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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이영주 |2008.02.15 00:34
조회 33 |추천 0


명장 (The Warlords, 2007)

감독 : 진가신

 


 

 

멜로감독, 알맹이 없는 대의명분을 까발리다


 


요새 영화판이 왜 이 모양이야, 투덜거리던 어느 날. 영화나 한 편 보자는 선배언니의 말에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한국영화 애호가로서 헐리우드영화나 중국영화에 눈길이 가는 건 가뭄에 콩 나듯 있는 일이니, 이건 매우 특별한 사건이었다.

사실 특별한 사건이랄 것은 없고,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멜로영화의 거장 진가신 감독이 무협영화를 만들었다는데, 포스터만 봐도 웅장한 스케일로 우선 먹고 들어가는 장이모우나 첸 카이거 감독 류일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를 만들었다는데, 그것이 신기했다. 과연 진가신 감독이 무협영화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 광활한 중국대륙의 전쟁판을 멜로판으로 뒤바꿔놓으려나? 아니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택해 전형적 중국무협액션영화를 만들었으려나?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리고 멜로감독 진가신은 그 호기심에 걸맞은, 아니, 호기심을 충족시키다 못해 더 큰 질문을 던지는 엄청난 영화로 나의 얄팍한 호기심에 화답해 주었다.

 

멜로감독이 무협을 만났을 때


19세기 중엽. 청나라 조정은 부패했고, 백성들은 굶주렸다. 결국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우리도 역사시간에 스쳐지나듯 들어본 적이 있는 태평천국의 난이다. 태평천국의 난은 청나라 말기 홍수전이 일으킨 내란이다. 홍수전은 당시 유입된 성서에 큰 영향을 받아 자신이 예수의 동생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만주족 요괴를 제거하고 태평천국을 건설하라는 사명을 받았다며 병사를 조직해 민란을 일으킨다. 대부분 농민으로 구성된 병사, 태평천군은 중국의 중부와 남부를 장악했다. 그러나 서태후와 군벌들의 반격과 기근으로 7천만명이 사망하면서 14년 간 지속됐던 태평천국의 난은 최후를 맞는다.

진가신의 <명장>은 바로 이 태평천국의 난이 있던 시기 태평천군에 맞서 싸우는 세 명의 의형제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무협액션극이다. 헌데 그가 무협영화를 만들면서 중국역사에서 가져온 소재는 <영웅>이나 <연인>의 장이모가 가져온 이야기와 많이 다르다. 뭔가 비장하고 대의명분이 철철 넘쳐나는, 그럴 듯한 이야기들을 다 제쳐두고 진가신 감독은 태평천국의 난에서 마신이 살해사건을 끄집어 온다. 마신이 살해사건이란 태평천군의 반란을 진압하며 승승장구 양강총독 자리까지 오른 마신이가 그의 의형제 장문상의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다. 장문상이 마신이를 왜 죽였는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지만, 마신이가 그의 또 다른 의형제 조이호의 아내와 눈이 맞아 정분이 났고 결국 누명을 씌워 조이호를 죽였는데 의형제로서 이를 용서할 수 없었던 장문상이 마신이를 살해했다는 설이 유력하단다. 물론 장문상은 당시 최고로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당했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만난 남자들의 멋지구리한 의리가 아니라, 너저분한 치정극에 의해 결국 의형제 모두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는 마신이 살해사건을 모티브로 잡았다는 것, 거기서부터 장이모 류의 정통 중국무협액션극이나 영웅본색 류의 홍콩갱스터영화와는 다른 노선을 걷는 진가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 이제 멜로감독이 무협의 칼을 쥐고 무협의 심장인 남자들의 의리를 헤집는 일만 남았다.


그놈의 의리, 초반부터 이상하다

 

태평천군의 반란을 진압하던 청군 장수 방청운(이연걸 분)은 원래 후방을 맡아주기로 했던 '괴'군의 배신으로 자신의 군사 1600명을 모두 잃고 부하들의 시체 밑에 깔려 죽은 척해서 간신히 자기 목숨만 건진다. 패잔병답게 겔겔거리며 허허벌판 사막을 걷다 한 여인을 만나고, 여인이 끓여준 죽의 따뜻한 온기 때문인지 오랜만에 맡은 여인의 향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여인과 하룻밤 인연을 맺는다.

그러다 굶주린 인민들에게 빵을 나눠주던 도적떼를 만나 그들에게 합류한 방청운은 오랜 군생활로 단련된 무술과 병법으로 도적떼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조이호(유덕화 분), 강오양(금성무 분)과 한눈에 의형제 삘을 느낀다. 그런데 아뿔싸, 방청운의 하룻밤 여인이 조이호의 아내 연생(서정뢰 분)이로군. 이를 어쩌나. 어쩌긴 뭘 어째, 방청운은 조이호 몰래 연생과의 만남을 지속한다.

의형제 삘은 이미 느꼈는데 몰래 연애는 계속해야 하고, 그럼 이거 처음부터 얘기가 안 되는 거 아닌가 궁금해할 틈도 없이, 세 남자는 후다닥 피로써 의형제를 맺는다. 의리로 형제 맺는데 연애문제는 별개일 수가 있는 건가? 의아한 마음이 아니 들 수 없건만, 세 남자에게는 별로 문제가 아닌가 보다. 게다가 세 남자가 의형제를 맺는데 왜 무고한 살인을 해야 하지? 서로의 악행을 부추기고 그것을 눈감아주는 게 의리의 시작이라니, 그놈의 의리 초반부터 이상하다.

어찌됐든 의형제 삼인방은 청군에 합류해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선전을 펼치며 승승장구, 소주성을 함락하고 결국 숱한 왕조의 수도였던 난징까지 함락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초반부터 의아함 가득이었던 이상한 의리로 맺어진 삼형제의 승승장구가 예의 무협영화나 갱스터영화처럼 순순히 흘러갈 리 만무하다. 전쟁에 전쟁을 거듭하면서 그들의 의리는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알맹이 없는 의리, 허무한 비극을 낳다

 

방청운, 조이호, 강오양은 나름 캐릭터가 확실한 인물들이다.

애초부터 청군의 관료였던 방청운은 "압제받는 백성이 없어야 하기에 싸운다"는 등 멋진 말들로 순진무식한 도적떼들을 선동해 전쟁터로 나선다. 그 선동이 진심이었는지 매끈한 거짓이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설사 그가 내뱉은 숱한 이상이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결국 그가 원한 것은 권력이었고, 하기에 그의 이상에 어긋나는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그는 현실과의 타협을 선택했다. 방청운은 어쩔 수 없는 현실주의자다. 방청운에게 의리는 현실이다. 사실 방청운이 잘 알지도 못하는 조이호, 강오양과 의형제를 맺은 것은 의리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있어야 청군에 복귀할 수 있는 현실 때문이었다.

조이호는 험난하고 궁핍한 시절 자신과 가족들이 살아남기 위해 도적질을 했던 무지랭이다. 방청운을 형으로 모시면서 단지 '살기 위해서'가 아닌 다른 목적, 즉 대의명분을 가지고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배웠다. 무지랭이 도적떼 수장이었던 조이호, 하기에 방청운이 현실과 타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관례대로 정복한 성의 여자를 강간한 소년병들을 죽이지 않는 것이 조이호에게는 의리였다. 소주성 백성들과 군사들에게 소주성의 영주와 맺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조이호에게는 의리였다.

강오양은 방청운, 조이호보다 훨씬 어린 세대다. 보아하니 그에게는 부양할 가족도 없어 보이고 그가 마주치는 세상 모든 것들이 새롭고 신기한 배울거리들이다. 그런 강오양에게 방청운은 닮고 싶은 롤모델이다. 하기에 그는 자신과 흙장난을 하며 뒹굴었을 소년병들을 자신의 손으로 처형한다. 하기에 그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투항한 소주성 병사들을 향해 '발사'를 외친다. 강오양에게 의리는 닮고 싶은 그 무엇이었다. 때문에 아버지같고 형같은 조이호의 천진한 이상과 닮고 싶었던 방청운의 현실이 맞부딪혔을 때, 강오양의 의리는 정신분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이들 세 사람은 무고한 피를 흘림으로써 의형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 머릿속의 '의'는 제각기 달랐다. 아니,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들 의형제에게 '의'는 없었다. 다만 필요가 있었을 뿐이다. 방청운에게는 다시 정계(?)에 복귀하기 위해 조이호와 강오양이 필요했고, 조이호와 강오양은 굶주리는 가족들과 이웃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청운과 손을 잡아야만 했다. 문제는 그런 필요를 거창한 의리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무고한 피 위에 세운 거짓 의리는 알맹이 없는 대의명분을 남발했고, 결국 세 사람의 비극적 최후라는 허무한 결말을 가져왔다.

 

投名狀 (투명장, 투항장)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선배언니가 물었다. "그런데 왜 제목이 명장이야?" 그런 질문이 나올 법했다. 이 영화에는 무협영화라면 한 사람쯤 나와줄 법한 멋지구리한 명장이 단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현실을 쫓아 대의명분이 손바닥 뒤집듯 뒤바뀌는 장수, 그런 현실과 섞이지 못하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찌질한 장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은 장수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영화를 본 뒤 검색을 해보니 이 영화의 원제는 투명장이란다. '투명장'이란 수호지에 나오는 말로, 사람의 목을 따다 바쳐야 충성을 표할 수 있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이런, 명장과 투명장은 전혀 의미가 다르잖아. 한글제목 사기극이군. 쳇.

어찌됐든 원제를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진가신 감독은 애초부터 태평천국의 난이라는 중국사에서 멋진 명장의 이야기를 끄집어내 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 무고한 살해 위에 세워진 의리, 즉 알맹이 없는 대의명분이 가져온 비극적인 살육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예의 중국무협영화처럼 스케일 빵빵한 전쟁영화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스펙터클한 전쟁영화라면 으레 기대되는 쾌감을 얻을 수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감독은 호방한 전쟁씬 구석구석에 클로즈업 화면으로 고통에 일그러진 병사들의 모습, 잔인하게 살해되는 인간의 모습, 또 전쟁통에 타인을 살해하면서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군상들의 얼굴을 담아낸다.

이 영화가 내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긴 것은 이 때문이다. 내용 없는 원칙과 알맹이 없는 대의명분이 난무하는 시기, 그따위 원칙과 대의명분이 가져오는 것은 허무한 비극밖에 없다는 것을 이 영화는 너무나 고통스럽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P.S. 이 배우처럼만 늙어다오, 유덕화!



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엔 의형제 중 첫째 역할은 당연히 유덕화일 거라 생각했다. 아마도 이연걸보다는 유덕화에게 조금 더 기운 나의 애정 탓일 게다. 분량 상으로 보나 이야기 흐름 상으로 보나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 중 첫째가는 주연은 방청운을 분한 이연걸이다. 그리고 진가신 감독의 선택이 옳았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방청운 역을 유덕화가 했더라면 훨씬 더 잘했을 거란 생각, 여전히 가지고 있다. 비록 <연인>에서는 대략난감이긴 하였으나 <무간도>에서 보여준 그의 이중적 연기에 흠뻑 반해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조이호 역을 분한 유덕화 역시 매력적이었다. 이 영화를 보며 한번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속으로 울컥한 장면이 하나 있다. 겉으로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울음이 나는 이상한 경험. 그것은 의형제들이 이끄는 '산'군이 난징까지 함락한 뒤 한 연회장에서 자신들을 소재로 한 경극을 보면서 술을 마시는 조이호를 보았을 때였다. 그는 웃고 있었다. 마치 체념한 듯. 그러나 그의 굵은 주름 위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가신 감독 인터뷰 기사를 보니 조이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감독이 요구한 연기가 아니었단다. 유덕화가 그리 했단다. 유덕화가 눈물을 흘리며 웃는 연기를 하는데 일순간 모든 스텝들이 조용해졌단다.

나의 고교시절, 책받침으로 깔려계시던 청춘스타 유덕화. 이렇게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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