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습은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얼굴이다.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 그의 기념관에서 그리고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그는 불같은 청년이었던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심장을 가졌던 참 애국자였다. 조금 말을 부드럽게 한다면 냉철한 머리에 뜨거운 가슴을 지녔던 (당시) 대한제국의 몇 안되는 선구자였다.
군복무 시절 책으로 만난 안중근 의사
군대라는 말을 꺼내니 벌써 오랜시간이 지났고 어느덧 '역사'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이젠 괜찮을 듯 싶다.
군복무 시절, 혹한기 훈련때 전차바퀴에 왼쪽 다리가 닿아 깊은 상처로 인해 국군덕정병원에 약 2주일 간 후송을 가서 치료를 받고 있을 때였다. 군병원이라는 것이 계급이 높으면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지만 이등병들에게는 그러잖아도 며느리같은 마음이 더욱 커지는 곳인데 나는 그 때 전역을 슬슬 준비하던 때라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병동을 두리번 거리다가 만난 짙은 아이보리의 큰 책, 그 책의 제목은 약간 자극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하얼빈 역의 모습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행했던 중국 하얼빈역. 얼마전에 의거현장이 점점 사라져가고 안 의사가 총을 쏜 지점은 어느새 장사꾼들이 모여 장사를 해서 잘 보이지가 않고 얇은 빨간 줄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정도 뿐이라는 뉴스기사를 접했다. 오늘날 이 곳에서 안 의사의 의거현장을 복원한다던지 기념비를 세운다든지 그러한 작업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일단 우리의 땅이 아닌데다 이웃나라인 일본이 가만히 있을리도 만무하고 중국 측에서도 단순한 문제로 생각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은 데 그럼에도 그 뉴스의 기사를 보고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그렇게 안 의사가 해냈던 의거의 현장이 사라져가고 있음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역사는 냉엄하고 현실은 차가운 법. 정부에서도 생각이 없지는 않을 텐데 아무튼 슬기로운 대처를 촉구해 본다.
안중근 의사의 의연했던 마지막 순간과 책에 대한 애착
2008년이 된 올해에 각종 신문이나 방송들은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 두 가지 쟁점을 들어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첫 번째는 현재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되찾아 고국으로 가지고 올 수 있는지를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순간 즉 사형시의 몇 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듯 하다.
현재 중국 뤼순(旅順)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이 다시 시작되었고 이 작업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새로운 유해 매장 추정지를 찾아내지 못하는 한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시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안 의사의 유언이기도 했다. 그는 죽기 전에 "내가 죽거든 하얼빈 공원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조국 땅에 반장(返葬)해다오." 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광복이 된지 60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 그 유해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동안 북한에서 먼저 유해발굴에 나섰지만 찾지 못했고,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단독으로 중국 당국의 협조를 얻어 과학적으로 유해발굴에 나선다고 하는데 이번 기회에 유해가 고국으로 꼭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안 의사의 마지막까지 의연했던 순간은 이미 언론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는 독실한 카톨릭신자였는데(세례명은 '도마'였다.) 죽기 전 당시 3월 25일이 부활절임을 감안 그 날 죽게 해달라고 사법당국에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예수님이 부활한 것과 같이 자신도 비록 지금은 죽지만 혼은 남아 나라를 끝까지 지키고 싶은 의지를 드러내고자 한 대목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부탁했던 부활절 다음 날짜에 순국했다.
죽기 전에는 유언을 남기거나 마지막으로 말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순서가 있다. 이는 지금도 사형집행시에 이루어지는 관례이다. 마음 속에 있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있었을 텐데 안 의사의 마지막 유언은 뜻밖에도 못다 읽은 책을 마저 읽게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책에 대한 그의 애착이 대단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 책을 읽기 위해 5분간의 시간을 부탁했고 결국 그 못다 읽은 책을 모두 읽은 후 삶을 마쳤다. 그가 그토록 끝까지 읽고자 했던 책은 무엇이었을까? 그 책의 제목을 모르지만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혹시 조금 옛날에 등장했던 공익광고에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아니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라는 문구가 인용되었는데 알고 있는 대로 그 말은 안중근 의사가 했던 유명한 어록에서 인용된 것이다.
안 의사는 우리 한국인의 한 켠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혼은 지금도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려운 시절에 그의 정신이 다시금 빛을 발하고 있고, 광복절을 비롯해 그의 의거일과 순국일 그리고 탄생일에도 꾸준히 그의 마음과 빛과 같은 정신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많다. 2005년이었던가. 서세원 감독이 '도마 안중근'이라는 영화를 국내에 개봉해 화제를 일으켰고(나도 이 영화를 봤다. 유오성의 표정연기가 돋보였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는데 안중근 그 자체의 브랜드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책들이 그를 기록하고 있으며 곧 연극으로도 안 의사를 표현한다고 하니 그는 변함없이 한국인의 가슴에 남아있을 것 같다. 예술작품을 통해 만나는 그의 혼이 길이길이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길 기대하면서..
한 때 그는 '테러리스트'로 매도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를 테러리스트로만 국한하기에는 너무도 그의 숭고한 뜻과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심적인 일본인들 가운데 안중근에 대한 진정한 평가를 기원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이들에게 안 의사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는 단순히 자신의 나라를 구하고자 뛰어들었던 독립운동가를 넘어 당시의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동양의 평화를 부르짖었던 정치사상가였던 점'을 설명해 주고 싶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미화해서도 안되고 그의 메세지와 의기를 객관적으로 전달해 주면 될 것이다.
자, 글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아무튼 끝까지 나라사랑 뿐이었던 안중근 의사의 넋을 다시 기려보며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지금도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 뒷 면에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을 잘라 피로 맹세하고 찍은 안 의사의 손가락이 형상화된 스티커를 단 장면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해진다. 조국의 국권회복과(당시에는 아직 한일합방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자주독립을 넘어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희망했던 대한국인 안중근 의사. 그의 뜨거운 나라사랑의 마음이 오래오래 우리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흐르고 또 흐르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