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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예술도 예술인가? : 키취와 예술(fine-arts)에 대하여

전혜림 |2008.04.03 09:58
조회 137 |추천 0

나쁜 예술도 예술인가? : 키취와 예술(fine-arts)에 대하여

 

미술계의 악동 제프 쿤스는 앤디 워홀과 비슷하게 대중적 도상을 차용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워홀과 달리 쿤스에게는 &#-9;팝&#-9;(pop)보다는 &#-9;키취&#-9;(Kitsch)라는 용어가 더 자주 부여된다. 그가 저급하고 질 낮은 상품이미지를 줄곧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쿤스의 대표작 중에는 그와 그의 전처 치치올리나의 실제 정사장면을 조각과 사진으로 재현한「Made in Heaven」시리즈가 있다. 가장 개방적인 관객들조차도 이 작품 앞에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것은 포르노배우인 치치올리나의 숱한 포르노들 중 일부로 봐야하는 걸까, 아니면 포르노를 내용과 형식면에서 차용한 쿤스의 &#-9;예술&#-9;로 봐야하는 걸까? 이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Jeff Koons, Dirty - Jeff on top, 1991]


"포르노와 포르노의 형식을 취한 예술작품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하는 질문은 좀 더 큰 질문, "키취와 키취의 형식을 취한 예술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로 확장된다. 우리식으로 말해 키취는 &#-9;이발소그림&#-9;이라고 부르는 삼류 예술이다. 가령 밀레의 <만종> 복사판이나 여러 마리의 새끼돼지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어미돼지 옆에 &#-9;가화만사성&#-9;이란 글씨가 쓰여 있는 그림, 혹은 눈덮힌 산이 저녁놀에 반짝이고 언덕에 진달래와 복사꽃이 만발한 풍경화 같은 것들이 전형적인 한국적 키취회화다. 이런 그림들은 이발소 같은 대중적 공간을 그에 걸맞는 싸구려그림으로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이런 그림들에는 그야말로 &#-9;보통사람&#-9;의 욕망이라 할 것이 반영된다. 판에 박힌 감상적인 소재들을 특유의 번지르르하고 치졸한 색채로 재현함으로써 하향평준화된 일반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9;나쁜&#-9; 예술, 그것이 바로 키취다.

그렇다면 진정한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직 시장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키취일 수 없다. 우리가 알기로 예술(fine-arts)이란 미와 같은 숭고한 목표를 향한 작업이다. 그렇기에 이제껏 예술은 키취와 갈등과 대립을 겪어왔다. 그런데 1960년대 팝아트의 등장이후 대중적 도상들이 예술적 소재로 활용되는 것은 포스트모던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졌고, 최근에는 키취를 작품에 적극 도입하는 예술가들이 늘고 있다. 모던한 엘리트주의를 탈피하여 고급과 저급, 엘리트와 대중의 이항대립을 붕괴한 포스트모던예술은 TV와 광고, 상품디자인의 이미지를 대거 등장시킨다. 워홀의 「브릴로 박스」를 보라. 속에 비누가 들어 있지 않을 뿐이지「브릴로 박스」는 가정용 세제 &#-9;브릴로 박스&#-9;와 외관상 식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다.

 

 

 

 


[Andy Warhol, Brillo Box, 1964]
예술이 일상과 구별되지 않을 때, 예술이 고유한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그것이 예술일 수 있을까? 어떤 철학자는 "예술이 죽었다"고 말한다. 이때 예술이란 르네상스이래 형성된 미를 추구하는 활동이라는 개념이다. 오늘날 예술은 더 이상 순수하지도 않고, 숭고한 이념을 구현하지도 않는다. 대신 예술은 비평이나 이론과 비슷한 것이 되었다. 수퍼마켓 대신 미술관에 놓인 상표와 커버디자인은 그 일상적 기능을 수행하는 맥락에서 탈각되어 반성적 거리를 갖게 된다. 말하자면 포르노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쿤스의 키취아트는 키취문화가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는 현대문명에 대한 반성인 셈이다. 그러나 예술사와 예술이론의 맥락을 모르는 일반관객은 쿤스의 작품 앞에서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것이 예술인가, 아니면 플레이보이 이미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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