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를 기억하다.
만일 내가 를 보지 않았더라면 감우성을 그저 ‘작품 운이 좋았던 배우’정도로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를 보지 않았더라면 손예진을 ‘미친 듯이 얼굴만 예뻤던 된장녀’ 정도로 폄하했을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를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먼 훗날 동료 드라마 PD를 보고 한심한 듯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를 보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로 시작하는 익숙한 멜로디에 예전처럼 ‘뭐 이런 개 유치한 가사가 다 있어’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과거 일본 드라마 을 보며 노지마 신지 특유의 사랑얘기에 미친 듯이 빨려 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가 ‘여배우 바꿔치기 선수’라는 얘기를 들은 이후로 연애나 사랑을 다룬 드라마는 내게 관심 밖이었다.
그것도 한국드라마?
김수현이 하는 말을 가슴으로 이해하기엔 난 아직 어리다. 오호 통재라, 의 미친 양동근은 어디 가고 같은 개한테 갔다 줘도 보지 않을 영화나 찍어대고 있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가 ‘메디컬 드라마’로 둔갑하는 그저 얇은 거품만 거둬내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Soap Opera에 빠질 리도 만무하다.
그런데 누군가의 추천으로 뒤늦게 다운 받아 본 는 실로 오랜만에 나를 설레게 했다.
모니터 속 손예진(은호)는 어느 때보다 수수했지만 최고로 빛났다. 감우성(동진)의 착 감기는 음성의 독백은 늦은 밤 화면을 일시정지 시키면서까지 감상에 젖게 하기에 충분했다.
를 보는 동안 나는 한창 때 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적당히 무겁지만 우울하지 않고, 적당히 가볍지만 유치하지 않고, 적당히 질질 끌지만 끝 맛만큼은 담백하고, 잔잔하지만 언제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을 머금은 는 분명 몇 해 전 내가 열광했던 에쿠니 가오리의 책장 모습 그대로였다.
‘이혼한 남녀’라는 무겁기만 한 소재를 이정도로 풀어낸 것을 두고 굳이 ‘일본소설이 원작일 뿐이잖아’라고 폄하할 필요는 없을듯하다. 역시 일본소설, 나아가 일본드라마가 원작이지만 누구도 그것을 ‘단순한 아류작’ 정도로 격하시키지 않는다.
제 아무리 좋은 요리재료도 좋은 요리사와 좋은 요리기구가 있어야 ‘맛다운 맛’이 탄생하는 법. 는 좋은 원작에 좋은 배우와 좋은 제작진이 어우러진 몇 안되는 ‘진짜 드라마’임이 분명했다.
적어도 최종회를 앞뒀던 15화까지는.
드라마 를 잊다.
“누군가의 선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그는 개개인이 누릴 수 있는 쾌락의 합이 최대가 되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경제학의 대명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유명한 19세기 영국의 경험주의 사상가 제레미 벤담이 공리(Utility)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며 했던 말이다.
놀라운 것은 벤담이 생각했던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고 믿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양적으로 더 큰 행복을 위해야 할 때 개인의 이기심은 절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만일 그가 21세기 대한민국 드라마 마지막 회를 봤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결국 한 명의 상처로 셋 중에 둘이 행복해 졌다. 한 명의 이기심을 억눌러서 두 명의 이기심이 구원 받았다. 최대 다수가 행복해졌으니 그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을까?
멜버른에서 궁중요리사로 성공했다는 , 잡지에서 언뜻 내 보인 그녀의 웃음 어딘가에 쓸쓸함이 묻어나 보였던 것은 과거 내 트라우마가 빗어낸 지나친 피해의식 탓일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사랑받는 편에만 설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항상 이나 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나도 언젠가는 일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마지막 선택이 못내 아쉽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다시 사랑해도 되겠냐는 딸의 질문에, 지금까지 그가 지켜온 ‘사회규범’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용기를 내서 행복해져라’고 다그치는 아비의 모습. ‘죄를 지을 수는 없다’는 딸의 말에, ‘인간이니까 죄를 짓는 것’이라며 딸의 죄책감을 덜어주려던 그 목사 아비의 말이 비겁하게만 느껴진다.
‘지금 염치없게도 행복하다. 그러나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의 마지막 고백마저도 내겐 그들의 선택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늘어놓는 자기변호 정도로만 들린다. 2008년, 스물 여덟의 남자, 아직까지는...
서두에 말했듯이 는 분명 좋은 원작, 좋은 배우, 좋은 제작진이 어우러진 흔치 않은 웰 메이드 드라마다.
하지만 마지막 회 몇 십 분 동안의 이야기 때문에 나는 벌게진 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떨리는 가슴으로 베개를 끌어안았던 를 오랫동안 기억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니, 오랫동안 기억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과 의 행복한 마지막 웃음만을 기억하기엔 ‘감정의 최대 다수’에 속하지 못했던 의 뒷모습이 아직 너무 아프다.
# 드라마 내내 익숙했던, 익숙한, 익숙해질 장소가 너무 많이 나와서 반가웠다. #
# 이혼한 과 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다. 밀가루 가격이 상승한 탓일까, 의 가격이 올랐지만 당분간 를 지날 때면 유혹을 참기 힘들 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