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우는 등장하자마자 스타가 되지만, 어떤 배우는 천천히 스타로 성장한다.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둘 중 어느 쪽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배우든 간에 언젠가 성장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동안, 한 배우는 비로소 배우가 된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KBS 수목드라마 의 주연을 맡은 강지환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다.
강지환만이 할 수 있는 연기가 있다
멜로의 정점에 있었던 .
에서는 이미 1년 전, 강지환을 V.I.P로 다룬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 다시 같은 지면에서 강지환을 거론하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지난 1년 사이, 으로 멜로드라마의 핵심까지 걸어 들어갔던 그는 이라는 전혀 뜻밖의 선택을 했고, 그로부터 놀랍도록 극단적인 연기를 설득력있게 보여줬다. 일제 강점기 경성에서 돈 많은 집 자제로 태어나 한량으로 지내는 선우완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바로 강지환이라는 배우의 몸과 말투, 표정으로부터 나왔다. 이를테면 강지환이라는 배우는 스스로 그 캐릭터가 됨으로서 드라마와 인물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배우다. 도 마찬가지다. 사극이라는 지극히 제한된 카테고리, 게다가 역사성이 휘발된 판타지라는 장르 안에서 강지환은 홍길동을 고민하는 청년으로 그려낸다. 그가 묘사하는 홍길동은 우리가 언젠가 보았던 홍길동과 닮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어디서도 보지 못한 홍길동이다. 게다가 이 작품에서 그는 무술과 활극의 주인공이 되어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날아다닌다.
하지만 강지환은 연기를 무척 잘하는 배우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다. 그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시청자들을 설득하고,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얻는다. 물론 그의 필모그라피는 과 과 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에서 아이 딸린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구재희이기도 했고, 에서 죽은 형의 연인을 사랑했던 나인재이기도 했다. 그 모든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에서도 그는 스테레오타입으로 굳혀질 뻔한 캐릭터를 자신만의 연기로 구제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라 정확히 꼬집어 말하기란 어렵다. 그런 현실감이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개별 캐릭터가 살아가고 있는 드라마에 묘사된 일상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이고, 그 디테일 속에서 캐릭터가 존재하는 과정이다. 구재희가 극단적인 감정을 오락가락하며 갈팡질팡하는 동안 시청자들은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캐릭터에 집중하고, 마침내 그 가상의 인물을 통해 강지환이라는 배우를 재발견한다. 역설적으로, 혹은 당연하게도 강지환이라는 배우는 그렇게 캐릭터를 통해 존재한다.
성장하는 캐릭터, 성장하는 배우
(사진 왼쪽), 같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연기로 캐릭터를 구제했다.
이후 강지환은 가볍지만 진지한,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캐릭터를 선택했다. 의 선우완이나 의 홍길동은 모두 시대의 육중한 흐름으로부터 한 발 비껴나 유유자적의 삶을 영위하지만 결국엔 스스로 그 흐름에 뛰어들어 힘들게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존재가 된다. 자기안위 밖에 모르던 존재가 어떤 사건을 통해 자기희생을 배우고, 그로부터 인격적으로 한 단계 성숙한 존재가 되는 것이야말로 매혹적인 성장담이다. 특히 은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이자 홍길동이라는 미숙아가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책임감있는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활빈당이라는 이름은 우리 같은 도둑놈들에겐 어울리지 않아”라고 말하던 그가 “내가 바로 활빈당의 당수다!“라고 소리치는 순간은 감동적이다. 홍길동이라는 인물이 비로소 그 무게를 감당하고자 결심했기 때문이고, 그 결심의 과정이 강지환이라는 배우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강지환은 상황 속에서 성장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비로소 배우로서의 존재감과 스타성을 발휘하고 있으며, 그 사실은 캐릭터 뿐 아니라 배우도 작품을 통해 성장한다는 고유한 진실을 증명한다.
이 배우를 지켜보는 즐거움
의 홍길동(사진 왼쪽)도 의 선우완이 그랬던 것처럼 강지환이라는 이름 안에서 변주되고 있다.
그래서 강지환이 배우로서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연기가 극단적으로 변화무쌍한 인물을 연기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 자극성은 대중들의 시선을 한 번에 끌게 하지만, 대중들의 시선을 오래 붙잡는 것은 그런 캐릭터가 성장하는 과정을 진짜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설득력이다. 선우완도, 홍길동도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보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들이 아니다. 그것은 배우 강지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일상의 녹록치 않음과 연극적으로 과장된 캐릭터 사이에서의 매력적인 줄타기, 배우 강지환에게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미덕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한 작품 안에서 캐릭터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비로소 성장한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몇 개의 작품을 통해 어떤 배우는 순간 도약하기도 하고, 어떤 배우는 튼실하게 조금씩 자라기도 한다. 강지환은 어느 쪽인가. 지금 당장 그것을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지금도 꾸준히 한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배우로서의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또한 스타성을 획득하면서 그는 한 단계씩 성장하고 있다. 어떤 배우가 오롯이 배우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관객의 대체될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것이 바로 강지환이라는 배우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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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차우진 lazicat@t-fa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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