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을 진지하게 듣는 팬들을 만나게 되면 종종 프로그레시브 음악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국내 서구음악 수요자들 가운데 헤비메탈과 함께 가장 많은 매니아를 거느리고있는 음악이 프로그레시브일 것이다. 1980년대 내내 많은 라디오 청취자들이 심야프로에서 흘러나오는 프로그레시브 음악에 매료되었다. 어휘대로라면 '진보적'이라는 의미의 프로그레시브 록이란 과연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
프로그레시브 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장르가 태동했던 1960년대 말 당시 서구의 음악환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젊음의 숨소리가 거칠고 뜨거웠던 그 무렵에 음악팬들을 사로잡았던 음악은 과거의 패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것들이었다.
비틀스는 공연을 중단하고 스튜디오에 들어가 미지의 록 탐구에 골똘했고, 롤링 스톤스도 자신들 특유의 거친 록에 다양한 요소들을 가미해 팬들을 완전히 장악했다. 밥 딜런은 포크록에 이어 컨트리와 록을 융합하는 '컨트리록'을 제시해 많은 가수들이 그 뒤를 따랐으며 그룹 후(Who)는 록 최초로 오페라를 시도했다.
지미 헨드릭스는 사이키델릭에 바탕을 둔 경이로운 기타 테크닉과 효과음을 동원해 기타 한대가 오케스트라임을 증명했고 재즈의 거목 마일스 데이비스는 "전쟁과 종교로 갈라진 이 세상에서 음악만은 융합해야 한다"는 사고 아래 재즈에 일렉트릭 리듬을 섞어 '재즈록 퓨전'의 새 길을 열었다.
갈래로 흩어져 나간 듯 했지만 이 모든 것들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이전의 음악스타일에 만족하지 않고 무언가 새로운 것(something new)을 찾아내려는 '실험정신'이었다. 본래 음악인들이란 자신의 개성과 세계를 살려 남들과는 다른 독창적이고 참신한 음악을 만들어내려는 자세를 지니고있다.
1960년대 말 음악가들의 그런 시도와 실험 속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음악이 바로 프로그레시브 록이었다. 이 음악의 출발점은 "록을 단순한 코드 속에 가두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기존의 록에 화성이 화려하고 복잡한 음악을 뒤섞게 됐는데 그 화려하고 복잡한 음악이란 바로 록과는 사뭇 다른 '클래식'이었다.
말하자면 유럽의 풍부한 클래시컬 모티프와 오케스트레이션을 끌어대 훨씬 확장되고 난해하고 다층(多層)적인 음악을 하려는 과감한 실험이었다. 시작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곡으로 꼽히는 '어 화이터 세이드 오브 페일(A whiter shade of pale)'의 주인공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이나 국내에서도 널리 애청된 '나이츠 인 화이트 새틴(Nights in white satin)'이 웅변하듯 교회 풍에 교향악 스타일의 음악을 시도한 무디 블루스(Moody Blues)와 같은 그룹이 꼽힌다.
하지만 프로그레시브 록의 개념이 보다 완성되고 음악계에 충격파를 던진 주인공은 킹 크림슨(King Crimson)이었다. 65만 명의 관객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던 런던 하이드 파크 공연에서 롤링 스톤스를 지원하면서 관심을 모은 이들은 1969년 말에 발표한 앨범 으로 영국 차트 5위를 차지하는 선풍을 일으켰다.
한 편의 클래식을 연상시키는 킹 크림슨의 곡 '묘비명(Epitaph)'은 1970년대 국내의 음악다방 전성기 시절을 수놓으며 널리 사랑 받았다. 이들의 음악은 한마디로 록의 함성에 클래시컬한 기타 연주를 혼합한 것이었다. 당연히 음악은 웅장하며 신비로웠다.
바로 뒤를 이어 킹 크림슨의 멤버 그렉 레이크, 클래식으로 단련된 건반주자 키스 에머슨 그리고 드러머 칼 파머가 모인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And Palmer)도 클래식 모티브로 가득한 첫 앨범을 발표하며 시선을 장악했다. 이듬해인 1971년 이들은 놀랍게도 아예 무소로그스키의 명작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를 라이브로 연주한 앨범을 선보였으며 나중에도 바흐의 '토카타'와 아론 코플랜드의 '로데오'의 멜로디를 끌어댄 대곡을 만들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당시 "이 그룹은 롤링 스톤스가 블루스를 끌어온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클래식의 스타일과 테크닉을 동원했다"며 이들에 대한 관심을 기사화했다.
역시 영국그룹인 예스(Yes)도 마찬가지의 충격파를 몰고 왔다. 이들의 1972년 곡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은 미국 빌보드 차트 13위에 오르며 많은 팬들의 놀라움을 샀다. 어떻게 그런 화려하고 복잡하나 멋진 곡이 나올 수 있느냐는 반응들이었다. 이 곡에서 클래식 감성으로 무장된 건반주자 릭 웨이크먼은 상상을 깨는 정도의 경이로운 건반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다시 한번 '타임'지는 "예스와 같은 복잡하고 교육이 된 사운드를 들려주는 그룹이 장벽을 깼다"며 "가끔은 갇혀있던 록의 세계에 햇볕이 들고있다"고 평했다.
킹 크림슨은 아직 악기의 중심이 기타에 있었지만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나 예스에 와서 그것은 완전히 건반으로 옮아갔다. 피아노나 키보드는 아무래도 복잡한 화성을 구사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악기 구심점의 이동은 음악스타일의 커다란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록은 이제 복잡해져있었다. 테마는 끝없이 확장되었으며, 한 곡 내에 스피드는 변화무쌍했고, 변주 변조는 상용되었다. 프로그레시브에 대해 난해하다는 일반인들의 인상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흐름은 젠틀 자이언트(Gentle Giant), 제니시스(Genesis) 그리고 포커스(Focus)로 확산되며 1970년대 초 중반의 음악경향을 대변했다. 어떤 사람들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를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그들은 복잡하고 바그너식의 웅대한 음악을 했으되 클래식 테마를 끌어댄 적이 없어 통상적으로는 이 분류에서 빠진다.
그 경향이란 곧 다분히 사회적이었던 1960년대와는 확실한 선을 긋는 예술지향성이었다. 정말 이 무렵에는 완성도가 높고 어려운, 지극히 예술적인 음악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이 지금도 1970년대 록을 '록의 황금기'로 규정하는 것은 예스처럼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으면서도 섬세하고 탐구적인 예술성이 가득한 음악을 들려준 그룹과 가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프로그레시브 록과 아트 록(Art rock)이 어떻게 다르냐는 점이다. 프로그레시브는 상기한대로 아트의 경향을 대변하므로 분명 이 두 장르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도 혼용된다. 1980년대 이후에는 프로그레시브란 말 대신 아트 록을 쓰는 빈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프랭크 자파(Frank Zappa)나 록시 뮤직(Roxy Music)처럼 강렬한 록을 구사하되 자의식이 강하고 냉소적이며 예술적인 스타일의 음악을 들려준 그룹도 아트 록으로 분류되곤 한다. 프랭크 자파의 경우 클래식을 넘나들 정도의 전위적 음악을 들려주었지만 그렇다고 이들 음악을 딱히 록과 클래식의 퓨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여기서 아트 록에 대한 혼동이 빚어지는 것이다. 즉 아트 록은 거의 프로그레시브의 개념으로 인식되어있지만 일각에서는 록시 뮤직 등의 고감도 록을 가리킬 때도 언급한다는 사실을 알면 그런 혼란은 피할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록은 비록 영국이 대세를 장악했으나 인근 유럽 국가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으로도 흐름이 이어졌다. 영국을 포함한 이들 나라에 프로그레시브 록이 자리를 잡은 배경에는 오랜 역사의 클래식 전통이 있었다. 이것이 미국과 달랐다. 미국은 그룹 캔사스(Kansas)를 빼고는 별다른 프로그레시브 록밴드를 내놓지 못했다. 결국 프로그레시브는 영국을 비롯한 클래식문화가 강한 유럽국가 중심의 조류임을 알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유럽의 일각에서는 프로그레시브를 '록의 진전된 형태'로 후하게 보는 경향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특히 미국은 '단순한 코드와 하층민적 저항의 록에 대한 일종의 배신'이란 이유로 프로그레시브를 록의 주요한 형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어찌 록이 계급적 기반이 다른 클래식과 합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 때문에 '롤링스톤' '스핀' 등 미국의 대표적 록 언론은 명반을 꼽을 때도 좀처럼 프로그레시브 앨범을 거론하지 않는다. 연주력을 비롯한 실력에서 프로그레시브 록그룹을 넘볼 수 없는 펑크밴드들, 이를테면 섹스 피스톨스나 클래시의 앨범은 늘 명반대열에 올라있지만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나 예스는 그런 영예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하층민 청년들의 외침'으로 록을 계급적으로 정의하는 풍토가 무너지지 않는 한 프로그레시브 록에 대한 핀잔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수준 높은 록을 들려주면서 록의 방법론 확대에 공헌했으면서도 프로그레시브에 드리워진 비극적 운명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