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의 역사
[1] 한국 랩의 기원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꼬푸 없이는 못 마십니다..'-서영춘 '
저기 저아가씨 조잘 조잘 조잘 할말도 무척 많으셔..'-서수남, 하청일'
딱히 힙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 음악계에서 처음으로 "중얼거림"을 도입하신 분들입니다.
다이나믹듀오의 "신나"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서수남과 하청일이 등장합니다.
1989년 나미와 붐붐, 1990년 홍서범이 빠른 속도에 비트감과 격렬한 랩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곡들은 결정적으로 흑인음악의 핵심인 그루브(groove: 리듬감)이 부족하다.
[2] 초기 힙합
한국의 초기 힙합은 미국의 정통힙합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요소인 rhyme과 flow은 어디갔다 팔아먹었는지.. 찾아볼 수 없고.
단순한 비트의 댄스음악에 랩을 가미하는 정도였다.
1991년 현진영과 와와가 발표한 "슬픈마네킹"이 아마 그 첫 곡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신해철과 이현도도 자신들의 노래에 랩을 가미하기 시작했다.
[3] 본격적인 힙합의 등장
한국에 가장 힙합다운 힙합을 처음 선보인 가수는 "서태지"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난 알아요"라는 곡을 가지고 등장해, 한국가요상 가장 힙합적인 곡을 선보였다.
당시 한국가요계는 립싱크위에 춤추는 댄스곡과 발라드만이 성행했었다.
그런 가요계에 서태지의 등장은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후 듀스가 등장하고 상당히 흑인적인 랩을 선보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정통힙합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서태지도 결국은 댄스음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4] 한국 힙합에 먹구름이....
서태지와 듀스가 등장하였다고는 하지만 아직 한국힙합은 댄스음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서태지도 1집이후.. 두드러진 활약을 나타내지 못했으며, 듀스는 표절의혹까지 겪어야했다.
서태지는 다시한번 한국 힙합을 살려보고자 4집에서 "come back home"을 선보였다.
미국 갱스터랩을 바탕으로 쓰여진 곡이었지만,, 진짜 갱스터라고 하기엔 부족한 점이많았고.
결국 한국 대중들에게 안좋은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힙합 = 갱스터
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그 갱스터라는 의미도 실재와는 다르게 퇴색되어..
한국 대중들은 점점 힙합을 꺼려하고, 심지어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5] 드디어 자리잡기 시작하는 한국 힙합
이 시기가 한국 힙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훌륭한 래퍼들이 등장해 진짜 힙합을 한국 문화에 심어주었으며 그 기반을 잘 다져주었다. 그 선두주자는 Uptown이었다. 비교적 미국 본토 힙합에 가까운 래핑을 전해주고자 노력한 첫번째 그룹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에 자극을 받았는지 이현도도 자신의 앨범에 힙합음악을 다수 수록하기시작하였다. 지누션이라는 그룹도 등장하여 힙합의 대중성을 높이는데에 성공하였다.
이때 등장한 뮤지션이 바로 "김진표(이하 JP)"이다. JP는 한국뮤지션중 처음으로 자신의 앨범의 전 곡을 힙합으로 도배(?)하였다. 당시 랩은.. 댄스곡 중간중간에 잠시 등장하는 형식으로만 선보여졌었다. 이에 반기를 들고 JP는 정통힙합 앨범을 발매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국 힙합에 Rhyme 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며, 자신의 곡에서 뛰어난 rhyme skill을 선보여, 라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게 힙합이 번성하기 시작하자 드디어 한국에서 Clan/Family가 등장하였다.
1997년 YG Family, Uptown Family, Honey Family 등이 형성되었다.
그런 흐름을 타고 등장한 그룹이 "DRUNKEN TIGER" 이다.
미국에서 freestyle 래퍼로 이름을 떨친 TigerJK와 DJShine으로 뭉쳐진 팀이었다.
드렁큰타이거는 이전부터 한국가요계에 등장하고자했으나, 열약한 한국문화환경과
힙합에대한 차별때문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곤했다.
1999년이 되자 한국 문화가 상당히 개방적이 되었고,
정통힙합은 아니지만 한국음악에서 많은 랩들이 들리기 시작하자.
드렁큰타이거는 다시 귀향하였다.
1집의 "난널원해"를 들고 한국땅에서 진짜 힙합을 외쳤으며, 대중들은 이를 받아들여 주었다.
그후 주목을 받은 CBMass와 주석, 조PD 등도 한국힙합의 주역이 되었다.
[6] 지금의 한국 힙합은?
지금은 한국 힙합의 가히 전성기라 할 수 있다.
2000년 초. 다소 엄격했던 가요 심의규정이 완화 되었고, 그로인해 많은 힙합음악들이 선보여질 수 있었다.
"Good Life"로 상승세를 탄 드렁큰타이거
"Fever"와 "친구여"로 대중성을 얻은 조PD
"아직못다한 이야기"로 정통힙합을 한국적으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한 JP
랩은 한편의 시(poet, epic)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에픽하이
춤추고 즐기는 힙합을 알려준 다이나믹듀오
new classik baby를 외치며 다시 등장한 이현도
처음으로 서정적 래핑을 선보이며 힙합으로도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는 리쌍
등등..
모두 열거하기 힘들정도로 훌륭한 래퍼들이 등장하였으며, 멋진 곡들이 쓰여졌다.
이 래퍼들은 실재 미국의 래퍼들이 그랬던것처럼, 스스로 멜로디와 비트를 쓰고 가사를 만들며
자신들이 진정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그것이 힙합의 진짜 묘미이며, 그 맛을 아는 사람들로 하여금 매니아층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클럽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하고, 덩달아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생기기시작한다.
미국에만 존재하였던 freestyle과 battle 문화가 한국에도 생긴것은 정말 기쁜일이었다.
그런 문화속에서 배치기, 아웃사이더, 도끼 등 신인래퍼들이 발굴되고
한국 힙합문화는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