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 가든, 에쿠니 가오리
정말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서 집어든 책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이면서 '김난주'의 번역이고,
출판사는 '소담출판사'..
언제나 늘 에쿠니 가오리씨의 책은 소담출판사의 김난주씨의 것이어야 했다.. ㅎㅎㅎㅎㅎ
일설하고..
책표지에 쓰여진 소설의 부연설명이 맘에 와 닿았다..
- 여분의 것, 하찮은 것, 별 도움이 안되는 것.
그런 것들로만 구성된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사사로이 넘겨버리는 것들..
사소하게 '수다'라는 이름으로 흩어져버린 언어들..
그런 것들을 결코 사소하지 않게 다뤘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 '사소함'이 사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홀리가든을 읽는 동안 우리 영화 '오, 수정!'이 생각났었다..
음...
엄밀히 말하면 '그가 말하는 관점(He said)'과 '그녀가 말하는 관점(She said)'이 너무나 확연하게 달랐던, 그래서 연애에 있어서 혹은 일에 있어서의 여자와 남자의 미묘한 시각적 관점적 차이를 다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 소설이 그렇다..
절친한 친구였던, 하지만 지금은 소원해진 가호와 시즈에..
그녀들의 관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오래전 지독한 사랑과 이별을 겪고 그 시간들을 비스킷 깡통 속에 넣어
장롱 위쪽 구석에 고이 보관(?)하며 살고 있는 가호는..
안경점에서 일을 하며 고양이를 키우고 홍차를 좋아하며,
5년전의 지독한 이별 이후 이렇다할 연애는 하지 않고
그냥저냥 '여자친구'들을 불러 저녁을 먹고 목욕을 하는 것으로 소일(?)하는
혼자 사는 20대 여성이다..
가호와는 아주 절친한 친구였으며 냉소적이고 이성적이라 여기기에
직언을 서슴치 않는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 시즈에는..
40대의 유부남 세리자와의 조언에 따라 금연을 계획하고 운동을 하고
단백질과 비타민을 섭취하는 (가호처럼) 혼자 사는 20대 여성이다..
이 둘이 엮어가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연애에 관한 이야기들..
아니, 조금은 사소한듯 보이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상에 관한 이야기들..
두 친구.. 서로의 관점이 너무 다르다..
사랑을 잃은 기억으로 사랑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해서, 그래서 복수하는 마음으로 이남자 저남자를 만난다고 가호를 오해하는 시즈에..
하지만 가호는 다만 소유하지 않을 뿐인거다..
한번 소유하지 않으면 잃어버릴 위험이 없는 거니까...
유부남 애인이지만 그 애인을 만나고 돌아와 가호를 만나면 왠지모를 미안함과 더불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시즈에..
하지만 가호는 그런 시즈에가 안스럽고 위태로워보인다..
애인을 만나고 그 애인을 두고 홀로 돌아오는 시즈에는 상실감에 허탈해 보이고 뭔가 부족한 듯 보인다..
그러니 시즈에가 '자랑'이라 여기는 연애담을 조용히 들어준다..
두 여자는 늘 위태롭다..
만나기만 하면 읽고 있는 내가 불안할 정도니까.. (소설인데도 말이지..)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두 사람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아직까지 (위태로운데도 말이지) 그간의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
특이할 점은..
반전아닌 반전이 등장한다는 것... ㅎㅎㅎㅎㅎ
어쩜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나 홀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 있겠지만
소설 말미에 가호의 옛사랑(쓰쿠이)에 대한 작은 부연 설명에서 무심히 넘겨버리면 절대 알아 챌수 없는 쓰쿠이의 비밀(?)이 살짝 나온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고....
책장 덮고서 나 혼자만 왜 몰랐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었다는... ^^
여전히 바스락거리고 매마르고 건조한,
그래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용히 차분하게 가라앉게 만드는,
비오는 날(오늘처럼) 읽으면 참 좋을 책,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홀리 가든'도 여느 '에쿠니 가오리 표 소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p. 26
코트를 입고 밖으로 나서자, 손도 발도 자기 것이 아닌 기분이 들었다.
술집 유리문에 온몸이 비친다. 고독이 옷을 입고 걸어가는 듯하다.
환한 낮 특유의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가호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보았다.
p. 32
가호는 주말에도 출근을 하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한 후로 낮에는 좀처럼 사람을 만날 수 없는데, 그래도 꼭 낮에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었다.
그 점에 대해서 가호와 시즈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낮의 기억을 많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어른이 되면 낮은 보통 일하는 시간이다.
어른이 되어 만난 친구는 무수한 밤을 함께 보내며 친해진다.
p. 104
시즈에는 세리자와와 나란히 미관지구라는 별칭이 있는 아름다운 동네를 걸으면서, 언젠가 이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 있어도 이 풍경을 추억으로 삼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기억은 장난감 블록과 비슷하다. 언뜻 보면 색깔도 알록달록 서로 다르고 모양도 다르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편리하게 기획되어 있는 것이다.
가호처럼 기억의 블록을 무수히 쌓아 올려 그 안에 틀어박히고 싶지는 않았다. 현실을 사는 세리자와만을 사랑하고 지금의 세리자와하고만 살고 싶다.
p. 177
시간은 저렇게 무정하게 흘러가면서, 어떤 곳에서는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척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아주 흐름을 멈춘 척한다.
그래서 모두들 혼란스러워하는 것이라고 시즈에는 생각한다.
물론 약한 사람만이 겪는 그런 혼란 때문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고 화가 나지만, 그 사실과 사진에서 눈길을 돌린 자신이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p. 339
가호는 나카노를 소유한 기억이 없었다.
한번 소유한 것은 잃어버릴 위험이 있지만(가호는 그것을 몸으로 배웠다), 소유하지 않은 것은 잃어버릴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살았는데, 아무튼 지금 나카노를 잃을 리 없다고 온갖 근거를 끌어 모아가며 가호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