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한국에서도 200년 전 영국에서 노예무역을 폐지시킨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의 생애를 다룬 영화 가 개봉되었습니다.
2007년은 윌버포스가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통과시킨지 200주년이 되는 해 였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영국 은행은 윌버포스의 법안 통과를 기념하는 2파운드 동전을 발행하였고, 대영박물관, 웨스트민스터 사원,요크, 리버플 등 영국 각지에서 특별전시회 및 기념행사가 개최되었고, 성공회 수장인 캔터버리 대주교가 BBC 방송에 출연하여 노예무역의 의의를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이런 200주년 기념의 분위기 속에서 2007년에 영국과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로,
3월 마지막 일요일에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며 현대판 노예제를 폐지하는 운동을 일으키자는 '어메이징 선데이' 운동이 영미권 교회에서 일어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 과도하게 압축되어 담겨져 있고,
영미권과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 있는 우리로서는 영국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을 보충 설명하는 글이 있으면 좀 더 많은 분들이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모쪼록 200년 전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킨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가 좀 더 잘 이해되고 퍼지는 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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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역사적 배경
#1. 윌버포스의 좌절
이 영화는 윌버포스가 노예무역 폐지 운동을 시작한지 15년이 지났지만 계속 법안 통과가 좌절되어 스트레스로 인해 병에 걸린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윌버포스는 복통을 다스리기 위해 아편을 복용하고, 그의 사촌은 오페라를 보러간 의원들을 비난하는 말을 합니다.
윌버포스 당시에는 아편을 마약이 아닌 약으로 썼는데, 이 때문에 윌버포스는 나중에 아편을 끊기 위해 상당히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또한 이 장면은 1796년 노예무역 폐지를 지지한 의원들이 투표 당일 개봉한 오페라 를 보러가서(또한 적절한 시점에 돌려진 공짜 티켓 때문에) 법안 통과가 좌절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 바바라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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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윌버포스는 동료 국회의원 헨리 손턴 부부가 소개해 준 바바라 스푸너를 만나면서 다시 한 번 새 힘을 얻게 됩니다. 바바라는 자신이 설탕 불매 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있고, 조사이어 웨지우드가 만든 뱃지를 차고 다닌다고 말해 윌버포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노예들이 생산한 서인도 제도 설탕을 먹지말자는 운동이 있어나고 있었고, 노예무역 폐지 운동가들은 조사이어가 만든 ‘Am I not a man and a brother?(저는 사람이 아니고 형제가 아닙니까?)' 라고 쓰여 있는 배지를 차고 다녔는데, 바바라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윌버포스가 바바라에게 밤을 새며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3. 윌버포스의 회심과 피트의 만류
(윌버포스를 설득하는 피트)
윌버포스는 21세에 하원의원이 되었고, 24세에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구였던 요크셔에서 당선된 ‘전도유망’ 한 하원의원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25세에 주님을 영접한 후 정치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되죠. 영화에서 매우 간단히 다뤄지는 것과는 달리, 그의 회심은 약 2년에 걸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이를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것은 윌버포스의 캠브리지 대학 동기인 윌리엄 피트(1759-1806)입니다. 피트는 24세에 영국 수상이 되어 20년간 국정을 이끌었던 영국의 유명한 재상으로,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자, 윌버포스가 정계에 남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 중 한명입니다.
#4. 노예무역 폐지 운동으로의 초대
영화에서 피트는 윌버포스를 정계에 남게 하기 위해 노예무역 폐지 운동가들의 모임에 그를 데리고 갑니다. (사실 피트는 이 모임에 가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윌버포스는 그의 캠브리지 후배이자 열렬한 노예무역 폐지론자인 토마스 클랙슨, 당시 여류 지성의 대표자인 한나 모어, 그리고 해방 노예 출신으로서 자신의 수기를 써서 유명해졌던 에퀴아노를 만납니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윌버포스에게 하나님의 일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 두 가지를 같이 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5. 존 뉴턴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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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버포스는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전직 노예선 선장이자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곡한 당시 복음주의 운동의 대표자 존 뉴턴을 찾아갑니다. 이 장면에서 윌버포스는 뉴턴을 만나기를 상당히 꺼려합니다. 영화에서는 뉴턴이 그의 옛 담임목사였기 때문에 그러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은 뉴턴이 당시 영국사회에서 ‘감리교도’로 소문이 나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감리교를 비롯한 비 성공회는 신분이 낮고 천한 사람들이 믿는 종교였기 때문에 윌버포스 같은 지체 높은 사람이 뉴턴을 만나는 것은 상당한 불명예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뉴턴은 윌버포스에게 정계에 남아 세상을 변화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고, 윌버포스는 결국 의회에서 노예무역 폐지 운동을 시작합니다.
#6. 클래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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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안은 처음부터 격렬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당시 영국은 대서양 노예무역을 장악함으로써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고 있었고, 노예무역을 폐지할 경우 프랑스가 서인도 제도 식민지를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반대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윌버포스와 그의 친구들이 모여 자주 회의를 여는 장면이 나오는 데, 역사가들은 이들을 ‘클래팜 공동체(Clapham Sect)’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국회의원, 변호사, 작가, 은행가 들이 모여 이루었던 복음주의 공동체로써, 런던 남부의 클래팜 마을에 모여 살았기 때문에 클래팜 공동체라고 불리게 되었죠.
이 공동체의 힘으로 윌버포스는 노예무역 폐지까지 20년, 노예해방까지 합치면 거의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영국을 개혁하는 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클래팜 공동체의 모임)
#7. 청원서 운동
영화에서 클래팜 공동체는 국민들의 지지를 보이기 위해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벌입니다. 영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당시 서명서는 두루마리처럼 돌돌 말아 제출되었기 때문에, 실제로도 서명자의 수가 많을수록 두루마리의 크기가 커져 시각적 효과 또한 상당하였죠. 서명서 운동은 1780년대 말에 시작되어 노예무역 폐지 법안이 통과될 1807년까지 끊임없이 계속 되었으며, 서구 역사상 처음으로 대중이 정치에 참여하게 된 획기적 사건이었습니다.
(좌: 노예무역 폐지 청원서, 우: 청원서에 서명하는 폭스)
#8. 초당적 협력
여기서 서명서의 마지막에 찰스 폭스라는 정치인이 일어나 서명을 하자 많은 의원들이 놀라는 장면이 나오는 데, 이는 폭스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이해될 수 있는 장면입니다. 폭스는 피트의 정적이자 당시 야당인 휘그당의 거물급 정치인으로써 영국 최초의 외무장관을 지냈던 사람입니다. 이는 아마도 우리나라로 치면 한나라당 대표가 자기 당에 해가 되는 민주당 초선의원의 법안에 찬성한 것과 맞먹는 의미를 지녔을 것입니다. 이는 노예무역 폐지가 초당적 지지를 받는 이슈였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9. 계속되는 실패
(좌: '점진적' 폐지안을 제안하는 던다스, 우: 지지를 철회하는 피트)
하지만 법안은 계속해서 실패하였습니다. 이는 싸움이 ‘거인과 난쟁이의 싸움’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윌버포스는 피트, 폭스 같은 거물들의 지원을 받았지만, 항상 소리없이 반대하는 난쟁이들의 수가 더 많았습니다.
반대파는 던다스라는 의원을 움직여, 노예무역을 ‘점진적’으로 폐지하게 만듦으로써, 노예무역 폐지를 무한히 미룰 수 있게 되었고, 더욱이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남으로써, 수상 피트는 더 이상 윌버포스를 지지하지 않게 됩니다. 혁명을 염려하는 피트가 어떠한 대중운동에도 반대했기 때문이죠.
#10. 결혼과 소생
(윌버포스의 결혼식)
이런 시련 속에 윌버포스도 1794년부터 약 10년간 노예무역 폐지 운동을 거의 포기한 상태로 보내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는 이때 아내가 되는 바바라를 만나 그 사랑의 힘으로 다시 노예무역 폐지 운동을 추진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실제로 이 커플은 1797년에 만나 8일 만에 결혼에 합의하고 한 달 반 만에 결혼하게 되었는데, 이 정도의 열정이면 윌버포스의 열정을 소생시키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11. 전략의 변화
여기서부터 영화에서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클래팜 공동체 회원들이 모여 법안 통과를 위한 노력을 하는 장면들을 보여줍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변호사 제임스 스티븐은 이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선 외국 선박이 영국 식민지로 노예를 운송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제안합니다. 외국 선박의 노예 운송 비중이 70%를 넘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들은 또한 반대파가 눈치 못 채도록 다른 법안 속에 살짝 끼어 넣는 ‘지혜로운’ 방법을 택합니다.
실제로 윌버포스는 영국 노예 상인들이 외국 선박을 이용해 노예 운송을 하던 현실을 고려해, 1805년 해외 노예무역 금지 법안을 제안해 통과시켰습니다.
#12. 노예무역 폐지 법안의 통과(1807년)
이 법안의 통과로 서인도 제도의 노예무역은 큰 차질이 생기고 노예무역 지지 세력의 돈줄이 상당히 차단된 상황 속에서, 1807년 2월 23일, 윌버포스가 노예무역 폐지 운동을 시작한지 20년 만에 노예무역 폐지 법안은 영국 의회를 통과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법안이 통과된 후 폭스가 일어나 윌버포스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는 것으로 막이 내립니다.
실제로 의사록을 보면, 법안이 통과된 후, 법무장관 로밀리가 일어나 유럽 대륙이 엄청난 나폴레옹과 윌버포스를 비교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면 자신이 흘린 피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힐 나폴레옹과는 달리 윌버포스는 오늘은 '수많은 동료 피조물들을 살린 후 단잠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연설을 하였고, 하원에서는 큰 박수와 함께 세 차례에 걸쳐 만세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윌버포스는 감격에 겨워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계속 울었다고 합니다. 이는 영국 의회 역사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노예무역 폐지 운동의 의의
17-18세기 동안 노예무역에서 영국이 얻는 이익은 상상을 초월하였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닐 퍼거슨이 계산한 것처럼, 적게 잡아 300만 명이 영국선박으로 이송되었고 이를 지금 영국이 배상해야 한다고 가정하면 추정상 배상금은 거의 260조 달러에 달합니다.
이 엄청난 이익에 취하여서 노예무역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던 영국인들이, 이 국가 기간사업을 도덕적인 혐오감 때문에 포기하고 그에 못지않은 액수를 노예무역 폐지의 유지를 위해 쓰게 된 것은 역사상 유래가 없는 변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헌신 되었을 때, 대서양을 아우르는 거대 자본의 글로벌 카르텔이었으며, 몇 백 년에 걸쳐 이미 영국 사회에 뿌리내린 제도였고,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기간산업이었던 철옹성 같은 노예무역 제도가 없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윌버포스와 복음주의자들이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던 어떤 드라마보다도 드라마틱한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가 한국 교회를 깨워, 사회 곳곳에서 한국의 윌버포스를 일으키는 일에 사용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 사진에 관하여
이 글에 있는 사진 중 (*) 표시가 있는 것은 영화 의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다운로드가 가능한 사진을 사용하였으며, 나머지 사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제가 구입한 정품 DVD에서 캡쳐 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