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예전처럼 EBS를 드문드문 본다. 진득하게 EBS를 바라보고 있기엔 오늘 하루도 너무 격무에 시달렸어, 라고 혼잣말로 변명을 일삼으며 케이블 티비 석권에 있어서는 정말 능력 무한한 버라이어티쇼를 보거나 고양이 용이를 옆에 앉혀 놓고 웅이 아부지, 웅이 아부지 목청 높여 외치기 일쑤이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채널을 가만히 두고 있지는 않아서, 아직도 여전히 하고 있는 EBS 지식채널의 지식 e와 간간히 조우하고는 한다.
시즌1만한 시즌2가 없는 탓이거나 작년 여름보다 딱 두 계절만큼 각박해진 것인지 지식채널의 첫 번째 책을 보았을 때보다는 감흥이 덜하지만 책에는 여전히 유효한 정보가 많다. 우리가 잊고 있었거나 애써 잊으려 했던 많은 것들을, 지식채널이 닮고 있고 책에서는 움직임을 조금 덜어내는 대신 텍스트를 조금 추가하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현실직시의 책임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喜(gladness) - “사람들이 성공적이라고 칭찬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삶은 단 한 종류뿐이다. 우리는 왜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하면서 고작 한 가지만을 과대평가하는가.”라고 말하며 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들의 삶의 편향에 조용하지만 꿋꿋하게 저항하였던 『윌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비주의 현대사회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양극화 못지 않게 심리적 박탈감 조장에 한몫 하고 있는 명품 신드롬, ‘농담에 대한 반응이라기 보다는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사회적 신호’로서의 웃음이 가지는 다양한 효용, 그리고 인간 최초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울음의 의미, 낮잠을 잔다는 일의 사회경제학적 고찰, “아는 것이 힘이다? ... 때론 학습이 가장 큰 착각의 요소이다.”, 술을 이용하는 여러 방법과 우리들의 폭탄주 문화, 휴대폰을 통하여 다시금 시작된 엄지의 진화 그리고 정치, 유행가를 통하여 발견되는 아버지와 나, 명왕성을 뒤로 하면서 보이저 호가 지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발견한 것은 티끌 한 점뿐...
怒(indignation) - 바보같이 우는 기자와 퀴즈 영웅을 탄생시킨 시사저널 사태, 인간에 의하여 기괴하게 변형된 먹이사슬이 우리들에게 고하는 경고인 광우병과 한미FTA, 정책은 없고 정치만 있는 우리 정당들에게 매니페스토는 무엇인지, 영국의 학교 급식 개혁과 새로운 사회운동이라 할 수 있는 슬로우푸드 운동과 로컬푸드 운동, 데이비드 로젠한의 가짜 정신병자 실험을 통하여 생각해보는 정상과 비정상,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치매와 우리들의 대응, 언제나 당당하게 자신의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나라를 배신하는 듯한 마이클 무어의 힘, 끝나지 않는 이스라엘의 도발과 그들을 비호하는 미국의 존재, 어느 카미카제 비행사의 보내지 못한 편지와 바로 지금의 일본, 청계천에서 동대문운동장으로 그리고 이제는 또 어디로 옮아가야 할지 알 수 없는 그들 도시 노점상의 지난한 행보...
哀(melancholy) - 사라진 탄광과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강원랜드, “개발 관련 정부부처에서는 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건설 관련 공무원들은 사전에 친인척을 통해 부동산을 매입해두고, 토지공사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땅의 대부분을 민간건설업자에게 공급하고, 토지수용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뇌물과 용역깡패로 처리하고, 건설사는 부풀린 분양가로 큰 돈을 벌고, 수주에 도움을 주었던 관계자들은 리베이트를 상납받는다. 대략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토건ㆍ개발동맹이다.”라는 사회철학연구자 정성훈의 말과 사라져간 골목길의 추억, 잠시 발이 묶인 지하철과 언제나 등한시 되는 장애인 이동권의 사이, 대한민국 초딩의 현주소, 서울 중구 태평로 1가와 시민 혁명의 역사, 전태일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 동물은 보호받아야 할 무엇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무엇이라는 말씀, 언제나 길 위에서 아직도 길 위에서 강렬하게 우리를 자극하는 사진가 최민식,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 오히려 전쟁의 가해자가 되었던 식민지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 한반도의 남쪽에서 탈북자로 살아가는 일은...
樂(delight) - 자신들의 음악이 선동하기를 원하는 영국의 밴드 첨바왐바, 불협화음으로 현대 음악을 활짝 열어젖힌 찰스 아이브스, 유성영화 시대의 마지막 무성영화 키드인 찰리 채플린, 노래를 통하여 스스로 기적이 됨을 보여 주었던 스티비 원더, 하마터면 사라질 뻔 하였던 쿠바 뮤지션들의 마지막 귀향이었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평생 100여점의 자화상을 그리며 인간의 희로애락을 몸소 보여준 화가 렘브란트, 미스터리 속에서도 여전한 해학의 정수 김홍도와 신윤복, 1등 앞에서 절대 좌절하지 않는 2등의 끈기를 보여준 이봉주, 마지막 콘서트 김광석의 멘트 ‘물러가겠습니다 행복하십시오 아쉬워 마세요 또 모르죠’, 어둡고 슬프지만 순수하고 희망 가득한 동화의 세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던 동화작가 권정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