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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남대문~

임홍순 |2008.02.12 13:48
조회 60 |추천 0
아! 남대문(南大門)!  서울의 상징이고 우리 민족의 얼굴인 남대문이 610년만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숭례문(崇禮門)이라고 하지만 우리들 어릴 적 기억속에는 남대 문이다.  필자는 서울 사람이지만 늘상 시내를 나가면 남대문을 머리에 얹고(?) 나섰다.  내가 아는 지방분은 서울에 오면 으례 남대문을 보는 것 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만치 만인의 가슴에 남겨져 있다.   또한 필자는 70년대 초부터 남대문을 중심으로 광장을 만들어야 한 다고 주장해온 사람이다.  그래서 남대문 앞에 있었던 연못도 재현하고 주변 건물들을 밀어내고 광화문까지 그 광장이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난 2005년 어줍잖은 광장을 만들어졌을 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 직접 남대문을 다녀오기도 했었다.    1398년 창건되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6.25전쟁의 포탄속에서도 굳건했 던 남대문이다.  어제(2.11) 오후, 처참한 현장을 다녀와 610년이라는 세 월을 버티고 화마에 무너진 남대문을 보니 정말 멍해졌다. 뭔가 큰 상실 감에 빠져 눈가가 젖어왔다.   행여 지난 10년 좌파정권의 몰락에 불만을 품은 자들의 소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져도 들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이념투쟁에 골몰했던 그들은 경제성장이라는 목표 지향점도 잃고 사회 안정시스템에 대 해서도 무방비로 방치한 채 온갖 사건사고로 얼룩진 정권, 문제가 발생해도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그런 정권, 오직 친북, 종북에만 열 중하던 그들이었다.  그 속에서 이번과 같은 엄청난 사고가 민족의 영혼 을 제물처럼 사라지게 한 것이다.   송호근 교수는 현 정권의 지난 해 12월의 사건 사고를 아래와 같은 글로 남겼다.(요약)   (인천 먼 바다에서 불법 정박하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예인선에 이끌려 출발하기 시작했던 것은 지난해 12월 6일 오후 2시. 갈퀴를 숨겨온 바다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새벽 5시, 풍랑이 일었다. 예인선이 크레인의 둔중한 몸채를 감당한 채 와이어가 끊기며 크레인은 일곱 차례 충돌이 일어났다. 유조선에서 기름이 쏟아진 것은 새벽 7시, 표류의 끝은 재앙의 시작이었다. 뚫린 구멍으로 수 천t의 기름이 쏟아졌다.  



바로 그 시각, 강화도에서 총기를 탈취한 괴한은 평택 저지선을 뚫고 남하했다. 수 백 명의 군경이 평택 부근의 골짜기를 샅샅이 훑었는데, 찾아낸 것은 무상한 덤불 숲이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의 오페라공연 중에 불이나 관람객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피해자는 없었지만 예술의전당은 1년 동안 문을 닫아야 할 만큼 치명적인 재앙을 입었다.   12월 19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며칠 뒤, 안산. 불법 성인오락실에서 불이 나 5명이 죽었고 2명이 화상을 입었다. 사흘 뒤, 서울 강서구에서는 카드 빚에 쪼들린 청년이 초등학생을 납치했다.   새해가 밝았다. 1월 7일, 이천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시너와 LP가스통이 널브러진 냉동창고에서 용접 인부가 튕긴 작은 불꽃이 화근이었다. 그 화재로 조선족 일가족을 포함해 일용직 40여 명이 죽었다.   이틀 뒤 울산, 절도범이 뚫은 송유관 구멍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솟았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15일, 기상청이 예견하지 못한 폭설이 내렸다. 서해안고속도로에서 차들이 엉켜 연쇄 충돌했다. 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경고했던 ‘위험 사회(risk society)’의 한국판 월(月) 명세서다.  국민소득 2만 달러, 경제성장의 모범생인 한국에서 삶은 이렇게 방치돼 왔다.)    아, 남대문이 불타던 2008년 2월 10일,, 오죽하면 관악산의 화기를 막으려 숭례문이라 이름졌던 현판이소방관의 손끝에서 떨어져 나갈 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동이쳐진 기분이었다.   이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제발 사건사고의 얼룩져 끝내는 나라의 국보 1호를 불태워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용의자(마스크 사진)가 체포되어 범행을 자백했다고는 하지만 국보 문화재관리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을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  소방진화작업에 나섰던 책임자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아울러 2.12일자 중앙일보에 뜨르면 유홍준 문화재청장(사진 좌측)은 정권 말기의 장관으로 해외 휴가를 즐기며 특정업체로부터 항공료 지원을 받고 공무원 내부의 출장비(1600만원)는 별도로 챙기는 아주 못된 공무원의 전형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하니 그는 우리 공무원 사회의 썩은 한 단면을 보여준 셈이다.  하긴 청와대 보좌관들의 억대 수수와는 비할 바가 아니련만 사고의 문제이다.   그는 민청학련사건(1974)으로 민주운동의 공로를 내세웠지만 결국 허상이다.  "우리  문화유산 답사기"로 장관자리까지 꿰찮지만 정작 우리의 가장 큰 문화유산을 불태워버린 자가 된 셈이다. 바로 부패한 공무원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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