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uccess Point 1 시야를 넓혀라
진수 테리에겐 죽고 싶었으리만치 취직이 안됐었던 때가 있다.
“이름을 바꾸면 크게 될 수 있다”는 한 스님의 말에 그녀의 부모는 백일 된 딸에게 ‘진희’라는 이름 대신 ‘진수’라는 새 이름까지 붙여주며 그녀를 키웠다.
그런데 ‘성공’은커녕, 그녀의 꼬인 인생은 좀처럼 풀릴 줄 몰랐다.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에 공대에 진학, 거친 남자들과 어깨를 겨루며 어렵사리 학업까지 마쳤으나 그녀를 받아주겠다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사람은 무릇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번엔 부모와 함께 살던 부산의 집을 떠나 서울로 상경,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역시나’로 끝이 났다. 고생 끝에 낙이 온 건 정확히 150번째 이력서를 우체통에 넣었을 때.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자그마한 방직회사로부터 입사 통지서를 받게 된 것이다.
물론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그녀의 첫 직장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흔히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들 한다.
그녀에게 첫 번째 기회는 서른을 바라보던 어느날 찾아들었다.
우연히 길에서 알게 된 뉴질랜드 또래 친구 미스 앤.
그녀와의 만남은 진수테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정말 우연히 알게 된 친구였는데 세계일주를 하고 있다더군요. 행색이 얼마나 추레했는지 말도 못해요.
그럴 만도 했죠. 배낭 하나 둘러메고 지구촌을 누빈 지 장장 2년이나 됐을 때였으니 말예요.
그녀를 보고 처음엔 참 이상한 여자도 다 있다 생각했어요.
전 회사에 취직해 성공하는 게 꿈인데 그녀는 아닌 것 같더라구요.
고생을 사서 하는 이유를 물으니
‘내가 사는 세상 밖에 다른 세상이 있다’ 더군요.
그녀의 생각이 쉽게 이해가 안돼 그녀 뒤를 6개월이나 쫓아 다녔어요.
그러면서 차츰 저도 그녀의 사고에 물들어가기 시작했죠.
현재의 미국인 남편 샘도 그녀를 통해 알게 됐어요.
저의 미국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Success Point 2 스스로 변신하라
앤을 통해 지금의 남편 샘 테리를 만나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 새로운 사회에 도전장을 낸 진수 테리.
처음엔 그녀도 여느 이민자들처럼 접시닦이, 서빙 등 막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미국서 제대로 된 직장에 터를 잡은 건 1987년의 일.
가죽벨트 공급업체인 사커에 프로덕션 매니저로 입사한 그녀는 정말이지 혼신의 힘을 다해 회삿일에 매달렸다.
열정을 다한 만큼 성과도 좋았다.
공장의 생산라인을 감독하며 매출을 세배 이상 올려놓았던 것.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승진대상자 명단에서 그녀의 이름은 늘 빠져 있었다.
주변에선 ‘미국 학교를 나오면 좀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주경야독하며 낮에는 공장 일을, 밤에는 샌프란시스코주립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공부하며 바쁜 시간을 이어갔다.
그래도 승진은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급기야 입사 7년차엔 생각지도 못했던 충격적인 일까지 겪게 된다.
권고 사직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7년을 몸 바쳐온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됐다고 생각해보세요. 충격이 엄청났죠.
그냥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부사장을 찾아가 이유를 따져 물었어요.
부사장이 그러더군요. ‘진수는 머리도 좋고 실력도 상당한데 대화가 안돼 문제가 컸다’라구요.
그는 또 제게 ‘당신한테 필요한 건 학위를 따는 게 아니라 미국인과 잘 대화하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거야’라고도 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제 삶이, 사고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그 즉시 MBA 과정을 중단하고 영어 스피치 클럽에 들어갔다.
미국인이 한 번 들으면 되는 코스를 그녀는 세 번, 네 번을 들었다.
영어로 또박또박 말하며 끈기 있고 기분좋게 설명하는 습관을 기르려고 온 힘을 다했다. 영어로 리더십을 개발하는 세미나도 들었고, 세일즈 일을 할 것도 아니면서 미국 세일즈맨과 경쟁하는 코스도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수 테리는 웃음의 가치도 재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웃기 시작한 다음부터 거짓말처럼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취직도, 승진도 순조로웠다. 말문이 트이니 마인드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마인드가 바뀌니 더욱 큰 세상이 그녀 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Success Point 3 내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을 찾아라
낙담과 분노를 거친 뒤 그녀가 깨달은 것은 ‘나의 성공을 방해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성공이라는 두 글자를 품에 안기까지 그녀는 두 배로 힘이 들었다. 누군가는 일깨워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라이노 스피치 클럽.
“처음에는 ‘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웃기는 여자’라며 다들 절 비웃더군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 줄 아십니까? 지난 8년간 저희 스피치 클럽을 거쳐간 미국 젊은이들만 800명이 넘습니다. 영어를 못해 고민이라고 말하는 분들 많으시잖아요. 하지만 정작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저도 미국에 처음 왔을 땐 영어를 잘 못했어요. 그래서 입을 닫고 살았죠. 하지만 마인드를 달리한 후부터는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어요. 미국인이 영어로 말을 걸어 올 때면 무조건 ‘Wow~’ ‘It’s amazing! you are the best’라며 맞받아쳤어요. 풍부한 표정에 손짓 발짓까지 다 동원해가며 말이죠. 그랬더니 미국인들이 신이 나서 그럽디다. ‘너 영어 정말 잘하는구나’ 라구요. 그런 식으로 사람들과 대화의 기회를 넓혀가고, 나의 장점을 찾아내 개발하며 대화의 기술을 익혔더니 어느 순간 전문연설가가 되어 있더군요.”
진수 테리는 1993년 의류업체인 (주)컷루스로 자리를 옮긴 뒤 회사를 업계 정상에 올려놓으며 작년에는 부사장 직함까지 달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전문연설가’로 소개한다. 그녀의 최종 목표는 바로 오프라 윈프리를 능가하는 토크쇼의 진행자가 되는 것. 그녀의 영어에 한국인 악센트가 있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수 테리는 자신의 약점조차도 장점으로 탈바꿈시켜놓는 묘한 재주가 있다.
“미국에선 강연료로 5천 달러를 받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7천 달러를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이렇게 말하죠. ‘당신은 미국 사람도 아니고 한국인 특유의 액센트까지 있는데 어떻게 강연료가 더 비쌀 수가 있습니까?’라구요. 그러면 제가 대답합니다. ‘저는 저만의 개성 강한 액센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서 살고 있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동양의 문화에 서양의 문화까지도 잘 알죠. 장점이 두 배로 크니, 출연료도 그만큼 높을 수밖에요’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그럴 듯 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합니다. 이렇듯 자신의 장점을 개발했으면, 제대로 포장을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성공은 나를 파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녀가 항상 강조해 말하는 것이 있다. “서른 넘어 시작한 진수가 해냈으니 여러분 누구도 해낼 수 있다” 성공한 CEO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빨간 두건을 쓰고 랩을 흥얼거리며 ‘웃음’을 팔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If jinsoo can do it, You can do it, too!”를 외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