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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퇴생이다

고창화 |2008.02.21 02:20
조회 2,182 |추천 51

 '나는 자퇴생이다. 나는 자퇴생이었다. 나는 자퇴생일 뿐이었다.'
 내 학창시절은 위의 세 문장으로 충분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과거의 나와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사회에서 학교는 사회로의 관문이다. 그래서 그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정상적으로 사회로 들어서기가 힘들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통해 사회로 건너가려 한다면 상대적으로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을 경험하고, 그들 중 일부는 이 과정에서 좌절하거나 아예 그 안에 들어가기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진학을 포기하거나, 혹은 자퇴를 한 청소년들 대부분은 이렇듯 사회적 편견과 불합리로 인해서 상처받은 가슴을 안은 채 어른이 될 준비를 한다.

 내 이야기를 먼저 한다면, 나는 무언가가 되거나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학교를 떠난 것이 아니다. 학교에 회의를 느끼고, 그 안에서 '갇혀' 있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아니 앞으로 가지게 될 무언가를 영원히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학교를 떠났다. 그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그 무언가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는지 아님 그 무언가를 찾은 후에도 늦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다.

 결과적으로 나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 선택이 없었더라면, 누구 말처럼 나는 좀 더 좋은 대학에 가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확률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와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를 생각하면서 후회하기도 했다. 단 한번도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던 건, 스스로 후회한다고 이야기해 버리고 나면 나는 그 과거의 선택에 얽매여서 앞날을 스스로 구속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내 입으로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학교를 떠났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이 강박관념이 나를 더욱 더 힘들게 했다. 사회적 편견이나 불합리, 그리고 학생증을 가지고 있던 또래의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겪어야 했던 불편함 때문이 아닌, 내 스스로가 만든 덫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 것이다. 그 시절 잠이 들때면, 수 없이 되뇌이고 되뇌었던 것 같다. '나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나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그 때 나는 실체없는 그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갔다.

 차라리, 그저 있는 그대로의 감정에 솔직했더라면 모든 것이 더욱 수월했을 것이다. 내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더라도 이 사회의 자퇴생에 대한 편견과 그 편견이 만들어낸 여러 가지 불합리한, 불공평한 방식만으로도 충분히 상처받고 힘들어했을 나이였다.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가족, 친구, 그리고 주변 사람,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사회의 편견 때문에 상처받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스스로가 강해져서 타인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는 스스로가 되자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약해지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더욱 더 가혹하게 내몰아버린 꼴이 되어버렸고, 그것은 철저한 고립을 의미했다.

 사실 무언가를 찾아서, 그리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학교를 떠난 아이들에 대해서는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비록 어린 나이에 사회를 일찍 알아버린다는 건 서글픈 일일이고 그로 인해 상처받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공부와 일을 하며 학교에서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처럼 학교라는 시스템에 염증을 느끼고 도망치듯 떠나온 아이들은, 난생 처음 주어진 자유와 시간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회적 편견이라는 벽을 절감하게 되고 그로 인해 처음의 각오와 계획, 다짐을 잃고 쉽게 좌절하고 쉽게 포기하고 만다.



 학교를 떠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간절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면, 학교에 남아있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적어도, 아직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이 사회의 제도와 방침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퇴를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학교를 떠나는 게 아니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나와 같이, 단순히 학교를 떠나는 것이 목적이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 선택에 대해서 후회를 한다. 그것은 학교 자체를 떠난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꿈이나 목적 없이 학교를 떠남으로서 수 없이 방황하고 한번 좌절하고 나면 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후회이다. 학교를 떠나고자 마음먹은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학교는 최고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 나이 또래가 보호받을 수 있는 최선의 장소이다. 그토록 염증을 느끼며 떠나온 학교였지만, 그 다음은 학교보다 더 한 사회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학교를 떠나 사회에 발을 디디게 되면 그 순간부터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다. 학교를 떠나는 선택을 할 순 있었지만, 사회는 그런 선택의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도망치듯 학교를 떠나온 다음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고립시켜 버리는 결과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 그랬고, 나처럼 도망치듯 학교를 떠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다.

 학교를 떠나야 할 만큼의 간절한 꿈, 혹은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일단은 학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누구나 진정 바라는 것 하나쯤은 반드시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직 자신의 특기나 적성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만한 시간이나 여건이 충분치 못해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 없는 것은 아니다. 목적없는 여행은, 그 과정에서 수 없이 헤매이고 방황하고 좌절하며, 쉽게 포기 떠올리게 된다. 학교를 떠나면서까지 간절히 원하는 그 무언가를 찾은 다음에 선택을 하더라도 절대 늦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지금 당장은 답답하고 조급하겠지만, 무작정 학교를 떠난 뒤에 방황하고 헤매이다 인생 가장 빛나는 시절을 허비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나는 사춘기를 떠올리며 웃음 지을만한 추억을 갖고 있지 않다. 생각을 나눌만한 교사의 부재 그리고 그에 따른 불신,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에 대한 염증, 대학으로 가는 관문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학교에 대한 회의감으로 인해서 학교 안에서의 나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학교에 넘기고 싶지는 않다. 불만 가득했던 그 삶 속에서, 정작 스스로 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나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닌 결국 그것은 나의 책임이고, 대가일 뿐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 학교를 떠나면, 모든 것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반드시 그 무언가를 찾아낼 거라고 확신했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작은 가슴 안에 '꿈'을 담을 줄 몰랐던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 사회적 편견과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이 사회의 제도 등은 내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부분으로 인해 오히려 오기가 생겨 더욱 더 열심히 해야겠다 결심한 부분도 있고, 학교를 다니지 않는 학생이기에 감수해야만 했던 많은 부분들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많아서, 직접 알아보고 스스로 처리해야 했기에 그 과정에서 오랜 시간동안 나를 대신해 그런 부분들을 채워줬던 부모님과 선생님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통해서 배움의 소중함을 난생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순을 넘긴 할머니가 잘 보이지도 않으신 눈으로 문제를 읽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속 찡한 무언가를 느끼기도 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과목씩 한과목씩 어렵게 공부하여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며, 내 스스로가 얼마나 배부른 투정을 부리고 있었던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국민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 두 아이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 중학교 교과서로 공부를 시작했다는 아주머니는 매 시험마다 1과목 이상을 준비하지 못하지만, 그 과목에 합격하면 다음 과목을 공부할 수 있다는 배움의 기쁨과 더디지만 한과목씩 한과목씩 합격하여 언젠가는 대학입학 자격을 얻는 그날의 꿈을 위해서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 이야기 하셨다. 나에겐 큰 의미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검정고시 합격 증서를 꿈이라고 이야기하는 아주머니는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렇듯 학교를 다니는 동안 알지 못했던, 아니 보려고 조차 노력하지 않았던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보고, 가슴으로 느끼면서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안일한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산다는 건, 세상에 태어난 자로서의 당연한 의무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가슴에 '꿈'을 담은채 그 모든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가고 더 나은 미래를 보장받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더욱 열린 마음을 갖고 긍정적인 자세로 더 열심히 살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해본다. 학교를 떠난다는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또래의 다른 모든 이들이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버거운 그 짐을 억지로 짊어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학교를 떠난다는 선택에 있어서 신중하기를 바란다. 스스로에게 얼마만큼 떳떳할 수 있고, 또 학교에선 찾을 수 없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그 어떤 것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는지를 스스로 묻고 또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그 믿음과 확신이라는 건 가슴에 꿈을 품은 자만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는게 먼저라는 걸 알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꿈이 있다는 이유로 학교를 떠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구속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펼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학교를 떠나려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기존의 학교 시스템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누구 말처럼 그런 그들에게 19세기 시설에, 20세기 교사에, 21세기 학생들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희망을 찾으라는 강요는 너무 가혹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망치듯이 유학을 떠나고 혹은 학교만 벗어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자기 자신과 대화할 시간을 조금 더 늘려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꿈이 있는 자들에게 있어 학교는 그저 수 많은 선택 중 하나 일 수 있지만, 꿈이 없는 자에게 있어 학교는 사회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가정을 제외한 유일한 곳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더 솔직히 말해 꿈도, 거기에 따른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사회로 발을 디딛고 수 없이 상처받고 좌절할 바에는 차라리, 죽기 보다 싫은 학교이지만 버티고 있으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렇게 버티면서, 꿈을 가슴에 담으려 노력해 보라고. 학교를 떠나는 건 그 다음도 늦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글 맨 앞에 나는 자퇴생일 뿐이라고 말했던 건, 사실 그때 그 선택은 지금의 내게 있어 그저 그런 과거 중 하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사회는 학교처럼 내가 떠나고 싶다고 해서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차피 살아가야 할 바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이후로 더 이상 과거를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그에 대해서 후회를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오르지 않는 토익 점수와 취업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하루하루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대학교 3학년 복학생 아저씨. 그게 바로 오늘의 내 모습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 과거에 불과한 일들이 그 때보다 더한 입시 지옥을 견뎌내고 있을 오늘날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엄연한 현실이고, 그 현실에서 도망치듯이 떠나려는 일부 학생들이 나와 같은 어려움과 후회 속에 그 빛나는 시절을 허비하고, 꿈과 희망을 가득 담아야 할 가슴에 불만과 증오만을 가득 담은 채 어른이 되는 안타까운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글을 쓰고 싶었다.

 그저 과거일 뿐이라고 말하기까지, 나는 6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내가 떠나온 그 자리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학생들이 나와 같은 선택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이야기한다. 학교를 떠나려 하거나, 혹은 이미 학교를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가슴에 담은 '꿈' 하나는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순간, 가슴속 '꿈'은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고, 어둠 속에서 두려워 떨고 있을 때, 그 '꿈'은 빛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그것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 역시 말하고 싶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고 그 결과 역시 자신의 것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어떤 선택이든 간에 그로 인해 자기 자신과 그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진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 관념 속에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나를 감싸려 했던 주변 사람들을 상처 입혔던 과거는, 지금도 아픔으로 남아있다. 간절히, 진심으로, 나와 같은 이가 더 이상 없기를... 그리 특별하지도 대단할 것도 없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해 상처받고 아파하는 사람이 더 이상 없기를...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서 있었던 그 자리에서 고민하고 있을 어느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작지만 큰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두서 없는 글을 마무리한다.

추천수51
반대수0
베플권해진|2008.02.22 00:39
첫줄읽고 밑으로쭉내린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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