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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4일 연인에게서 온 메일- 크리스마스라고 해준 것도 없다

반야 |2008.03.10 21:55
조회 31 |추천 0

 2005년 12월 24일 연인에게서 온 메일- 크리스마스라고 해준 것도 없다면서 울먹이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사랑한다고 연거푸 내뱉으며 앞으로 우리가 같이 잘 살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써 있었다. 이미 난 많이 받았는데도 말이다. (이건 비단 감상에 치우쳐서 말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 당시에 빨간 샌들, 원피스 드레스, 가방 등 여러 선물을 받았다. 이것이 그가 남긴 허물이다.)  그리고 다음 해 4월, 그에게서 온 또 하나의 메일로 우리의 헤어짐은 확정되었다. 우리는 서로 미래의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그것은 모래성이었다. 누군가 손만 대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연약한 성이었다. 난 괜찮다고, 이리 오라고 하면서 그를 여러 번 불러 세웠지만, 그는 저 멀리 어둠 속으로 멀어져가고, 현재 그가 없이 산 지 2년이 흘렀다. 언젠가 우리가 사귄 시간보다 우리가 떨어져 산 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그렇기에 난 그 사람을 생각하며 살아도 된다. 

 

 

 어떤 사랑은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랑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고 자신을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허나 어떤 사랑은 수족을 잘라내는 것과 같은 고통을 주면서도 자기 파멸로 이끌어가게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랑은 eros이기에, 모든 사랑은 thanatos이다.

 

 

 오늘도 두려움에 떨면서 일어났고 엄마는 말없이 날 안아주었다. 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만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그 사람이 지옥문의 문지기인 것처럼 그를 만나고, 나는 타나토스의 세계로 갈 것이다.

 

 

 그를 집 근처 역까지 데려다주고 '잘 가'라고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길목을 꺾어 들어가자마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집에까지 들어온 것은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거의 기적이었다. 그 사람에게 준 편지를 그가 잔인하게 찢어주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허물을 간직하고 날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편지 가운데에 <Don't forget me>라는 말을 썼다. <올드 보이>에 나오는 어린 유지태의 누나처럼- 날 기억해줘. 잊지 마.

 잊혀진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난 그를 절대 잊고 싶지 않지만, 나란 인간은 이기적이고, 이기적으로 기억력이 안 좋다. 최선을 다해 그를 불러세웠지만, 또 한번 멀어져간다.

 

 또 다른 사랑이 올 것 같다.

 

 

*내가 말하는 '그'는 동일한 인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마치 한 사람만을 사랑했던 것처럼 표현한 것은, (그들이 모두 개별적으로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들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들에게서 발견한 공통점때문이다. 이를테면, 속눈썹이 길다든지, 속쌍꺼풀이 있다든지, 비슷한 체형과 키를 가졌고, 시를 썼다는 일련의 공통점. 그들은 모두 나에게 한때 단 하나의'그'로서 가치 있는 이들이었다.

 

 

 사랑은 매번 날 특별하게 만들었지만, 한번도 쉬웠던 적은 없었다. 내 안의 괴물이 완벽하게 숨어있었을 뿐, 그들과의 이별로 인해 괴물은 '놀랐지, 놀랐지'하면서 튀어나온다. 시간이 흐를 수록 몸집이 더 커지고 더욱 괴상해졌다. 그 거대한 괴물 덕분에 나는 지금 예전보다 더욱 아픈 것이다. 아픔을 잊지 못하겠지만, 이번 기회를 빌어 괴물을 죽일 계획이다.

 의사는 나에게 depression이라는 병명을 부여했다. 아니다. 나는 melancholy이다. 멜-랑-꼴-리, 입 안에 구슬이 굴러다니는 듯한 발음이 날 조용히 바다에 침잔하게 한다. 내 우울은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맑은 하늘 아래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다니는 것과 같다. 한번도 격렬하게 바다를 가르며 수영해보지 않는 그런 우울. 그래도 사치는 아니다. 왜냐하면 바다 위에 홀로, 죽을 각오로 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는 대상의 존재 유무를 떠나, 사랑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환자를 잉태시키고, 그렇기에 의사 등 여러 분야의 치료사들은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꽤 괜찮은 직업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우리는 메마른 치료사들을 접해야 하고 그 무식한 치료 방법에 몸서리쳐야만 한다. '난 증상(symptom)이 아니야. 살아 있는 사람(person)이야' 외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그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난 울 수 있었다. 처절하게 우는 날 보며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약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해질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그를 제외하고는 '그가 아닌 사람'들 뿐이었기에 그의 앞에서만 약해지지 않으면 충분했다. 혹시나 내가 우는 모습에 마음이 이끌릴까봐 걱정되기도 하고, 그렇게 무너진 모습을 보였는데도 날 버릴까봐 무섭기도 하다는 전제적 가정이 몇가지 있을 수 있는데, 다 쓸데 없다. 그가 있을 땐 아무리 괴로워도 상실감을 맞닥뜨리지 않지만, 그가 떠난 후엔 상실감이 어두운 골목 사이사이마다 서 있어서 날 불러세우기 때문이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지 나는 너무나 잘 안다. 나라는 사람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난 지금 포옹만 하더라도 울지 몰라, 어설프게 기울어진 몸뚱이를 끌고 사람들을 피해 다닌다. 점점 괜찮아지고 있다는 것이 가냘피 매달려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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