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 초반 태생 남자 아이들이 처음 만난 음악적 우상은 10중 7구 서태지와 아이들의 서태지, 듀스의 이현도였을 것이다. 물론 현재는 인터넷을 통한 음악의 홍수 속에 세계 각지의 음악이 출렁이는 세상이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도 몇 명의 인터넷 스타가 탄생하는 시대다. 하지만 열살을 갓 넘은 90년대 초반만해도 내가 아는 모든 가수의 수를 도합한다고 한들 30여명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당시 활약했던 가수들의 기억은 참 생생히 남아있는 것 같다.
서태지?
90년대 보다는 다소 파워가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다. 시나위에서 프로음악인의 길을 출발하야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 수록곡인 락앤롤댄스에서 외친 '락앤롤, 헤비메틀, 재즈, 클래식, 펑키, 블루스' 중 대부분의 장르를 조금씩 건드렸고, 현재 7장의 정규앨범을 발매했으며, 올해 컴백이 확실시 되고 있어 가요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작년에 SG워너비가 20만장 정도의 음반판매고로 1위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서태지의 컴백으로 올해 판매 1위 기록이 분명 작년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서태지에 관한 기억
인기있던 휴먼 다큐 프로그램 인간시대에서 당시 20대 초반이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는데, 나는 그때 TV를 보며 서태지가 참 평범한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나와 같은 초딩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난 알아요를 외칠 정도로 그들은 참 흔하게 소비되었고, 그만큼 친근한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떨까? 만질 수 없는 무지개다. 분명 그는 현재까지도 엄청난 노력을 아까지 않고 있는 진행형 뮤지션이다.
이현도?
6학년 때 친구와 함께 교실 앞에서 ‘나를 돌아봐’ 를 추었던 기억이 남아있는 듀스의 이현도는 사실 듀스 시절이 70%의 비중을 차지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듀스 시절에 가장 강한 포스를 느꼈기 때문일까, 솔로로 나서면서는 그 힘이 많이 줄어든 느낌을 지울 수 없고, 무대가 어울리는 가수 보다는 스튜디오가 더 어울리는 프로듀서로 변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현도의 프로듀서로서의 업적은 상당하다. 공중분해 직전의 룰라를 3!4! 를 통해 구원했으며, 월드스타(?) 비가 등장하기 전 이미 유승준을 최고의 남성 솔로 댄스가수로 자리매김 시켰다. 그뿐인가? 급기야 양현석과 손잡고 지누션을 데뷔 시켰다. 왈가왈부 말이 많지만 어쨌든 지누션의 데뷔앨범은 힙합가수의 단일 앨범으로는 최고의 판매고를 올렸다. 여튼 힙합 및 랩, 댄스 부문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아티스트는 단연 이현도다.
이현도에 관한 기억
내가 처음 이현도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대박을 터뜨린 현진영의 2집 앨범에서다. 현진영은 당시 현진영과 와와라는 이름으로 활약하며 현진영이 보컬을 맡고 두 명의 댄서를 대동하는 형식으로 활동했다. 와와 출신의 가수는 익히 알고 있다시피, 클론과 듀스가 있다. 두 팀의 장르는 다소 달랐지만 남성적 이미지의 듀오라는 공통점이 있다. 여튼 이현도는 당시 자신의 자작곡인 ‘너에게만’ 이라는 팝 발라드 곡을 현진영에게 주었으며 훗날 듀스의 3집 앨범에 재편곡하여 수록하기도 했다.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이들이 각 분야별 전설로 통하는 인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들이 대단했던 이유는 그들이 따라야할 롤모델이 전무하다시피했다는 것이다. 요새나오는 그룹들이야 '누구를 동경하고, 어떻게 되고 싶다. 어떻게 해야겠다.' 라는 계획과 실행으로 활동하는 반면 서태지나 이현도는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을 살펴보면, 랩과 락, 발라드와 댄스, 그리고 테크노 성향의 음악 환상속의 그대까지 (환상 속의 그대는 사실 Pt.2,3,4 시리즈를 통해 진정한 테크노 뮤직으로 승화된 듯) 다양한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실험을 강행했고, 듀스의 1집 또한 랩이 강조된 댄스뮤직이 주를 이루며(듀스 초기엔 힙합이라기보다는 바비브라운으로 상징되던 뉴잭스윙의 느낌이 더 강했던 듯 하다.) 지금 들으면 어설픈 발라드 곡 또한 흑인음악의 필을 담으려는 노력으로 주류의 그것과는 확실히 구분되었다. 일상적으로 듣던 발라드와는 다른 듀스의 노래를 두고, 친구는 듀스는 발라드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지금 그 노래들은 대부분 초창기의 한국 R&B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진심의 땀을 흘린) 음반에 순위를 매기는 것은 넌센스라고 생각하지만, 어찌되었건 서태지와 아이들의 앨범은 4장이 모두 100대 명반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고, 듀스 또한 3집과 2집 앨범을 100대 명반에 올려 놓았다. 대중적인 인기와 상업적 성공으로는 이들 못지 않았던 신승훈과 김건모 이승환 등의 좋은 음반도 100위 안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서태지 이현도 이들은 분명 90년대 대중음악가 중에서도 분명 '튀'는 인물임엔 분명하다. 좋은 음악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스타도 필요하다. MTV가 미국의 팝음악을 저질화 한다는 우려 속에 80년대 미국 팝 음악 시장은 마이클 잭슨이라는 거물을 탄생시켰다. 그는 스타고 너도 나도 아는 대중가수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지금도 팔려 나가고 있다. 대중은 단순히 좋은 음악만을 듣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스타를 원하다. 서태지를 마이클 잭슨과 비교하는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듣는 것들을 대중 가요, 대중 음악이라고 표현한다. 보다 많은 사람이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다. 그렇기에 본디 목적은 예술성 보다는 대중성에 초점이 맞춰졌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가 쌓이고 쌓이고 대중 음악의 영역이 자라고 커지며 어느덧 예술성의 잣대 또한 평가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어느 사람들은 유행과 대중성에 치우친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어느 사람들은 그들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의 예술성을 추종하기도 한다.
그러한 현상은 인터넷이 활용 빈도가 폭발적으로 높아진 2000년대부터 극대화되었다. 영,미,일,중.. 우리가 즐겨 알고 있는 국가들의 음악은 클릭 하나로 접할 수 있는 세상에선 더 이상 서태지와 이현도는 최고일 수 없다. 그래서인가 언제부터인지 서태지와 이현도의 기사엔 악플이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이들은 어떤 이들에겐 유행과 대중성과 먼 가수로 어떤 마니아들에겐 예술성이 결여된 가수로 비춰지고 있다.
하지만 난 그들에게 대중음악의 진정한 영웅은 그 두가지 요소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자라고 말하고 싶다. 한 분야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지기위해서는 산업화는 필수요소다. 방구석에서 음악과 씨름하던 동갑내기 두 청년은 가내수공업의 틀에 멤돌던 그들의 예술을 마침내 비지니스화하기 시작했고, 대중은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들은 새로운 음악으로도 인정 받을 수 있었고, 대중들은 그들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음반, 콘서트, 엽서..돈을 지불했다. 하지만 수요가 공급을 만들어 낸 정당한 거래였다. 마케팅의 승리가 아닌 대중이 원했던 무언가를 그들이 터뜨렸기 때문이다. 당시 유행하던 발라드를 소화하지 못해 그들이 주저 앉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조차하기 싫은 질문에 답을 한다면 대중의 음악 듣는 귀가 천편일률의 홍수 속에 몇배는 더디게 개발되지 않았을까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지금도 가요계는 천편일률의 비난을 면키 어려운 상황 아닌가,
인기 없는 장르의 음악을 하면 예술로, 인기 있는 장르의 음악을 하면 그저그런 가수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것이 지금 현재 대중음악계의 모습이다. 일견 맞기도 하고, 일견 틀리기도 하다. 분명 만드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양측의 노력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대중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희망한다. 장르에 관계 없이 우리가 흔히 즐겨 듣는 노래가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노래이기를, 예술적인 가치를 담은 노래가 우리가 즐겨 듣는 노래가 되기를, 어느 90년대 그날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