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정이다. 이 유서를 다 쓰고 나면 나는 자살할 것이다. 왜냐고? 이유를 애써 설명해보겠다. 이 유서를 읽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나약해진 내 용기를 북돋고, 지연될 수도 있었을 이 행위가, 현재 내게 불가피한 것임을 나 자신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
나는 무엇이든 잘 믿는 순박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나 역시 그분들처럼 무엇이든 믿었다.
내 꿈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꿈의 단편들은 얼마 전에 찢어져버렸다.
몇 년 전부터 내 안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오로라처럼 아름답게 빛나 보이던, 삶의 모든 것들이 지금은 색채가 바랜 듯이 보이고, 사물들의 의미가 갑자기 맹렬한 사실성을 띠는 듯하다. 또한 사랑을 하게 하는 진실한 동기가 나로 하여금 사랑의 시적인 감미로움을 혐오하게 만든다.
우리는 매혹적이지만 어리석은, 늘 되풀이되는 환각들의 영원한 놀잇감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나이가 먹어갈수록 사물들에 내재한 무시무시한 비참함을, 노력의 무용함을, 기다림의 허망함을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늘 이 저녁 식사 후, 모든 것의 허망함을 일깨우는 또 다른 빛이 나를 비추었다.
예전에 나는 즐거웠었다! 길을 지나가는 여자들, 거리들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보이는 광경 등 모든 것이 나를 매혹시켰다. 심지어 나는 내 옷의 맵시에 관해서도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반복되는 똑같은 광경들이 내 마음을 무기력과 권태로 가득 채우고 있다. 마치 매일 밤 똑같은 연극이 상연되는 극장에 들어가는 것만 같다.
서른 이후 나는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났다. 또 같은 음식점에서 같은 시각에 같은 요리를 먹었다. 그 음식을 가져다주는 웨이터들만 바뀌었을 뿐이다.
여행은 다녀보려 했냐고? 그랬다. 하지만 미지의 곳에서 겪게 될 고립감이 나를 두렵게 했다. 내가 너무나 보잘것없는 존재이고 이 지구상에 나 혼자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짐을 꾸려 집으로 돌아왔다. 서른 이후 같은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는 가구들, 한때는 새것이었던 안락 의자가 마모돼가는 모습, 내 방에서 나는 냄새(모든 집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특별한 냄새가 배기 마련이니까)가, 매일 저녁 나에게 익숙함에 대한 구토감과 이렇게 삶에 대한 어두운 우울을 불러 일으켰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그리고 비참하게 반복된다. 내가 자물쇠에 열쇠를 꽂는 방식도, 성냥을 찾아내는 곳도, 인燐에 불이 붙을 때 내가 방 안에 던지는 최초의 눈길도. 이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창밖으로 뛰쳐나가, 우리가 결코 도망치지 못하는 이 단조로운 사건들과 함께 생을 끝장내고픈 욕구를 느끼게 한다.
나는 매일 면도를 하면서 목을 베고 싶은 터무니없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작은 거울 속에서, 두 뺨에 비누거품이 묻은 언제나 똑같은 얼굴을 보면서 나는 슬픔에 겨워 여러 번 울었다.
심지어 나는 예전에 내가 기꺼이 만났고 그토록 잘 알던 사람들, 그들이 내게 무슨 말을 할 것이고 내가 그들에게 어떤 대답을 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 곁에, 그들의 변함없는 생각의 틀과 추론 습관을 내가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는 그 사람들 곁에 계속 머무를 수가 없다. 사람의 뇌는 가여운 말 한 마리가 갇혀 영원히 맴을 도는 서커스장과 같다.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우회를 시도하고, 어떻게 방향을 전환하든 간에, 우리는 늘 한계에 다다라 있고 우수리가 없다. 예견하지 못하는 도약도 없고, 미지로 통하는 문도 없다. 그저 돌아야 한다. 계속해서 돌아야 한다. 똑같은 관념, 똑같은 농담, 똑같은 습관, 똑같은 믿음, 똑같은 낙담을 품은 채.
- 기 드 모파상 「자살」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