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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권력이다

최원순 |2008.03.25 17:07
조회 496 |추천 1


키는 권력이다 니콜라 에르팽 지음|김계영 옮김|현실문화|184쪽|1만1000원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슈렉'에는 거친 농담이 넘친다. 그중에서도 충격은 악당 파쿼드 경의 외모에 대한 조롱이다. 꿈에 부풀어 백마 탄 왕자를 만나러 온 피오나 공주는 마중 나온 파쿼드 경의 멋진 모습에 매혹되지만, 곧바로 경악하고 만다. 위풍당당 말 위에 앉아있던 그가 땅으로 훌쩍 뛰어내리자, 말 무릎 높이에도 못 미치는 키 작은 못난이로 반전(反轉)되기 때문이다. 공주는 키 작은 독재자 대신 뚱보 녹색 괴물을 택한다.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불법화되고, 몸무게로 인한 차별과 차별적 표현이 금기시 된 서구에서도 키는 여전히 차별의 영역에 놓여 있다. 대중 문화에서는 키에 대해 여전히 거칠고 조악한 왜곡과 희화화가 계속되고 있다.

 

키 차별의 희생자는 키 작은 남자들이다. 여자들의 큰 몸(키와 무게 모두에서)을 문제 삼는 남성우월주의가 찾아낸 또 다른 희생자다. 키 작은 남성들은 단지 농담과 조롱의 대상일 뿐 아니라 실제 삶에서 건강과 취업, 보수, 결혼, 자녀 양육 모두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있다는 것이 최근 서구의 여러 연구를 통해 나타났다. '키 차별주의(Heightism)'는 키 차이와 관련한 차별 현상을 경제 자원의 분배 방식이 빚어낸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 보면서 이의 해소를 요구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에르팽은 '지구인 중 가장 키가 큰' 유럽인들의 삶 속에서 '키 작은 남자'가 어떤 문제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 불평등의 원인과 과정, 결과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유럽 주요 국가 중 4번째로 남자들 평균 키가 큰 스웨덴(표 참조)의 자살률을 보자. 키가 5cm 커지면 자살 위험이 9% 낮아진다. 키와 자살률과의 관계는 서민층, 빈곤층의 키가 더 작다는 데서 실마리가 풀린다.

 

키 작은 남자들에 대한 차별이 부당한 것은 그 '작은 키'를 만든 요인 중 부(富)의 사회적 분배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불평등이 키 차이를 낳고 키 차별이 사회 불평등을 확대한다. 에르팽은 프랑스의 대표적 엘리트 양성기관인 에콜 폴리테크니크 학생들이 일반 서민 자녀보다 훨씬 키 변화가 크고 빨랐다는 데 주목한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가난한 아이들은 중상층 아이보다 키가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사회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17세 이하 남자의 평균 키가 월소득 300만원 이상의 가구에서는 129.8cm인 반면, 100만원 미만의 가구에서는 122.4cm로 무려 7.4cm나 차이가 난다.


키가 작은 남자는 짝을 찾는 데에서, 또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는 데에서, 돈을 버는 데에서 같은 조건의 키 큰 남자에 비해 불리하다. 20세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최종으로 맞붙은 두 후보 중 키 작은 쪽이 승리한 것은 단 1번뿐이다. 하버드대학 조사에 따르면, 미국 주요 기업 CEO의 60%가 180cm가 넘는다. 미국 성인남자 평균 보다 10cm 더 크다.

 

에르팽은 2001년 프랑스의 부부 생활 환경 조사에서 키 큰 남자가 더 자주, 더 일찍 커플을 이룬다는 것을 발견했다. 30~39세의 남자 중 큰 키와 중간 키에서는 75%가 배우자가 있는데 비해 170cm 이하의 작은 키에서는 배우자가 있는 비율이 33% 미만이었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에르팽은 여성이 '키 큰 남자'를 선호하는 이유를 성적 매력으로 설명해서는 부족하다고 분석한다. '진짜 이유'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한 보험'이라는 개념이다. 키 큰 남자가 더 우세하게 벌어들일 수 있는 재화와 사회적 위세를 계산한 결과라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의 조사에서는 키 큰 남자가 수입이 높다는 것이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키가 1인치(2.54cm) 커질 때마다 연평균 임금이 789달러 올라갔다. 키가 182cm인 노동자가 165cm인 노동자보다 연간 5513달러를 더 벌었다. 무엇 때문에 이처럼 키 큰 남자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가. 키 자체가 직접적 차별 요인이 되기보다 키 차이를 낳는 빈부격차와 교육 문제, 그리고 키 큰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하는 사회적 고정 관념이 작동한다.

 

"키 큰 사람이 정말 리더십이 더 뛰어난가?" 에르팽은 기업과 학교 모두에서 그런 생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는 괴롭힘(bullying)의 피해자가 확실히 키 작은 남학생들이다. 키 큰 사람의 리더십을 평가하지 않는 기업주들도 "고객이 키 큰 직원을 신뢰한다" "부하 직원들이 키 큰 책임자에게 더 고분고분하다"는 이유로 같은 조건에서라면 키 큰 사람을 선택한다. 이렇게 후기 산업사회에서도 작용하는 신체적 우월성의 고정관념은 200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19세기 프랑스 군대에서 장교로 승진하는데 성공한 사병의 평균 신장은 169.8cm, 사병에 머물러 있게 된 경우는 166.9cm였다. 흥미롭게도, 오늘날 한국에서 군 장교, 혹은 경찰 간부를 기르는 교육 기관에서 응시자의 키를 제한하는 최저선은 2세기 전 프랑스 장교의 평균 키를 연상케 한다. 경찰대학의 남학생 선발 신체 조건 중 키 최저선은 167cm, 육군사관학교는 161cm, 공군사관학교는 162.3cm다.


 


키 차별이 이처럼 명백한 사회적 불평등을 낳을 뿐 아니라 세대를 이어 재생산하는 중대한 요건이라면, 이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에르팽은 "만국의 키 작은 사람들이여, 단결하라!"고 외친다. 키에 따른 차별 금지를 사회운동으로 펼치고 예전에 여권운동, 인종차별 반대 투쟁, 동성애자 인권 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 법적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에르팽은 '키 작은 남자들'에 대한 차별은 또 여성들과의 연대로 더욱 힘을 얻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키 차별 금지법은 인권과 차별금지 차원에서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실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미시건주가 법을 제정했고 매사추세츠주에서는 심의 중이다. 캘리포니아의 산타 크루즈시와 샌프란시스코시가 키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워싱턴DC는 외모 차별 금지에 이를 포함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와 호주 빅토리아 주에서도 키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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