말씀이며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 절대불가침의 성서는 어디에 있는가? 물론 교보나 동네책방, 대한기독교
서회나 분도출판사책방 같은 곳에 가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책방에 꽃혀있는
성서는 한두 종류가 아니다. 이 글을 쓰다가 바람도 쐴 겸해서 나는 시내에 나가
눈에 뜨이는 성서는 모두 사가지고 돌아왔다.
요한복음 1장 1절만 가지고 생각해 보자!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개역한글판)
2.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공동번역판)
3.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한국천주교 주교회의판)
4. 맨 처음 말씀이 계셨다. (한국천주교회 창립200주년기면 개정보급판)
5.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 말씀 되시는 그리스도가 계셨다.
6. 천지가 창조되기 전, 아무것도 존재하기 전에 말씀이 계셨다.(현대인의 성경판)
6. 천지가 창조되기 전, 아무것도 존재하기 전에 말씀이 계셨다.(현대어 성경판)
내가 오늘 구한 성경은 이것이 다인데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판본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일점일획도 변경할 수 없는 성경이란 말인가?
문제는 어휘의 선택부터 심지어 신택스(syntax), 세맨틱스(semantics)까지 모조리
다르기 때문에 도저히 하나의 하나님 말씀으로 간주할 수가 없다.
어떤 다른 문장을 예로 들자면 전혀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상황이 한둘이 아니다.
과연 성서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느 판본, 어느 책이 진짜 성경이란 말인가?
유식한 독자들은 이 우리말성서의 문제는 단순한 번역상의 문제이며, 그것은 하나의
동일한 희랍어텍스트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말씀은 하나이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는 희랍어성경을 보고 말하시오라고 대꾸할지도 모른다(김현수님)
희랍어성경도 하나의 정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존하는 희랍어성경 고사본은 약 5천 개 정도나 되는데 이 5천 개의 사본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또다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현존하는 최고의 사본은 4세기의 것인데 양피지에 흘림체로 쓴 것이다. 1884년, 1859년,
두 차례에 걸쳐 시내산에 있는 성 캐더린수도원에 콘스탄틴 폰 티쉔도르프에 의하여
발견되었는데 신,구약의 완정한 형태를 보존하고 있었다. 이것을 코우덱스 시나이티쿠스
(codex sinaiticus)라고 한다. 이것을 성서판본학에서는 알프레(aleph)라고 부른다.
히브리 알파벳의 첫글자를 따서 그렇게 부르고 또 그 글자로 표기한다. 이 판본을
효시로 하여, 1475년 이전부터 바티칸도서관에 보존되어 있었던 코우덱스 바티카누스
(Codex baticanus, 보통 B 03이라고 약어 표시한다.)등 수없는 판본이 발견되었다. 그
유명한 화란의 휴매니스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9~1536)도 희랍어성경을
편찬하여(1515), 인류사상 최초로 그것을 인쇄출판하였다. 1516년 3월1일이 사건이었다.
그런데 에라스무스의 손에는 몇 개의 희랍어사본 단편이 있었으나 하나도 완정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모자라는 부분은 라틴어성경에 그가 손수 희랍어로 역번역해낸 것이다.
그래서 그의 희랍어성경은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세기전통에 항거하고
당대 기성교회의 타성적인 형식주의를 비판하여 희랍고전의 후마니타스를 부활시킨다는
르네상스 휴매니즘의 상직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환영을 받았다.
1519년에 재판이 나왔고, 1522년 3판, 1527 4판, 1535년에 5판이 나왔다. 이러한
에라스무스의 희랍어 성서의 유포에 자극되어 말틴 루터의 독일어번역이 이루어진 것이다.
말틴 루터는 에라스무스 희랍성경 제2판을 번역의 저본으로 썼다. 에라스무스의 이
불완전한 판본은 거의 300년 동안 반복적으로 출판되면서 텍스투스 리세프투스(Textus
Receptus)라고 불리우게 외었는데 "받아들여진 텍스트"(Received text)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뒤로 많은 새로운 고판본이 발견되면서 희랍어성경 자체도 많은 변화를
거치게 되었다.
코우텍스 시나이티쿠스를 발견한 티쉔도르프는 시나이티쿠스를 최초로 활용하여 1813년
에 나온 칼 라흐만(Kral Lachmann, 1793~1851)의 희랍어신약성경의 제 8판 두 권을 내었다.
첫 권은 1869년에 둘째 권은 1872년에 나왔다. 이 티쉔도르프 판본을 기점으로 희랍어
성경도 비로소 엄밀하게 다듬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에 웨스트코트(Westcott,
1825~1901)와 호르트(hort, 1828~1892)가 코우스 시나이티쿠스와 코우덱스 바티카누스에
기초하여 {희랍어원본신약 the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을 낸 것이 1881년의
사건 이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텍스투스 리세프투스가 매우 불완전한 엉터리 판본임을
엄밀한 비평을 통해 밝혔다. 그리고 그 뒤에 에버하르트 네슬(Eberhard Nestle, D.D., 1851
~1913)이 티쉔도르프 판과 웨스트코트, 호르트 판을 비교하여 가장 완정하고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희랍어신약 Novum Testamentum Graece}을 출간했는데 그
것은 1898년의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희랍어성경이라는 것도 1898년에나 와서 비로소
기준이 될만한 성경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러니까 희랍어성경의 절대적 기준을
운운하는 것도 가소로운 이야기가 되고 만다.
[제가 읽은 책의 300~400 page 부분에서 워드로 쳐서 올렸습니다.]
이 책을 쓰신 분이 궁금하신분은 물어주시오면 적극 추천드립니다.
그 분께서 욕먹는 것을 원치 않아 일단 비공개로 합니다.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