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 : 이데일리/2007.8.12)
서정원은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해까지도 독일 월드컵 대표 발탁 가능성이 거론됐을만큼 나이에 걸맞지 않은 활약을 해온 그로선 다소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2006~2007 시즌에는 오스트리아 리그 SV 리트에서 플레잉코치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의 은퇴 선언 소식을 들은 오스트리아의 에이전트들이 "아직 원하는 팀이 있는데 왜 그만두느냐"며 의아해 했다. 은퇴 결정을 두고 '부상탓' '체력 탓' 등 여러 가지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그건 아니라고 했다. 더 늦기 전에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최근 그를 만나 현역 생활을 마감하는 소회와 앞날에 대한 구상, 그리고 꿈을 들어봤다.
▲아직도 마음은 그라운드에
지난 8일 그는 친정팀 수원 삼성의 홈 경기에 가 그를 아끼던 서포터 '그랑블루'와 고별인사를 나눴다. 22일 열리는 우즈베키스탄과의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1차전 하프타임때는 공식 은퇴식이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진짜 은퇴를 했는지 아직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직업병인지, 운동을 안 하면 불안하고 운동을 해야만 컨디션이 좋을 것 같고 그렇습니다. 지난 달 일본 J 2리그 사간 도스에서 뛰고 있는 윤정환을 보기 위해 경기장에 갔었는데 너무 뛰고 싶더라구요. 옆에 있던 와이프가 '또 그라운드에서 뛰고 싶은 거지'라고 하는데 가슴이 뜨끔하던데요"
▲공부를 더 늦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은퇴를 결심했을까. 스스로도 그렇고, 주위에서도 현역으로 더 뛰기에 충분한 체력과 기량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많이 망설였습니다. 2005년 오스트리아로 갈 때 6개월만 더해야지 하고 떠났어요. 그런데 1년만 더, 1년만 더 하다보니 벌써 2년 반이 지났습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하는데 더 늦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불안도 했습니다. 어느 날 이렇게 고민하는 것을 지켜 보던 와이프가 '이제는 그냥 마음 편하게 은퇴할 때가 됐다'고 하더군요. 혼자 고민하는 게 안쓰러웠던 모양입니다. 그 말에 공감했고, 좋을 때 옷을 벗는게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이제 그만하자'고 결심했죠. 나이도 그렇게 됐구요."
▲서정원의 힘 '가족'
서정원은 자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상형을 '지금의 부인'이라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만큼 부인 윤효진(34)씨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각별하다.
"은퇴를 결정하니까 와이프가 이제부터 각오하라고 하던데요(웃음). 그동안 혹시 운동하는데 지장이 있을까봐 많이 양보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거란 뜻이죠. 그래서 '그러면 공부한다고 집을 많이 비우고 다닐거야'라고 해줬죠(웃음). 하지만 와이프에게는 정말 미안하고 또 고맙습니다. 젊어서는 당연히 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여기고 이기적으로 생각한게 많았죠. 그때마다 와이프가 많이 참고 희생했습니다. 이런 가족들의 사랑과 도움이 저의 힘이었습니다.'
서정원은 부인 윤효주씨도 프로가 된 것 같다고 했다. 프로축구 선수 부인으로서 오랫동안 내조를 하다보니 그 분야로 프로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다.
"운동 선수들의 일상도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침에 나갈 때 기분이 나쁘면 하루 일이 잘 안 풀리듯 운동선수들은 부상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화가 나서 운동을 하다보면 자기 절제를 못해 퇴장도 당하게 되고 부상도 당하는 거죠. 이런 일들을 와이프가 잘 아는 것 같아요.
후배 부인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던데요. 오스트리아에 있을때면 전화 통화로, 한국에 오면 이운재 김대의 서동원 등 후배 가족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해주는 모양입니다. 경기가 있을때, 경기에서 지고 왔을때,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때 어떻게 해주는게 좋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남편이 편하게 운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쌓인 것 같습니다."
서정원은 그러면서 솔직히 부인과는 거의 싸워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잊을 수 없는 프랑스 교민의 눈물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역시 프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국민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었던게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말할때는 '서정원 세대'만 해도 요즘 세대와 참 많이 달랐음을 느꼈다.
"축구를 하면서 가장 기쁜 것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월드컵 한일전 등 중요한 순간 골을 넣어 국민들을 활짝 웃게 해 줬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뛸 때 교민 아주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저를 반기던 때입니다. 당시 한인회 초청으로 식사자리에 갔었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같이 와서 고맙다며 저를 붙잡고 울더라구요.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프랑스 친구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코레(코리아)'라고 하면 어딘지 몰라 '시나, 시나(중국)'라면서 놀렸답니다. 그래서 아이가 유치원에 갔다와서 매일 울었는데 제가 스트라스부르에서 뛰면서 사정이 달라졌답니다.
그때 제가 정말 잘했거든요. 시내 광고판에 제 사진이 붙고 구단에서도 팀 홍보를 할때 저를 앞장세우곤 했으니까요. 그 이후 유치원에 가서 '세오(서)의 나라'에서 왔다고 하니까 더 이상 놀리지 않더랍니다. 그날 집에 와서 와이프와 '축구를 하니 이런 보람도 있구나' 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때도 축구로 온나라가 하나가 되는 것을 보면서 축구 선수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유럽에 좀더 빨리 나갔었으면...
이런 보람도 컸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그는 "좀 더 빨리 해외에 진출해 더 오래 뛰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며 말끝을 흐렸다.
서정원은 91년 데트마르 크라머 올림픽 대표팀 감독 시절 분데스리가 팀들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았고,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명문 FC 바르셀로나 이적이 추진됐지만 군 문제로 모두 무산된 아픈 기억이 있다. 결국 27세이던 97년에야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로 진출할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 2006년 월드컵 본선에 뛰지 못한 것은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아쉬움은 있었죠. 하지만 좀더 어렸으면 욕심을 내고 그랬겠지만 잘하는 후배 공격수들도 많았고 고참의 위치였으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스스로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하고 느꼈을 뿐입니다."
▲가장 아까운 후배 고종수...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먼저 고종수를 떠올렸다. 너무 아까운 선수라는 것이다.
"2007 아시안컵을 보면서도 고종수가 생각나더라구요. 지난 해 독일 월드컵때도 그랬고. 중요한 시기에 그가 없었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그렇지만 한국 축구에도 불행이었습니다. 종수가 가진 재능과 실력 때문입니다. 종수를 보면 본인도 잘해야 하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주위에 계신 분들이 잘 될 수 있도록 지켜보고 도와줬어야 했거든요. 요즘도 종수가 싸이에 쪽지를 많이 보냅니다. '형님 예전이 좋았습니다. 밖에 나와보니 그런 것을 더 절실히 느낍니다'라고 하던데요. 종수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라더니 구세대다운 충고를 했다.
"후배들이 우리나라 축구 수준을 한단계 끌어 올려줘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항상 선수들이 축구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라운드에서는 좋은 경기로, 바깥에서는 바른 행동으로 국민들에게 믿음과 즐거움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신세대라 이전 세대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맡은 바 일을 충실히 다하면 누가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 믿음직한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그런 면에서 그는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총사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성실함이 배어있는 선수들입니다. 모두 축구만 잘하는게 아니라 인격도 됐습니다. 사람 됨됨이도 좋고. 그래서 더 귀여움을 받고 사랑도 받는 것 같습니다. 어린 후배들은 이들을 본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꿈은 높고 큰 게 좋지 않습니까?"
'국가대표 감독을 목표로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서정원의 답변이었다. 분명하게 '그렇다'고 하지는 않았으나 어차피 지도자로서의 '제 2의 인생'을 설계하는 그로선 국가대표 감독이 당연한 목표일 것이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시절 만난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을 보면서 지도자의 꿈을 키웠다는 그는 "지휘봉을 잡게 된다면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팀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지난 아시안컵때의 한국 대표팀, 그리고 핌 베어벡 감독의 사퇴와 박성화 감독 홍명보 코치 체제가 선임된 올림픽 대표팀 코칭 스태프 구성까지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그의 생각을 밝혔다.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는 이로서의 시각과 위치에서였다.
▲아쉽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었던 베어벡,.
우선 자진 사퇴한 핌 베어벡 감독에 대한 그의 평가는 썩 높지 않았다.
"한국 대표팀 코치 생활을 오래 하면서 한국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지도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1년만에 그만 둔 부분은 아쉽죠. 자신의 축구를 구현하기에는 시간이 짧았습니다. 하지만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경기 내용은 분명 좋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그가 지도자로서 평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프로 감독은 물론 국내 전문가들과 자주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좋지 않았구요. 큰일을 하기에는 조금..."
▲반드시 외국 지도자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국가대표 사령탑에 외국인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도 생각지 않았다. 장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 대표 감독으로 영입할 정도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장일 것이기 때문에 배울 점은 많을 것입니다. 축구에 대한 마인드부터 시스템 등 기술적인 부분까지 플러스 요인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유럽이나 남미와 문화가 많이 틀립니다. 문화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 수 있지만 그런 게 있어요. 우선 외국인 지도자들은 한국 선수들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고 독특한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데 또 시간이 걸리죠. 마이너스 요인입니다.
반면 국내 지도자는 선수들에 대한 파악은 기본으로 되어 있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죠. 물론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축구에 대한 지식 등에서는 외국 지도자에 떨어질 수 있죠. 그렇다고 외국 지도자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유럽축구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언젠가는 국내 지도자가 국가대표팀 감독도 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올림픽 대표팀 박성화-홍명보 체제는 이해해야 할 듯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 대표팀 코칭 스태프 선임 과정에 대해선 그는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박성화 감독은 능력이나 자격면에선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충분한 지도자입니다. 다만 부산 감독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자리를 옮겨 문제가 되지만 급박한 상황을 보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라를 위해 큰 일이 있다고 부르는데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때 홍명보 감독-서정원 코치 체제가 거론된 것을 묻자 조금은 어이없어 했다.
"어떤 기자분이 혹시 코치로 가는게 아니냐고 묻길래 웃어 넘겼거든요. 근데 바로 기사화되더라구요. 사실 그런 부분은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그런 일을 할만한 능력도 안되거든요. 명보 형은 잘하고 있습니다. 감독이 바뀌는 와중에 고생도 많이 하고 있죠. 그만큼 명보 형을 믿고 따르는 선수와 팬들이 많습니다. 조금 더 고생하시라고 말하고 싶네요(웃음)."
▲홍명보 퇴장당한 한일전 분위기 이해하고도 남아...요즘 선수들과 다른점
홍명보 올림픽 감독 대세론이 꺾인 가장 큰 이유로 제시된 2007 아시안컵 한일전 퇴장건에 대해선 그는 홍 코치를 이해하고도 남는다고 했다.
"우리 때만 해도 한일전은 어디가 부러져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습니다. 언론, 선배 들 모두 한일전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죠. 선수들의 각오도 그랬습니다. 정신적인 부담감은 두배였습니다. 그라운드에 서면 우리 선수들의 눈동자부터 일본 선수들과 차이가 났습니다. 압도했죠.
이러니 질수가 없었습니다. 공을 다투는 상황에선 부러지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다리를 갖다댔습니다. 기술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었습니다. 우리는 한일전에서 지면 죽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라가 부른다면, 원한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있었습니다. 요즘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도 많지만 예전에는 명예밖에 없었습니다. 신세대 후배들과 많은 이야기는 못 나눴지만 동료 선배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은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
지도자 수업은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와 함께 유럽 각국 클럽들을 순회하면서 지도자, 관계자와 직접 미팅을 통해 노하우를 익히는 일을 병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르셀로나 등 명문 클럽 등을 우선 찾지는 않을 계획이다.
"톱 클래스의 팀들은 최고의 선수들을 최고의 감독이 이끌고 있습니다. 성적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색깔을 내지 못하는게 오히려 이상하죠.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그런 클럽들을 우선 보고 싶어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중간 정도나 하위 수준의 팀들 가운데 어려운 상황에서 치고 올라오는 팀들을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각 리그마다 그런 팀들은 언제나 있거든요.
어떻게 팀을 끌어 올리는지, 감독은 선수단을 어떻게 이끄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듣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얻는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그런 팀들과 연락을 해서 미팅도 하고 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심리학
지도자 공부는 딱히 몇 년이라고 정해놓고 있지는 않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여기고 있다. 자격증도 따야 하고 여러 클럽을 다니면서 보고 배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이제는 시간이 나니까'라며 모든 것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했다. 그리고 그는 심리학을 강조했다. 그동안의 선수 생활, 특히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절실하게 그 필요성을 느낀 듯 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럽 클럽들의 훈련 프로그램은 비슷합니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이죠. 특히 주목할 것은 심리학을 중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명문 클럽들은 대부분 심리 전문가를 활용, 또 다른 것을 이끌어 냅니다.
가령 심리 전문가들은 매 경기를 직접 보면서 선수들의 행동을 파악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경고를 받고, 또 실수를 하는지 우선 그라운드에서 지켜 봅니다. 그 상황을 알아야 선수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처방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팀이 좋을때와 그렇지 않을때 그 이유를 선수들과 토론하고 선수들의 의향을 들으면서 리포트를 작성하면 감독이나 선수 모두 이를 적극 활용합니다. 사실 감독이 이 모든 일들을 혼자 할 수는 없습니다. 선수들의 속마음까지 파악하는 것은 더욱 힘듭니다. 이럴때 심리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죠.
사실 이런 심리 전문가는 한국 축구에 더 필요할지 모릅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까지 한국 축구는 유럽에 비해서 지도자와 선수간에 벽이 높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알아야 선수들이 가진 것을 120% 발휘하게끔 할 수 있습니다. 심리전문가는 국가대표급 뿐만 아니라 학원 스포츠에도 보급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목표는 크게 잡을수록 좋다.
그는 '목표는 높게 잡아야 한다'고 했다. '국가대표 감독이 목표인가'라는 물음에 내놓고'그렇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그렇게 세우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선수 생활을 시작할 때 가슴에 태극기를 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처럼 멀리, 그리고 크게 봐야 할 것 같아요. 비단 축구 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분야에 종사하건 목표는 크게 잡을수록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계속 노력할 수 있으니까요.
아직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순 없지만 지도자 공부를 마치고 돌아 올때는 뭔가 잡혀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저 준비하는 과정일 뿐이죠. 그리고 팀을 맡으면 항상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팬이 없으면 축구가 살수 없으니까요.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섰을때 팬들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경기력에 차이가 납니다. 관중석이 썰렁하면 맥이 풀리지만 가득차 있으면 없던 실력까지 나옵니다. 이것도 심리적인 측면이죠."
여기서 팬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K리그에 실망스러워 하는 팬들에게는 경기장을 한번이라도 더 찾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명이라도 더 오면 선수들의 플레이도 달라지니까요.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면 그만큼 K리그 수준도 올라갑니다."
서정원은 주위 사람들이 유럽에서 지도자 공부를 한다고 하면 부러워하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다고 했다. 강하게 마음을 다져 놓지 않으면 굉장히 힘든 과정이라고 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스포츠 생리학, 심리학 등의 어려운 용어도 익혀야 하고, 치밀한 계획에 따라 절제하는 생활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자신을 불러준 옛스승 김호 대전 감독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조만간 인사를 하러 대전에 가야 한다고 했다.
서정원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라는 점이다. 매사 좋은 점만을 찾아 받아들이려 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몇 년 후 일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축구가 바라는 훌륭한 지도자로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서정원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시절 만난 데트마르 크라머(81) 감독을 잊지 못한다. 지도자의 꿈도 그를 통해 키웠고, 요즘도 '아 정말 명장이었구나'하고 느낀다. 당시 총감독이었던 그가 김삼락 감독과 선수 선발권, 지도 방식 등을 두고 마찰을 빚다 결국 떠날 때 '정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독일 출신의 크라머 감독은 한국 축구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1년 앞두고 영입한 제 1호 외국인 감독이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일본을 맡아 3위로 이끌었고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 순회 강사로 축구 지도자를 가르친 '감독들의 감독'으로 불린 명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28년만의 올림픽 본선 자력 진출의 쾌거를 이루고도 국내 축구계와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정작 올림픽 본선은 치르지도 못하고 한국을 떠나야 했다.
▲신선한 충격
서정원은 크라머 감독과의 만남을 '신선한 충격'이라고 표현했다. 지도 방식, 훈련 스타일 등 모든 게 국내 지도자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실력은 물론, 선수들을 감독에게 빠져들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서정원은 '선수들의 심리적인 부분을 세밀하게 파악해서 그들이 가진 것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서정원은 이런 일을 예로 들었다. 연습경기를 가진 다음 날 미팅에서 크라머 감독이 그를 불러 일으켜 세웠다. 연습경기에서 수차례 맞은 찬스를 골로 연결하지 못했던 서정원은 '무슨 망신을 주려고 그러나'하면서 미적거리며 일어섰다.
그런데 크라머 감독은 뜻밖에 선수들에게 박수를 치라면서 그를 칭찬했다. "한번 시도해서 안되면 또 시도하고, 좌절하지 않고 다시 시도하는 강한 정신력을 발휘했다. 앞으로 정말 많은 골을 넣을 선수"라는 이유였다.
실수를 하면 항상 꾸지람을 받기만 했던 그로선 깜짝 놀랄 수 밖에. 하지만 '지도자가 선수들을 다스리는데 이런 방법도 있구나'하고 느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축구는 칭찬보다는 억압과 강요가 더 많았다. 학원 축구가 특히 그랬다. 이런 현실에 익숙해 있던 선수들에게 이전과는 180도 다른 크라머 감독의 지도 방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선수들은 곧 감독과 굳건한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고, 훈련도 재미가 있었다. 선수들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요즘도 독일 축구의 대부
몇 년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관전하기 위해 독일 뮌헨에 갔을때 그는 깜짝 놀랄 만한 장면을 봤다. 경기장에서 크라머 감독의 생일 잔치를 열었던 것이다. 독일 축구의 전설 베켄바워가 그에게 직접 선물을 증정했고, 경기장에 온 모든 축구팬들은 진심으로 그의 생일을 축하했다. 크라머 감독이 독일축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대목이다.
서정원은 이런 지도자로부터 한국축구는 과연 무엇을 배웠는지 자문한다. 크라머 감독은 한국을 떠날 때 "한국이 왜 날 불렀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
서정원은 한국 축구계에 알게 모르게 외국인 지도자의 장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폐쇄성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과도기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