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명박 대통령님께 !!!!!!! 영어 제2의 모국어 좋습니다. 허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말 우리글의 특출함을 전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쪽지~편지
2008/02/0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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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되신 이명박 대통령님!
김대곤 2008.02.03 19:07스크랩: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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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되신 이명박 대통령님!
이미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금
후보시 공약을 실천하고자 하심은 실로 존경합니다.
하지만 민초시인은 심히 염려가 됩니다.
목표와 계획은 좋습니다. 그것이 부국을 이루시겠다 는 위대한 결단이므로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 실현 방법은 정말 심사숙고 할 일입니다. 정책적으로 무조건 밀고 나가면 되는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국민은 저 일제시대에도 잘못된 정책은 생명을 걸고 반대하여 많은 애국 열사의 순국을 보아왔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밝아진 시대입니다.
한글은 하느님이 세계통용언어로 주신 글입니다. 영어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나아가서 아니면 세계인의 국내방문을 접대할 때 그들의 통역을 담당 할 만큼 충분한 숫자를 양성하여 특수교육을 시키심이 합당하며 보통 다른 직업에 종사할 보통 국민은 자기 이름이나 주소정도 영어로 쓸 수 있으면 됩니다. 지금은 개성시대입니다. 그 정성을 개성에 맡는 인재를 골라 각각 자기에 알맞는 수많은 세계 만국어 중 택한 그나라 그 외국어를 익히게 하여 전문화 할 때 우리말과 글을 국제화 시키는데 유익하고 확실한 實利도 챙길 수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초등학교 선생은 물론이고 중고교 대학 교수 전채가 영어에 달통해야만 님의 목표는 달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채 국민이 영어에 달통하여 무슨일에 어디에 임용하려 하십니까? 국어선생도 영어에 달통해야 하고 산수 선생도 국사선생도 자연과학 생물선생도 영어에 달통해야하며 농부도 어부도 평범한 공무원이니 노동자 주부 시민모두가 영어에 달통하여 무슨 덕을 봅니까?
소인은 불학무식한 탓인지 님의 그 웅대한 애국열이 이해가 안되며 정책적으로 밀고나가면 교육당국이 파경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훤히 보입니다.
소인은 불학무식하여 그렇게 보인다 치고 대다수 안다는 분들은 모두 하나같이 염려를 합디다.
아래의 글은 참조만 하십시요.
부디 님이 다스리는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국이 되도록 한글을 세계의 국제어가 될 수 있도록 전국민에게는 물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인식시는 교육이되도록 교육부를 이끌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김대원 올립니다.
아래의 글은 소인의 저서 신시원론 총론 중 그 일부입니다.



언어순화 운동과 어문정책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에는 많은 민족과 나라가 있다. 그런데 그 민족과 그 나라는 각기 자기 민족의 말 나라말이 있어 그 말을 자기 나라의 글로만 표현하려하고 있고 나라마다 자기 언어를 가꾸고 다듬기위하여 국어 국문학을 두고 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떠한 동물들은 동서양 남반구 북반구할 것 없이 국경도 동족도 분간하지 않고 서로 간 의사 전달을 하는 대는 어려움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만 유독 서로 간 언어 소통이 안 된다. 민족에 따라 지방에 따라 나라에 따라 서로 간의 의사 전달이 용의하지 않다.
사실 시는 인공적인 것이 아닌 자연 속에 내재된 신성이 인간을 통하여 전달된 원인적 창조예술이므로 시공을 초월하여 동서는 물론 인종간 민족 간의 장벽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시는 사실이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사실과 다르다. 나라마다 시를 쓰되 국어국문학의 바탕위에 쓰이기 때문에 서로 간의 번역이 없이는 이해가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번역시는 진짜 시인 자신이 번역하지 않고서는 그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전달하기는 심히 어렵다.
설혹 시인 자신이 자신의 시를 다른 나라말로 번역한다 해도 그 번역시는 자국 말로 쓴 것처럼 확실하게 전달하기가 어렵다.
사실 시는 시인이 자기나라말로 자기나라 글을 가지고 자기감정을 옮기려 해도 항상 언어 결핍을 느끼는데 자기나라 말이 아닌 외국어로 번역하려는 그 경우일 때야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를 더 일러 무엇하리요.
시인이 자연과 자연의 일부인 어떤 사물에 신성을 느껴 그 대상을 통하여 얻은 영감을 자기능력대로 그 감정을 시로서 나타내면 그만인데. 현 실정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 시인은 자국의 언어가 국제사회 속에 현제 통용되는 공시언어인지 통시언어인지 먼저 생각해야 되고 자신이 발표한 한편의 시가 통시언어에 어떠한 변이를 줄 수가 있으며 이것이 발표되면 앞으로 공시언어순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쳐 나의 시를 천하가 공인하는 언어창출에 이바지 할 수가 있는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이런 형편을 알게 될 때 시인은 현존국제사회에 자국의 국문학의 실존적 입지를 상고하여야하고 어문학회가 결정한 어떠한 기준과 법칙을 그 시어 속에서 적용시켜야 할 것인지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필자는 시인이 그러한 국지적 어문학으로부터 제약(制約)을 받거나 당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 견해요 주장이었다.
앞에서 공시언어와 통시언어에 대한 설명을 한바 있거니와 공시언어는 통시언어의 변이에 의하여 서서히 변화해야 하는데 그 변화의 주역이 시인의 작품에서 나오는 시어에 의하여 변이 되어 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되는 것이 순리다.
시는 시인이라는 요리사가 만든 조미료이다. 앞에서 언급한바 조미료는 두 종료가 있다. 미원이나 미풍 사카린 같은 인공 조미료와 파 마늘 깨소금 간장 등으로 만든 천연조미료가 있다. 천연조미료는 곧 인공조미료가 아닌 피조물에 내재된 神의 신성이 자연적으로 피조물에 전이(轉移) 투식(套式)되어 존재하는 조미료이며 이런 조미료가 사실상 인체에 유익한 조미료이다. 시인의 시도 천연적이며 자연적인 것이라야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발전에 도움이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작금에 와서는 이 지구촌에서 가장 훌륭한 최상 최고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발전 발달하여야한다. 하지만 그러하지 못하고 미국이나 일본 중국 같은 강대국의 어문정책에 영향을 받아 강대국의 권위에 눌리어 최고를 버리고 결국 제4 제5의 저급한 나라의 말과 그들의 글을 익히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지상에서 가장 자연적이고 가장 완벽한 말과 글은 한국말과 한국어다.
허나 국제어는 한글이 아니라 오히려 보다 못한 미국어나 일어 실로 어려운 중국어를 배우지 못해 광분한다.
더 나아가 최우수의 한글은 보다 저질인 그들의 말과 글에 접목되어 수시로 맞춤법을 개정해야했고 국어국문법이 변이되어 왔다.
더욱 미칠 것은 정부적 정책 차원에서 외래어를 한국어처럼 수용하고 어린 아이일 때부터 배우고 가르치게 하고 있는 형편이 되니 시인의 한사람으로 심히도 안타깝다.
이와 같은 현실은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한국 문단정치가 크게 잘못되어 생긴 탓이고 그다움이 국가의 교육부 문교정책의 실책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문단에서 인제 등용에 있어서 천연 조미료와 같은 자연(自然)인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문예대학 출신 어느 문사의 후배 어느 대학의 졸업생등 인공(人工) 詩人을 등용하기 때문이다.
지금 사실 국제적 공용어가 언어자체의 유용성의 우월성보다 생존경쟁의 유익한 실존에 있게 되어 사대주의(事大主義)적 사고에 집착되어 있다.
이는 곧 언어자체의 우수성과는 전혀 무관하게 미국말이나 서구어를 아는 것이 유익하다는 그것 하나가지고 온통 미쳐들 있다. 이는 언어매국이다.
영미어의 매국노요 중일어의 매국노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한글 우리 한국말이 지상최고의 말과 글이요 지구촌 최상의 말과 글임을 잘 안다.
현재 자연의 모든 소리를 99. 9% 글로 나타낼 수 있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 한국말 외에는 없다.
이런 한글을 버리고 사대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해방이후 미국미국 하면서 중산층 이상이 거의 미국인화 되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한민국은 우리나라말의 40%가 외래어로 둔갑을 하였다.
주변을 한번 살펴보라 우리나라의 모든 거리에 걸려있는 간판의 내용이 80% 이상이 외래어와 혼용으로 되어있지 않는가?
이는 언어순화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다.
그렇게 된 첫째 이유는 영상 매체인 TV나 인터넷의 활용이 거의 영문화로 구성되어 있고 그다음은 한국문단에서 학박사를 취득한 대부분의 글들이 영어를 한글로 혼용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분들이 발표하는 모든 발표문과 저술 속에는 영미어를 한글과 혼용하였고, 이를 방송 신문사나 잡지사에 그대로 발표하고 하니 그 영향을 받은 전국민들은 현대 사회에 살아가려면 자기의 말이나 글 작품 속에는 의례히 외래어를 약간씩 가미해야 그 글이 고급스럽게 유식하게 읽혀진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분명 집고 넘어갈 일이 있다.
한국인이 수천 년 사용해온 한자를 사용하면 고루하다라던가 언어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자들이 영어에는 아주 후하다.
한자는 결코 외래어가 아니다. 필자의 생각으로 작품 속에 한자어나 한자말이 있음은 그 한자는 우리나라 글임은 이미 대다수의 지성인들과 국민들은 알고 있다.
내가 외래어라고 칭하는 것은 한자를 제외한 다른 나라 글을 두고 말한다.
외국에 가서 우리나라 말과 글은 전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 나라의 말을 배워 우리나라에 와서 써먹으니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내가 자국에서 써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 가서 써먹기 위해서다.
다른 나라에 가서 우리나라 말과 글을 가르쳐서 그 우수성을 알리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국어교과서에서 배운 문법 운운 하면서 시인을 그런 기준에서등용하려는 분들의 시론이나 시학을 읽어보면 거의 절대다수가 우리글로 쓰인 외래어와 혼용하고 있다.
외래어를 지워버리면 설명이 불가하게 될 것이 아닐까 우려가 되는 때도 있다.
우리말의 온전한 발전과 국제화의 동기 제공은 언어의 순화작용의 절차인 창작에 의한 발전적 변화라야만 한다.
그러나 사실 오늘날 50년을 살아오며 쓰고 보고 익힌 말이 젊은 청들과 대화를 하면 통용이 되지 않는 그런 말이 많다.
귀에 익지 않는 말 눈에 익지 않는 글들을 다반사로 접하게 된다.
매일 매일 신문을 읽어도 항시 이해되지 않는 말이 튀어나오고 거기다가 컴퓨터가 상용화되고 부터는 수만 단어가 넘는 컴퓨터 용어사전이 우리말 큰사전을 넘겨보듯 비웃고 있다.
이것은 시대적 요청에 의한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 고들 하겠지만 최고를 소유하고 있는 이 나라의 문단을 운영하는 실세와 문교정책에 큰 잘못이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우리 물건을 외국에 수출할 때 우리는 우리글과 동시에 수출 상대국의 글로서 분명하게 해석하여 판매를 한다.
제품명까지 모두 영어나 일어 등으로 번역하여 수출한다.
그와 동등하게 우리도 외국제품을 우리나라에 수입할 때는 그들에게 우리말로 제품의 설명을 하겠끔하고 국제 통용어도 우리말을 곁들여서 사용하는 정책을 쓰면 컴퓨터 용어나 시사용어가 우리 국민전체의 실생활 용어로 통용되게 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언어불통의 혼란을 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런 실정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영감(靈感)의 소산이라 보는 시인의 시에서도 시어가 될 수 없는 시사용어나 외래어가 서서히 자리를 넓혀 심지어 의례히 한 두 편의 시 속에 외래어가 양념처럼 가미되어야 시의 품위가 있어 보이고 오히려 값이 더 나간다고 착각하게 되는 그런 경우가 생겼다. 필자의 시 속에서도 간혹 그런 시편들이 보인다.
이것은 결코 영감에 의한 창작품이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말의 상태를 저질로 변질되게 하는 퇴보 적인 변이이지 결코 언어순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편들이다.
선진국 언어라 하여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이 문화인 문화민족 같이 느끼게 되어서 인지 현재 일상생활 다반사로 사용하는 외래어가 7000여 단어이상이 되어 외래용어로 가득찬 시사 용어사전이라는 책까지 나온 현실이다.
이는 7,000여의 우리말을 잃었거나 변질되게 한 결과이다. 운동(스포츠)용어도 이에 톡톡히 한 몫 하는 편이다. 어떤 이는 이를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잘된 일이라 할지 몰라도 이것은 아주 잘못이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던지 우리나라 말로 걸러서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지상최고최상의 한글을 살리는 것이 된다.
나랏말을 살리는 것은 민족의 혼을 살리는 길이요, 결국은 한글의 세계화는 한국의 세계화의 지름길이 된다.
가끔은 한편의 시 속에 외래어를 넣어 쓰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외래어가 시어가 될 수 없음은 상징어도 은유도 아닌 이미 기존의 사용된 언어이므로 시적 허용의 권한을 이런 식으로 까지 악용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공시언어인 국어사전적 용어에 외래어식 변이를 일으켜 새로운 우리 말 을 만들어서는 결코 안 되리라본다.
이와 같이 작금의 언어형태의 변화는 언어 순화에 의한 변화가 아닌 정치권력에 의한 전략 정책적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본다.
이는 神이 자신의 능력에 도전하려 바벨탑을 쌓고 있는 인간의 교만을 잠재우기 위해 가장먼저 그 힘을 좌절시키신 방법이 언어 혼란이었다.
神이 인간들의 언어를 고의적(故意的)으로 혼란하게 하니 저들은 바벨탑을 더 이상 쌓지 못했다.
오늘날 한국의 실정이 성서의 언어 혼란을 야기한 그 말씀의 내용을 연상케 하는데 한 민족으로서의 세계적 힘의 도약(跳躍) 중심 국가로서의 발전을 분쇄하고 우리민족의 저력을 사방으로 흩어버리게 하는 그런 결과이다.
그렇다. 神이 자신의 힘을 가지고 바벨탑을 쌓고 있는 인간의 능력을 분쇄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취한 방법이 언어 혼란이었고 일본이 우리민족 말살을 위해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이 언어 말살(抹殺)이었다. 우리의 말과 글을 먼저 말살하려 했다.
현금 우리나라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이 국제화시대에 국제어인 영어를 몰라서 그렇다고 하는 자도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견해이다. 국민 전체가 영어를 몰라서 그런 것 아니다.
필요에 의한 수량만큼 특수인을 교육시켜 이를 담당하게 해도 충분하다
전문적으로 양성해야 할 외국어를 국민 전체가 알아야 한다니 외화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요즈음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한두 마디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있던가? 외국어를 많이 앎은 자랑이다. 그러나 그 자랑이 외국에 나가서의 자랑이 되어야지 국내에서는 자랑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그 외국어를 자국민에게 잘 사용하여 무엇을 얻자는 것인가? 외국어는 내가 그 나라에 갔거나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외국인을 상대로만 해야 한다. 간판의 절대다수가 외국어와 혼용이요 신문과 방송 잡지가 거의 외국어와 혼용이 된 이 나라에서 무슨 국어국문법을 앞세우고 문학을 가르친다! 시학을 가르친다! 하면서 문예창작학과를 두어 진정한 시인을 양성한단 말인가!
우리나라 거의 모든 사람이 많든 적든 조금씩은 영어를 알고 상시로 사용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국가적 망신이다.
그 만큼 국력을 필요 없는데 소비했다는 결과이다.
외국어는 외국어에 소질이 있는 특수한 인재를 필요한 양만큼 정책적으로 양성하여 유효하게 적지적소에 투입하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젊은 시절 내내 내평생의 소원은 초졸생으로 노벨상을 받는 것이었다. 영어 한 줄을 쓸 줄 모르는 가운데서 한글만 가지고 노벨문학상을 받는 그것이다. 이는 우리가 노벨문학상을 타려고 하기보다 저들이 우리의 글을 읽고 진짜 노벨문학상을 타고도 남을 작품들이 한국인의 문단에 수두룩하다는 것을 알려 세계인으로 하여금 한글을 연구하도록 하면 되지 않는가?
우리글로 그들이 소설을 쓰고 시를 짓도록 하는 그 것이 우리한국문단의 시인들이 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영어가 국제어가 된 것은 오직 위대한 문호 한사람 덕분이다.
즉 섹스피어 같은 위대한 작가의 작품이 영국에서 태어났고 그분의 글이 기독교의 발판을 가지고 세계 누비며 거의 글이 온 누리를 문화적으로 정복했기 때문이 아닌가?
현재의 우리나라는 서구화 물결을 너무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받아 드리고 있다.
이는 본래의 우리의 어문(語文)정책을 근본적으로 퇴보시키고 있어 심지어 詩를 써도 영어로 번역이 용이하고 가능한 시를 써야만 국제무대에서 빛을 보게 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것은 비극이다. 필자는 시인으로써 이보다 더 큰 한국적 비극은 없다고 본다. 사실 한글은 영어보다는 실지로 위대한 글임은 세계 자타가 인정한다.
그리고 그기에 더하여 한자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우리의 언어는 그 뜻 또 한 그 깊이가 타의 어느 나라에서도 비길 바 없으리만큼 깊고도 넓고 높고도 오묘하다.
나아가서 우리는 소리글과 뜻글 모두를 공히 사용하는 문화 민족이다.
그리고 우리의 세종대왕 집현전에서 만든 언문의 28자는 자연계의 모든 소리를 99% 정확하게 낼 수가 있으며 90% 이상은 한글로 나타낼 수도 있다.
이런 우수한 말과 글을 지니고 있는 우리민족이 자연계의 소리를 50%도 제대로 낼 수도 쓸 수도 없는 외래어의 말과 글을 배워서 저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애를 쓴다고 생각하면 부끄럽기보다 눈물이 날 정도로 분하고 억울하다.
외래어는 정규 외국어 대학을 나오고 이수(履修)한 저들에게 맡기자.
우리가 영역(英譯)을 하던 불역(佛譯)을 하던 그것이 필요하면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배운 그들에게 맡기자. 어찌 전 국민이 모두 외래어를 배워야 한단 말인가?
노벨상? 훌륭한 상이다. 그렇다고 노벨상을 타기 위해 영어로 번역이 가능한 작품을 써야 한다면 아예 그 노벨상은 버리는 것이 낳다.
물론 노벨상을 타면 좋다. 상이 탐나서 명예가 탐나서 상금이 탐나서 인지는 모르지만 국위선양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순수한 문학작품을 두고 보면 그들의 문학적 수준은 감히 우리한국인의 문학수준에 따를 수가 없다.
특히 詩쪽에서는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사와 전통이 문화민족으로서 저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우리는 저 옛날 동아문화의 창조자 동이민족이었다.
그때부터 문자를 만들어 시서(詩書)를 써 왔고 수 만(數萬)년 언어를 가꾸고 다듬어 우리 민족의 어원(語源)을 만들었다.
동이민족이 만든 한자어(漢字語)만 해도 오천만(五千萬) 여(餘) 자(字)가 넘는다.
우리에게는 이렇듯 어마어마한 숫자의 뜻글자인 한자어가 있고 우리 한글학회 어문각에서 낸 우리말 사전에 실린 낱말 한국어 숫자만 해도 164,125개나 되니 감히 어느 나랏말과 글이 우리나라의 명사나 부사나 수식어 형용사의 어휘(語彙)를 따를 수 있단 말인가?
저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말들을 가지고 있는 우리민족이다.
현 중국은 우리 동이의 글 한자를 자신들의 국어로 쓰고 있다.
지금 모두 쉬운 한자로 개정한 후 여전히 한자어인 뜻글만 사용하고 있다.
우리한국은 그 뜻글인 한자어의 바탕 위에 소리글인 한글을 겸용하여 말과 글을 쓰고 있으니 어느 문화민족이 우리 한국어 이상의 풍부한 언어의 숲에 산단 말인가?
혹자는 인도의 언어가 많다 하지만 그들은 지방마다 언어가 달라 숫자가 많아졌을 뿐 우리나라처럼 단일 민족으로 서로 통용되는 언어의 어휘력을 그만큼 가지고 있지 않다.
언어의 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언어의 역사가 길고 사물에 대한 표현력이 다양했다는 증거이다.
글자가 많다는 것은 동이(東夷)민족(民族)안에 고래(古來)로 시인이 많았다는 증거이다.
시인 한 명이 백편의 시를 썼다면 한편의 시가 탄생할 때마다 한자 한 자가 탄생했다고 가정해도 현 한어대사전의 한자의 숫자가 오천만자가 넘으니 시인이 50십만 명이나 동이족에서 살았다고 보면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공시언어가 시인의 시어에 의한 변이작용을 그치지 않고 통시언어체제로 급선회하게 되는데 시인만의 특권의 자리에 문교 정책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제(日帝)시대에는 일본국의 한국어 말살정책으로, 해방이후에는 우리의 말의 어원인 한자 퇴치 운동을, 최근에 와서는 외국어 조기교육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우리말이 설자리마저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어문정책은 어디에 숨었는지 사회전반에 매스컴을 통한 외래어 남용의 폐단이 지속되고 있다. 나아가 심지어 유치원에서부터 외래어를 가르친다. 이것이 작금 우리나라 언어문화의 현상이요 실태이다.
이렇게 한 결과 외래어와 우리말의 혼용에 의한 언어 폐단이 얼마나 중차대(重且大) 한지 그 단적인 실례(實例)로 앞에서도 밝힌바 도시 한가운데 간판을 살펴보라. 정말 놀라운 현실이다.
거의가 다 외래어를 한글로 쓰고 있다.
상점을 [슈퍼]라는 말로 쓰고 있는 것 하나만 꼬집어도 우리말 상실의 그 깊이를 알 수 있으리라.
우리 말속에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말들이 많다.
그런데도 거의 80%이상이 한글로 외래 말을 쓰는 가하면 한글과 한글 외래어를 뒤섞어 쓰고 있다. 심지어는 순수 외래어 간판이 여기저기서 전깃불에 번쩍이고 있다. 이렇게 급격히 변질되어 외래어가 남용되고 있으니 일제시의 한국어 말살정책 그 이상의 폐단이 현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이는 시인의 참된 시어 개발의 부족에도 책임이 막중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책임은 문단에 못지않게 정부의 언어정책에도 문제도 있다.
어느 나라든지 언어정책에 실패하면 그 나라는 망하고 언어정책에 성공한 그 나라의 속국이 되고 말 것이다.
神은 자신의 계시(啓示)인 말씀의 실체대상으로 피조만물세계와 인간을 창조 하셨다.
神의 상징적실체대상으로 광물 식물 동물 등 만물을 창조 하셨고. 神의 형상적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 하셨으며 이 인간의 영을 통하여 神이 이루시고자 하는 창조사업을 완수하려 하셨다.
그래서 자신의 형상 속, 영과 영혼에 神의 영인 성령이 들어가서 神의 실체대상이 되시었다. 이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神의 형상인 인간을 택하여 그 영과 영혼 속에 성신을 시켜 성령이 들어가게 하여 메시아나 선각자 선지자 예언자가 되게 하셨으며 이들은 神의 형상 속에 인간의 잘못으로 어쩌다 사단이 들어가 사단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을 알리고 그 사단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래서 사단을 추방하고 神을 모시게 되면 그자는 神의 형상적실체대상에서 실체적 실체 대상으로 변한다.
神의 실체적 실체대상이 된 자는 부활 전에는 현존의 인간의 형상을 쓰고 있지만 실속은 神의 실체적 실체대상인 메시아와 같이 유무형실체세계인 영계와 육계를 체휼(體恤) 실감할 수 있는 혜안(慧眼)을 가지게 된다.
이자는 심판 후 산 자의 부활로 영원한 神의 실체대상인 영생체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형상을 지니고 있지만 진정한 시인 신선 성현 도인 예언자 등을 바로 그런 혜안이 열린 자다.
진짜 시인은 외모로는 보통 인간과 똑 같지만 내부 정신세계는 전혀 다르다,
시인은 영적오관(五觀)과 육적오관이 모두 열린 자로서 신의 소리와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소리를 모두 듣고 통하여 인간의 세상이나 자연계에 신이 지니고 있는 신성을 재현코자 하는 본능을 자연적으로 가지게 된다.
따라서 자연히 神의 神性인 전지성(全知性) 전능성 절대성 온전성 등을 실현코자 하는 욕구를 가지게 되므로 일반 사회인과의 차이가 나타나며 분리된다.
시심(詩心)은 곧 神의 제3의 자기실현의 방법이요 시인은 곧 제2의 자기실현의 한 방법이다.
시는 신의 말씀의 실체적 실체대상으로 나타난 새로운 사물이다.
그러므로 그 시의 근본(根本)은 소성(素性)인 신의 성상(性相)이며 그 시의 근원(根源)인 원력(原力=能力)은 신의 형상(形狀)이고 그 시의 目的은 신의 자기(自己)전개(展開)로 상징적(象徵的) 形相的 실체적으로 전개를 하여 신의 자기성품인 神性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것이 창조(創造)요. 문인이 말하는 창작이다.
시의 가치(價値)는 서정(抒情)으로 지성과 정치와 예술의 결실체인 사랑의 실현이며 그 시의 시간성(時間性)은 참 가치 실현의 지속(持續) 기간(期間)이며 그 시의 공간성(空間性)은 참된 가치가 실현되는 공간으로 독자의 공감대(共感帶) 형성(形成) 폭(幅)이다.
*한편의 시가 생성되어 존속(存續)하는 데는 이런 육대원칙(六大原則)이 적용되어야 하고
이 육대원칙이 적용된 시는 반드시 문화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할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서생활에 유익한 도움을 주게 되어 나아가서는 과학적 물질문명에의 기기를 올바르게 이용 또는 사용하게 하는 인간욕망의 조율적용의 가치척도가 되게 하여 사회조직 운용의 윤활유 역할을 하게 한다.
끝으로 시는 결코 사람이 미사어구로 짜 만들고 교과서적 지식과 재능으로 꾸밀 수는 없다.
꾸민다 하드라도 이는 언어의 기교요 짜집기 어의복사 모방(模倣)이요 혹은 날조일 뿐이다.
기존의 자연을 사진 찍기 오려 붙이기 괴물 그리기 등이므로 작품 당시에는 그 사람의 권위나 권능 시대적 배경 등으로 인하여 표창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될지 몰라도 결국 육대원칙에서 벗어난 시는 사장될 수밖에 없다.
이만 총론을 접는다.
일자 : 2001년11월 ⊙ 작품장르 : 시론
⊙ 글 번 호 : 72645 ⊙ 조 회 수 : 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