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로등 빛이 동그랗게 비치는 밤의 플랫폼에 내려서는 순간,
고독이 밀려오곤 한다. 0.1초나 0.01초, 아무튼 플랫폼에 한 발을
내딛는 그 찰나, 어떤 기척이 스친다. 나는 앗,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앗, 하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다.
나는 고독의 손바닥에 폭 싸여 있다.
고독의 손바닥은 커다랗고 차갑고 얇다. 늘 그렇다.
세달에 한 번 정도, 그런 밤이 찾아온다.....
정말 난데없이 등장한다.
내가 까맣게 잊고 있어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
'주의'란 스티커가 붙어 있는 문이 열리면서 땀 돋은 이마에
9월의 밤공기가 스치고, 갈색 굽 낮은 펌프스가 플랫폼의 돌바닥을 딛는
동시에 나는 앗, 하고 생각한다. 감각을 찰싹찰싹 후려갈기듯 경적이
울리고, 등 뒤에서 문이 스르르 닫힌다. 방금 전까지 사람들 사이에 짓눌려
구깃구깃한 종이 쓰레기처럼 변형되었던 사람들이, 플랫폼으로 내려서는
순간 원래 크기와 모양으로 부풀면서 남자와 여자가 되어 종종 걸어간다.
나는 밤의 플랫폼에 홀로 남아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차갑고 커다란
손바닥에 폭 싸여서.
아파트에 도착한 나는 숄더백을 내려놓고, 반지와 귀걸이를 빼고,
손목시계를 풀고, 스타킹을 벗는다. 그리고 커튼을 닫는다. 벗은 옷을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어놓고 방바닥에 벌렁 드러눕는다. 몸과 머리가 무거워
살아 있으면서 죽어있는 기분이다. 데굴데굴 굴러본다. 고독은 줄지 않는다.
아, 음, 하고 신음해본다. 고독은 줄지 않는다. 팔다리를 버둥거려본다.
고독은 1그램도 줄어들지 않는다.
에쿠니 가오리 < 파를 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