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고 물 건너' 남미여행 (07.12.17 ~ 08.01.10)
12/22 : 잉카에서 말을 타다
[11:15pm]
너무 짧게 머물러서인가. 이른 새벽 아구아 깔리엔떼스를 떠나려니
아쉬움이 앞섰다. 기차역으로 걸어가니 마추피추 올라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줄지어 모인 사람들이 보였다. 저 사람들도 잠시 뒤면
탄성을 질러대겠지.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은 뒤
오얀따이 땀보행 기차에 올랐다.
해가 뜬 오전에 이동해서 주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비록 기차와
버스 안에서만 봤지만 오얀따이 땀보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다. 스페인이 침범했을 때 잉카 군대가 마지막까지
저항한 장소가 이 곳이고, 그와 관련된 흔적도 남아 있다. 꾸스꼬로
이동하는 길에 내려다 본 오얀따이 땀보는 그야말로 배산임수의
조건. 우루밤바 강줄기가 굽이쳐 흐르고 웅장한 산들이 병풍처럼
두른 오얀따이 땀보를 담으려고 나는 버스 맨 구석자리에서 연신
셔터를 눌렀다.
예상보다 일찍 꾸스꼬에 도착한 우리는 저녁 때 이동할 뿌노행
버스티켓을 사고 점심을 먹었다. 지난번에 먹었던 아도보, 치차론에
이어 이번엔 삼계탕과 비슷한 맛을 내는 음식까지 먹어봤다. 맛은
둘째치고 다들 시장했던 터라 열심히 먹어치웠다. ㅎㅎ 잉카콜라가
왜 중독성이 있다고 하는지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다. 물 대신
잉카콜라를 사 마실까 하는 충동이 살짝 들만큼, 시원하면서
달짝지근한 맛이었다.
반나절 여유가 생긴 우리는 말타기 투어를 시도해봤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7,000원 정도 지불하면 말을 타고 다니며 인근 유적지를
돌고 꾸스꼬 지역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상품이다. 이름도
친근한 훌리오라는 가이드를 잘 꼬셔(-_-;) 가격을 깎은 뒤 말에
올랐다. 내겐 말을 타는 것이 처음이라 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다행히 잘 길들여지고 순한 말들이라 별 사고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달의 신전, 샥사이와마 등 곳곳을 둘러보며 2~3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한 손으로 말 안장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잡은채 사진을 찍으려 무진 애를 썼다. 워낙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곳이라 대충 찍어도 예쁜 사진이 나오는 듯 했다.
그렇게 투어를 마친 늦은 오후, 우리 셋은 일제히 엽서를 사고
아르마스 광장에서 엽서쓰기 시간을 보냈다. 여행에서 누리는
재미 중 하나는 이렇게 엽서를 써서 보내는 것이다. 받는 이는
물론 보내는 이 역시 좋은 추억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 주소 적어오는 걸 깜박한 나머지 1장 밖에 보낼 수 없었다.
ㅡㅜ 이왕 보낼거면 빨리 보내는 것이 좋을텐데. 괜히 늦게 보내서
내가 한국 들어간 이후에 도착하면 어쩌나. ㅋ 엽서를 쓰며
지금까지 여행한 기록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의 일정을 점검해
보았다. 이렇게 여행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여행마친 후 친구나
가족을 만나는건 더욱 재미있을 것 같다.
광장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곧바로 떼르미날 떼레스뜨레,
즉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버스 출발시간이 되기까지 쉬었다.
이런 때를 위해 준비한 Andrew의 rare item, 카드세트가 등장했다.
생각보다 많은 인파로 자리를 찾지 못한 우리는 복도 한 구석
적당한 공간에 앉아 카드게임을 시작했다. 시작한지 5분도 되지
못해 하나둘씩 꼬마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대부분 집없는 아이들,
혹은 가족과 함께 구걸하는 꼬마들이었다. 신기했던건지 재밌어
보여서 그런건지 아이들은 점점 우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 애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일부러 멀리
떨어지라 손짓하고 짐짓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보지만 애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정말 몰라서였을까, 아님 워낙 그런 시선을
많이 받아서 무덤덤해진 것일까. 게임을 하는둥 마는둥 마무리하고
시간에 맞춰 버스에 올랐다.
나름 일등석(cama, 까마) 좌석을 싸게 구입해 흡족하다. 좌석
쿠션이나 다리받침대 등도 괜찮다. 버스 안에서 글을 쓰는 지금
별 무리가 없을만큼 승차감도 좋은 편이다. ㅎㅎ 아구아 깔리엔떼스
에서 꾸스꼬를 거쳐 뿌노까지... 오늘은 약간 여유를 갖고 쉬면서
이동하는데 주안점을 둔 하루였다. 여기서 뿌노까지는 대략 7시간.
내일 새벽녘에는 도착할 듯 싶다. 고산병 예방약도 먹었고 물도
충분히 마셨으니 이제 잠만 자면 된다. ㅎㅎ
원래 경유지인 훌리아까 역이 기념품 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새벽에 통과하게 돼 아쉽게도 구경을 못할 것
같다. 아무래도 볼리비아 넘어가면 라파스에서 알아봐야겠다.
오늘은 한 숨 푹 자자. 그리고 내일, 맑디맑은 티티카카 호수에서
한나절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겠다.
가로등도 없는 도로를 따라 버스는 달리고 또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