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커 예수님
‘스쿨 오브 락’이란 영화를 보면 록이란 뒤집어 엎어버리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학생들에게 뒤집어버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지껏 너는 왕따였고, 남들이 너를 미워한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너는 록밴드의 키보드시스트야. 너는 이제 킹카야.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너는 누구보다도 인기있는 사람이 될꺼야.’ 그리고 주인공은 아이에게 악수를 가르쳐줍니다. 그리고는 Let's rock today! 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우리 ‘록’을 하자라는 뜻도 되지만, 뒤집어 버려. 한번 도전해봐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도 정말 바른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가득한 학교에서 그것도 전통있는 학교에서 ‘록’을 한다는 것도 어렵지만, 자유분방한 사고 방식을 가진 전직 ‘록키타리스트’가 적응하기에는 너무도 숨막힌 장소이기도 합니다. 여자 아이가 백점을 맞으면 별을 하나씩 달아주는 성적표라며 설명할 때 주인공은 당장 가서 발기발기 찢어버리는 과격함마저 보입니다. 왜 그런 모습을 보였을까요? 저는 생각해보면서 관습과 주변의 생각, 올바르고 선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삶을 사시다 가신 분이 또 하나 계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공부 잘 하고 돈 많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회칠한 무덤이라고, 또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자들과 함께 지내기보다는 가난한 사람과 늘 함께 계셨습니다. 건강하고 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보다는 또 정치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시기 보다는 힘들고 연약한 병자들과 늘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록커였습니다. 왜냐하면 록처럼 사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해의 소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3년 공생애 기간 동안 분명히 록을 하셨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하는 하혈하는 여인과 함께 계시며 그의 병을 고치셨고, 세리와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친히 병들고 죽어가는 자에게 다가가셨습니다.
과연 과테말라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시겠습니까? 과테말라 대통령을 먼저 만나서 귀빈 대접을 받고 그래서 대규모 집회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호화로운 호텔식을 즐기면서 이 땅의 부자들을 만나서 복음 사역을 의논하시겠습니까? 교회의 지도자급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하면서 호화로운 연회를 즐기시겠습니까? 목사님들을 모셔놓고 교회 성장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시겠습니까?
오히려 예수님은 이 땅 과테말라에 지금 오신다면 장사가 안되는 분들을 먼저 찾아가셔서 무엇이 그리 힘드느냐고, 또 공장을 하다가 망하신 분들을 찾아가서 너희가 무엇을 찾느냐?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명의 물을 내가 주리라고 하시지 않겠느냐 말입니다. 도박장에서 실의에 가득찬 한 청년을 만나시고 왜 실망하느냐고 물으시지 않겠습니까? 빚이 늘고, 저주하고 욕만 듣는 사람에게 다가가셔서 내가 너의 집에 유하여야겠다고 말씀하시지 않겠느냐 말입니다.
‘처치 오브 록’을 꿈꿉니다. 교회는 ‘록’을 해야 합니다. 고상하게 클래식을 들으면서 나는 유식하고 고상하며 상류문화를 즐기는 자요. 책상에 앉아 책을 보며 파티나 즐기고 고급차와 고급주택에 살면서 잘난체하는 사람을 예수님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교회는 철저하게 상처 받은 자를 향한 목소리를 발하며 도움을 주며 영혼을 살리는 사역을 감당하는 해야합니다.
사실 가난한 자나 연약한 자는 세상이 볼 때는 보잘것없어도 그 영혼은 천하보다 귀중한 존재입니다. 에베소서2:10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천하보다 귀한 줄 믿습니다. 나는 귀하다. 존귀한 존재이며, 특별한 존재이다. 그래서 공부와 학력, 물질과 집안 형편 앞에서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최고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부자를 위하여서 사역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자도 능력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제한되어 살지 맙시다.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장애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처지가 어떻든간에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아야합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굴려버리시기바랍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처치 오브 록’입니다. 나치 수용소에 빅터 프랭크에서 늘 세수를 했습니다. 매일 깨진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언제 가스실에 들어가 죽을 지도 모르는 그런 삶을 살면서 프랭크의 행동은 어리석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프랭크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형편 때문에 자포자기 할 수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 땅에는 분명히 잘난 사람과 돈 많은 사람, 권세를 가진 사람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주인 되신 교회에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잘난 놈 못난 놈 구분합니다. 교회에 그러한 모습이 생기는 순간에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목사가 이끄는 어떤 사교집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조용기 목사는 삼중축복을 통해 건강과 영혼의 잘됨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통해서 이 땅에서 승리하는 인생으로 살 것을 촉구합니다. 신기한 것은 그러한 목사와 교회는 금방 부흥하고 성장하며 축복을 받았다고 말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조 목사의 교회와 레이크우드교회의 담임이 되셨다면 과연 어떻게 하셨을까를 고민해봅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상처받은 것은 문제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남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물질주의적 가치관이며 예수님이 그렇게도 미워하셨던 가식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편입니다. 예수님도 록을 하셔서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우리가 약하다고 생각합니까? 뭔가 말하려고 해도 돈이 없어서 힘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교회에서 만큼은 있어서는 안되는 하나님의 징계의 앞에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예수님이 우리 편이란 것을 생각하며 함께 록을 합시다.
잘났다고, 흥 난 누구보다도 귀한 예수의 형상 닮은 사람이야! 건드리지 말라고! 최고의 걸작품은 바로 나라구! Let's rock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