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내 머리속 지우개 - 이별 그리고 후회...

현경호 |2008.03.17 10:56
조회 81 |추천 1



내 머리속 지우개

 


남향으로 지어진 미술실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봄추위를 녹이는 햇살이 뿌옇습니다.

 

많던 캔버스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내 손에는 그저 조각칼과 지우개 만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 날부터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제와 돌이켜볼 때 내 운명은 자각하고 있었지만

순수는 그 날의 햇살만큼이나 해맑게 웃으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요. 지난 2년 간 나는 내 심장에 당신의 이름을 새겨왔습니다.


간헐적으로 다량의 피를 분출하는 나의 좌심방을 움켜쥐고

속살이 허는 아픔을 인내하며 날이 선 조각칼로 후벼팠습니다.

아프긴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각하는 일이 즐거워 눈물 섞인 기쁨으로 세상을 축복했습니다.

 

가끔 혹은 자주, 주변의 유혹이 버거울 때면

나는 줄곧 데카르트의 이성을 울부짖었습니다.

그렇게 당당히 당신에 대한 맹신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별하고 난 후...

 

신뢰할 수 있는 그 누군가들이 전해준 마지막 이야기는

지금껏 내가 믿어왔던 당신의 모습뿐만 아니라 소중한 나의 신념마저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저 멀리 사라져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며 내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 마저 드는 이 순간,

나는 지우개를 손에 쥡니다.


 

 

아, 물론

당신의 이름 세 글자가 새겨졌던 내 심장엔

이미 깊은 상처가 아물어 새 살이 돋아나고 있답니다.


하지만 이제 나조차 당신을 완벽히 떠나려합니다.

기억의 호수 그 어딘가에 잠겨있는 당신에 대한 아련한 기억,

가끔씩 어렴풋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관념적인 당신의 모습마저 지우려합니다.


그리고 그 날의 따뜻했던 햇살을 다시끔 맞는 날,

하늘에 간절히 빌어보겠습니다.


사랑이란 단어마저 수치스러운 남은 기억 마저도 잊혀지도록,

더 이상 우리가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다시는 당신같은 존재와 상처받지 않도록...


 

 

남향으로 지어진 미술실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봄추위를 녹이는 햇살이 뿌옇습니다.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