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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이영주 |2008.02.22 22:49
조회 62 |추천 0


아름답다 (Beautiful, 2007)

감독 : 전재홍


 

 


아름답다, 익숙한 형용사에 대한 낯선 해석


 

아름답다. 흔하디 흔하게 쓰는 형용사다. 꽃을 보고도 동물을 보고도 사람을 보고도, 사람이 만든 사물을 보고도 우리는 '아름답다'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보기에 좋은 그 무엇에 대한 '아름답다'는 찬사 뒤에는 어김없이 '좋아한다'든지 '사랑한다'든지 하는 동사가 붙는다. '아름답다'는 형용사는 '사랑한다'는 동사의 원인이며, '사랑한다'는 '아름답다'의 결과이다.

'아름다워서 사랑한다'는 이야기는 참 자연스러워 보인다.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참 아름다워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하고 익숙한 이야기를 기괴하면서도 섬뜩한 낯설음으로 발기발기 헤집어낸 영화 한 편이 나왔다. 과연 '아름답다'는 것은 사전적 의미만을 가지고 가치중립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형용사인가? 그 결과인 '사랑한다'는 동사는 또한 아름답다고 할 만한 것인가? 신인감독 전재홍의 <아름답다>는 제목과 포스터 속 배우들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치명적인 질문을 던진다.


소유욕과 한몸이 된 '아름답다'

 

'아름답다'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하다." 눈과 귀, 혹은 마음에 만족을 주는 대상에 대한 형용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눈과 귀, 혹은 마음의 만족을 주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한다. 그 대상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꽃을 꺾어 자신의 화병에 꽂아두고 아름다운 동물을 길들여 자신의 곁에 둔다. 아름다운 사람을 자신의 애인이든 배우자로 삼고자 한다.

자본주의사회는 그런 인간의 욕망이 최정점으로 치닫는 사회다.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며 소비를 통해 소유하지 못할 때 생기는 박탈감과 불안증으로 유지되는 사회다. 더 나아가 자신이 그 소유욕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달하게 만든다. 성형, 다이어트, S라인, 근육질 몸매 등 외모에 대한 전 사회적 강박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게 된 것 역시도 이 시대가 필연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결과물이다.

전재홍 감독은 많은 시사프로그램과 이전 영화들이 성형, 다이어트 등 소유욕의 대상에 대한 강박증을 그리는 방식의 반대편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다시 말해 시대가 요구하는 아름다움을 가짐으로써 소유욕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강박증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아름다움을 타고남으로써 타인의 소유욕에 시달리는 인물에게 시선을 맞춘 것이다. "동화 속 아름다운 공주는 아름다워서 행복했을까?" 하는 질문에서 이 영화 시작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과연 아름다움(즉, 소유욕의 대상이 되기 위한 조건들)이 그토록 안달할 만큼 행복한 것인지 질문한다.


소유와 한몸이 된 '사랑한다'


은영은 아름다운 몸을 지녔다. 밖에 나가면 마음대로 길을 걷기도, 한가로이 공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기도 어렵다. 청소년들은 그녀에게 연예인 아니냐며 사인해 달라고 조른다. 그녀가 사는 오피스텔엔 연예인 부럽지 않을 만큼 매일같이 꽃다발과 연서들이 배달된다. 미용실 원장은 연예인 만들어 줄 테니 언제든 찾아오라고 말한다. 늘 그녀를 훔쳐보는 시선에 시달린다. 늘 그녀에게 수작을 걸어오는 남자들을 뿌리치느라 에너지를 소진한다.

그녀는 외롭다. 아름다운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녀는 욕망의 대상이 될 뿐 관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심지어 십년지기 친구마저도 그녀의 외로움을 위로하기는커녕 그녀에게 쏟아지는 사람들의 끈적한 욕망의 시선을 시기한다.

결국 그녀를 끈질기게 따라붙던 욕망의 시선은 그녀의 아름다운 몸을 짓밟고 만다. 매일 그녀의 오피스텔에 백합을 보내고 그녀를 비디오카메라에 담던 스토커 성민은 그녀를 강간한다. 그리고 말한다. 사랑한다고.

강간사건으로 짓밟힌 것은 은영의 몸뿐이 아니었다. 은영은 이 불행이 자신의 외모때문이라 결론짓고 폭식증과 거식증을 오가며 만신창이가 돼 간다. 이런 은영을 안타까이 지켜보던 또 다른 남자가 있다. 강간사건으로 은영을 알게 된 순경 은철이다. 처음엔 성폭력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시작된 관찰이었는지 이 또한 아름다움에 대한 '자연스러운' 집착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은철의 관찰 역시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지독한 소유욕으로 변해간다. 은철 역시 은영에게 말한다. 사랑한다고.

영화 속 두 남자들은 은영이 자기 품에 안기지 않을 땐 '사랑하는' 그녀에게 가차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곧바로 외친다. 사랑한다고. 그들이 은영에게 고백한 '사랑한다'는 '가지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아름다운 은영을 '사랑했'으나 가질 수 없었던 성민과 은철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 소유하지 못함이 곧 박탈과 불안이 되는 이 시대의 필연적 결과다.


관계불능의 시대가 낳은 비극


이 영화 속 인물들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 그저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을 쳐다보듯 일방적인 관찰이 있고 그것을 가지고자 하는 지독한 욕망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욕망의 시선에 철저히 대상화된 인물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소비함으로써 소유하지 못하면 존재가치가 없는 이 사회가 관계불능의 사회임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은영을 소유하고자 했던 성민과 은철 역시 매우 수려한 몸을 가진 이들이다. 이들 역시 누군가의 눈에 의해 관찰 당했을 것이며 소유욕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아름답다'의 주어인 은영의 전라는 싸늘한 시신이 된 후에야 보여주면서 은영을 소유하고자 했던 남자들의 나신은 살아 있는 채로 훨씬 아름답게 보여준다.)

누구는 가해자고 누구는 피해자라고 쉽사리 단언할 수 없다. 소유욕이 관계를 삼켜버린 시대, 모든 인간이 소유(즉 소비)의 대상이 돼 버린 시대가 낳은 비극이다.

'아름답다'는 형용사의 어원을 찾자면, 아(我 ;나)답다, 알음(知 ; 알다)답다, 아름(抱 ; 안다)답다 등 세 갈래로 추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다운 것, 즉 스스로 존재하는 주체성,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치를 아는 것, 품어안을 만한 것이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앞의 두 가지 의미는 아예 내동댕이쳐 버렸다. 다만 품어안는다는 의미 중 독립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아닌 일방적 소유욕만을 취한 듯하다.

영화 <아름답다>는 아름다운 인물들의 괴기스럽고 섬뜩한 비극을 통해 '아름다움'의 참 뜻에 대해, 사랑의 참 뜻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사족. 감독과 배우


이 영화에 대해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보았다 하더라도 전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있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김기덕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김기덕스러운 영화다. 개연성 따위는 아예 관심도 없는 듯 이미지들로 풀어가는 이야기 전개방식이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인간 밑바닥을 축축하게 드러내는 방식이 꼭 닮았다. 김기덕 감독의 <시간>에서 던졌던 물음의 연장선에 이 영화가 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만큼 강한 끌림과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멍해지던 충격을 주진 못한다. 조금은 구태의연하고 조금은 지루하다. 그것이 신인감독의 설익음인지 아닌지는 무식한 나로서는 판단할 길이 없지만, 이 영화를 보고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가다 보니 아쉬움이 크다. 원래 김기덕 감독의 시놉시스로 시작한 영화라니 더더욱 그 아쉬움이 큰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적였던 것을 꼽자면, 영화 속 장면도 사건도 연출도 아닌 배우 차수연이다. 이 배우가 전에 어느 영화 어느 드라마에 출연했는지는 모른다. 처음 본 얼굴이다. 그런데 참 묘한 매력이 있다.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를 살짝 닮은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요즘처럼 인형같은 외모의 여배우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참으로 개성 있는 얼굴이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독특하고, 청순한 듯하면서도 섹시하다. '아름답다'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여배우 캐스팅이 가장 중요했을 것 같은데, 매우 탁월한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물론 차수연이란 배우가 가진 묘한 매력이 단지 그녀의 외모에만 기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더욱 마음에 든다. 그래서 차수연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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