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카, 퀸카라는 말을 미국에서 사용했다간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킹카, 퀸카라는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맘대로 만들어 낸 변종 영어이기때문이다.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우리에게 유익함 보다는 즐거움을 선사해줬고
그 댓가로 수 많은 부작용 또한 양산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린 개인 하나하나가 그 부작용의 피해자란 사실도 모른채
눈 먼 양떼처럼 우르르..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비효율적인 킹카, 퀸카의 양성이라고 생각 한다.
자본주의는 많은걸 양극적으로 만들어놨다.
부자와 가난뱅이,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롱다리와 숏다리, 킹카/퀸카와 폭탄....
잘생기고 많이 배우고 돈까지 많은 사람은 극소수고
못생기고 못배우고 돈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도
대중은 언제나 전자의 손을 들어준다.
똘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주인공이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사람의 참 매력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평생에 거쳐
서 너명에 불과한 것일뿐이다"
육안으로 근사해 보이는 사람이 보잘것 없어보이는 이성과 같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혀를 끌끌 차며 남자 또는 여자가 아깝다는 말을 쉽게 한다.
하지만 위의 소설이야기처럼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참 매력에 취해
진실되 사랑에 빠진 것인지 누가 아는가...
우리가 킹카, 퀸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해야한다면
영웅적 존재를 향한 대중의 환호가 아닌 개인과 개인으로의 눈맞춤이 되었으면 좋겠다.
TV만 켜면 그림같은 얼굴에 길쭉하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남녀들로
우리의 미적 기준이 획일화 되고
일류대학의 졸업장이 아닌 부모로 부터 물려 받은 놀라운 장인정신은
하찮은 기술쯤으로 전락 되고
박봉에도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 보다
저택에 살면서도 불만과 욕심의 기름으로 비만된 사람들을
더 인간취급 해주는 세상인데...
계속 세뇌당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려해 보자.
나만이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취향을 점점 구석으로 밀어내고
공장에서 찍어낸 규격싸이즈를 킹카/퀸카라고 부르겠는가
오로지 나만을 위해 태어나 준 사람처럼
나의 기질과 성격과 환경에 꼭 맞으며 내가 가진 역경 속에서 조차
애초의 어여쁜 모습 고스란히 유지해 줄수 있는
그저그렇게 생기고 다리 짧고 안 날씬한 사람을 킹카/퀸카라고 부르겠는가...
지난 겨울의 매서운 추위로
대중매체에 현혹된 대중의 광기를 자궁 삼아 탄생한
모든 킹카와 퀸카들이 얼어 죽었길 바라며
다가오는 올 봄엔 참 매력과 진짜 사랑들만이
마른 나뭇가지 사이에서 꽃 피우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