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고등학교 때 교회학교에서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
라는 복음성가를 배우면서 당시에는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고린도 지역이었다.
당시 교회학교 담임 선생님이 "물개 조오련" 수영선수의 누님이셨는데
아주 열심으로 우리들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 주셨다.
누가 알았는가! 20년 만에 만난
당시 고등부 부장선생님께서 머나 먼 고향을 떠나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의 옆 교회에서 목회자를 하고 계실 줄이야.
메테오라 수도원에서의 감동을 뒤로 하고 드디어 7월 28일 오후에
고린도 지역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고린도 지역으로 가는 도중의 해변 민가들.
차가 잠시 신호에 걸린 틈을 노려서 한장~
저녁 노을이 들어가는 해변!
이 코스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였다. 운전 기사 그레고리는 빠른 고속도로를 놔 두고
일부러 구비 구비 돌아가는 이 코스를 우리에게 선 보였다.
역시 베테랑 다웠다. 정말 아름다운 코스였다. 목사님의 선글라스 선물이 한 몫을 한 듯~
전복된 배를 발견하고 차속에서 순간적으로 눌러 보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리스에서는 아직까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한번도 언론에 나온 적이 없다고 한다. 어려서 부터 물과 함께 사는 탓이기도 하리라.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처음으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보도되었는데
바로 우리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원인은 심장마비사ㅠ.ㅠ
그리스에서 일반 페리호는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종류가 제일 많다고 한다.
하지만 고급 페리호는 인테리어 부족으로 수출이 안된다고 한다.
드디어 고린도 지역으로 들어와서 만나게 된 고린도 운하!
이곳이 고린도 운하 거의 마지막 인듯 하다.
호텔에 가는 길에 고린도 운하 아래 지역을 둘러 보았다.
고린도 운하에서 번지 점프를 하고 있더라.
다리 밑의 줄에 달려 있는 사람이 바로 장본인!
하룻밤을 묵었던 리조트!
호텔 시설과 부대시설 그리고 음식도 최고였다. 아울러 해변의 아름다움도...
그리고 그 해변의 아름다움 때문에 가장 미련이 남고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저녁에 이 바다에서 수영을 하였다.
해변가만 조금 차가울 뿐 들어가자 행복 시작~
달까지 떠 있어서 운치와 더불어 너무 늦게 도착한 것에 대한 아쉬움까지 더해졌다.
바다속으로 들어오지 않을려던 일행 중의 한분!
"안 들어왔으면 평생 후회할 뻔 했네요"
그러자 내가 대답했다.
"안 들어왔으면 평생 후회도 못하지~"
7월 29일 아침이 밝았다.
꿈에도 그리던 고린도에서 주일 아침을 맞을 줄이야!
호텔 지하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는 데 감동이 몰려왔다.
하지만 전 일정을 놓고 생각보니 감동의 시작밖에 되지를 않았다.
예배와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해변 산책을 하다가 만난 이탈리아 청년들과 함께!
페리를 타고 여행 중인 이들은 엄청 소란 스러웠고 장난끼가 많았다.
호텔 방을 놔두고 해변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내가 토티를 좋아하고 우리도 이탈리아를 경유할 예정이라고 하자 엄청 좋아했다.
아~ 영어를 잘 해서 알아 들은 것이 아니라 몸짓 발짓 혀짓 다해서 겨우 겨우 ㅠ.ㅠ
아침 산책을 마치고 호텔 잔듸밭에서!
고린도 지역의 첫 일정인 바울기념교회에서(성모 마리아교회)!
레기온 만을 중심으로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신고린도 시내 중앙에 있는
바울 기념 고린도 교회이다.
고린도에서 천막을 만드는 일의 동업자 아굴라와 함께 교회를 형성하고
목회했던 바울을 기념하여 현대식으로 지었다.
정면 좌측으로는 천국 열쇠를 들고 서 있는 베드로의 모자이크가 있고
우측으로는 성경책을 들고 서 있는 바울의 모자이크가 있다.
바울기념교회 좌측에는 고린도교회 역대 목회자의 이름이 기록된 판이 있다(위)
1,2,3,4대 목회자의 명단에 바울, 아볼로, 실라, 소스데네 등이 차례로 적혀 있다.
그리고 우측에는 유명한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1~8절까지를 그리스어,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로 새겨놓은 대리석이 있다.(아래)
주일 예배 모습!
이 곳 교회 종탑의 높이는 33미터인데 예수님의 생애 기간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고린도 전서 첫 머리에는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문안을 했으나
후서에서는 "고린도의 성도뿐 아니라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안부를 전하였다.
이는 바울이 첫 번째와 두 번째 편지를 보내는 사이에 고린도에서 아가야 전역으로
복음이 확장되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주일 예배 모습
구경(?)하고 나오다가 입구에서 떼어 준 빵을 얼떨결에 입에 가득 넣고 먹은 기억이...
고대 고린도교회에서 본 해변가의 고린도
이 신전 7개의 기둥이 따로 하나씩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몸통에서 깎아 낸 것이라고 한다.
B.C. 550년 경에 세운 것으로 도리아 양식이다.
아크로 고린도!
우숭숭배와 음행으로 더럽혀진 이곳에도 복음이 들어가 많은 것들 변화시켰다.
이렇듯 복음은 사람뿐 아니라 사회도 변화를 시킨다.
박물관의 유물들 중 하나인데 옛날의 수술대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한다고 한다.
고린도 박물관 안에 있는 청동거울!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당시의 청동거울을 연상하며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고전 13:12)락 하였다.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를 않았으나
이날 이 청동거울을 보면서 왜 희미하다고 했는지 사도바울이 말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여러분! 이처럼 희미하게 보일 지라도 맑게 닦힌 다음의 세상을 생각하시면서
힘차게 사십시요!
고린도 박물관에 보관중인 각종 우상들!
목이 없는 이유가 세 가지라고 한다.
1. 우상이라서 목을 제거했다고 한다.
2. 당시 이러한 것들을 고위층에서 주문을 많이 했다고 한다.
미리 만들어 놓고 주문이 오면 목만 붙혀서 납품을 했다고 한다.
3. 고린도 지역의 지진으로 목이 파손되었다.
아폴로 고린도와 비마로 가는 길에도 아폴로 신전은 보였다.
원래 원주기둥이 38개였지만 현재는 7개만 남아있다.
높이는 7.2미터이고 직경은 1.8미터이다.
이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동네 아래로 내려와서 매춘 행위를 하였다고 하니...
이 성은 외세의 침략에도 굳건히 지켜주어서 "고린도의 족쇄"라고도 불리웠다.
달리는 차속에서 보이는 아크로 고린도를 이해를 위해서...
비마(Bema)!
바울이 끌려가서 재판 받던 곳으로 비마라고 불리운다. 비마란 총독이 재판할 때
사람들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돌로 만는 일종의 단이었다.
높이가 5미터, 넓이가 15미터로 큰 편이다.
바울 당시 고린도 지역의 총독은 갈리오(Gallio)였고, 그의 부친은 유명한 웅변가 세네카였으며
동생은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철학자 세네카였다.
갈리오의 고린도 총독 재임연대가 51~52년이니 바울의 선교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레가이온 길!
북쪽의 레가이온 항구로부터 고린도시 중심부로 곧장 이어지는 북쪽으로 난 길이다.
도로 폭은 6~7.5미터로 석회암 포장길이다.
도로 서쪽편에 위의 아폴로 신전이 있다.
바울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도로를 이용했을 것이리니...
피레네샘!
앞의 직사각형 광장은 종교 모임(목욕탕)으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아래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있는데
옛 고린도 도시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끌여들여 1차 식수, 2차 목욕수,
3차 수세식 화장실 용수로 사용한 후 바다로 빠져 나가도록 수로가 연결되어 있다.
수세식 화장실!
당시의 에베소, 빌립보 등지와 같이 수세식이다.
아크로 고린도와 아폴로 신전이 보이는 유적지
아테네에서의 비행기 시간 관계로 아크로 고린도에 올가가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
유적지 밖의 현재 모습!
코카 콜라는 역시 무적이다. 이곳에서도 유일하게 팔고 있는 음료수였다.
너무 더워서였는지 내 평생에 콜라가 그렇게 맛있는 날이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