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감이 생겼다." 와 "꿈을 잃었다." 라는 것은
엄연히 다른 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끔 그 말을 혼동, 혼용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몇달 전쯤이었던가.
앞으로도 방송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자,
알음알음 알던 지인이 무심결에 뱉은 말이 있었다.
"옛날엔 단편 영화 하고싶다더니, 하긴.. 단편영화는 돈이 안되지..." 라고-
그 때 내 대답은 간결했다.
"아니, 방송이 더 재밌어."
그리고 저런 식의 발언이 위험하다는 것도 느꼈다.
그래, 분명 위험한 발언이었다.
만약 진짜 내가 단편영화를 하고싶었지만,
돈을 벌기위해 방송을 택했다면
가슴에 두고두고 상처가 되었을 말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상처가 되진 않을 상황이었다.
단지, 시범삼아 찍어 본 몇 번의 단편영화 경험의 결과-
영화를 하기에 난 작가적 기질이 부족했고,
영화는 그저 좋아하는 것. 으로 남겨두기로 했을 뿐.
2년 전, 경험삼아 시작한 방송일에
단편 영화보다 더 소질이나 흥미, 재미 따위를 느꼈을 뿐이었다.
정말 영화보다 방송이 더 재밌어. 가 전부였다.
다행이고 다행인 일이었다.
그 지인의 돈이 된다는 방송일. 이라는 현실 안에는,
모두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그 현실 뿐만 아니라,
사람 냄새나는 이를 만나고
그들에게 카메라를 핑계삼아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그 시간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가 느끼는 방송의 매력 따위는
그의 위험한 사상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런 그가 오히려 더 현실만 보려는 사람이 아닐까?
사람이 변하면서 좋아하는 것도ㅡ 재미있는 것도- 달라지는 법인데...
사람들은 쉽게 현실과 타협했다 라는 말을 하길 좋아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동시에,
자신은 꿈을 잃지 않고 있어. 라는 표현을 하고 싶어 하는 걸까,
아니면 자기 위안의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나는 사실 아직도,
형편이 어려운데도 기어이 하고싶은 음악을 하는 꿈이 많은 사람과
형편이 어려워서 하고싶은 음악을 접고 할 수 없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 살고 있는 사람 중,
누가 현실과 타협한 사람인지의 구분점을 확실히 못 찾겠다.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 자기만의 사정이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다들 꿈을 접은 사람에게,
현실과 타협했다. 혹은 돈과 타협했다. 라고 비난한다.
비난 하기까지 한다.
어쩔 수 없이 꿈을 잠시 접어둔 사람에게는 정말이지 슬픈일이다.
다들 말하기만 좋아하고,
들여다보고 토닥여주는 것은 그 사람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라며
내버려두기 바쁜 것일까.
때때로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나만의 사정이 있다는 것만 알고,
타인에게는 그만의 사정이 있다는 걸 외면한 채 살아간다...
■ hope and real world
■ panasonic dmc-lx2
■ Photo&Edit : Park Ji 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