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고 물 건너' 남미여행 (07.12.17 ~ 08.01.10)
1/3 : 수녀원에서 길을 묻다
[2:15pm] -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에서 -
사람없이 한적하던 곳이 아침이 되자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아침 먹고 숙소를 나오니 어제까지 멀쩡하던 도로를 다 파놓고
공사를 하고 있었다. 어제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 거리를 메우다시
피 한 택시를 잡아타고 일찌감치 버스터미널로 갔다. 나즈카행 밤
버스티켓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거리를 보니 확실히 페루의 다른
곳들보다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다. 메스티조 양식의 건축물도
많이 보인다. 꾸스꼬나 뿌노와 비슷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지금은 산타 카탈리나(Santa Catalina) 수녀원에 와 있다. 15세기에
지어져 지금도 수녀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카톨릭 국가답게
수녀원의 규모가 크고 잘 꾸며놓았다는 인상을 준다. 옛날 이 곳에
있던 수녀들이 사용했을 방과 부엌, 갖가지 생활도구를 보며 당시
생활이 상상된다. 철저하게 구분되고 제한된 공간. 그 아래 그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지. 오늘은 문득 수녀들의 생활도 생활이지만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듣자하니
수녀들 중엔 본인이 원했다기보다 집안의 강요나 기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들어온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 곳은 철저히 격리되어
바깥생활이 금지되었다고 하는데...당시엔 집 안의 누군가가 수녀원
에 있으면 가문의 명예로 여긴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수녀원에
들어온 이들의 삶도 명예로웠을지는 잘 모르겠다.
색색깔의 벽화와 도색한 벽, 곳곳에 핀 꽃, 잔디 등 그 색깔이 매우
원색적이고 화려하다. 빨강과 파랑의 강렬한 대비도 인상적이다.
조명설치를 잘 해놓아 저녁에 오면 더욱 볼만할 것 같다. 여기 입장
료가 30솔, 대략 10달러 정도다. 그 돈은 어디로 흘러들어갈까.
돌아오는 코스 중 중간엔 레스토랑도 입점해 있다.
[8:15pm] - 버스터미널 -
오후 수녀원 구경 후 거리에서 아레끼빠 감상을 했다. 메조티조
양식이 돋보이는 건축물들과 웅장한 성당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오후 내내 날씨가 흐렸던 게 아쉽다. 날이 밝았다면 더 좋은 경치를
볼 수 있었을텐데.
이제 조금 있으면 나즈카행 버스에 오른다. 9~10시간 정도 걸리는
길. 어쩌면 이번 여행 중 마지막 밤 버스가 될지 모른다. 오늘만
고생하면 앞으로는 좀 편하게 잘 수 있겠군...ㅋ 대합실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터미널의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 애기
손 붙잡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아줌마, 머리에 잔뜩 짐을 올리고 힘
겹게 걷는 할머니, 한 손에 주전부리 쥐고 신나하는 꼬마아이,
이들을 상대로 호객행위 하느라 바쁜 사람들... 정신없이 시끄러운
장소지만 그만큼 역동적이고 삶의 단면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장소
이기 때문에 정이 생긴다.
그러고보면 페루나 볼리비아 사람들, 참 낙천적이다. 대체로 표정이
밝고 유머 한마디 던질 여유를 가지고 있다. 경제수준과 행복지수는
역시 상관관계가 적은 것일까. 나도 이들의 여유와 행복을 좀 배웠
으면 좋겠다.
이제 다시 장도에 오를 시간이다. 정말 남미에 와서 버스 하나는
실컷 타고 다닌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