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란 단어가 있다.
난 중학교에 다닐 무렵까지
세계란 휴대전화의 전파가 도달하는 곳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별의 목소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2002년 당시 알려진바가 거의 없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다니던 게임 회사를 때려치우고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되죠.
유래야 찾아보면 있을수도 있겠지만
'전례없는 1인제작 애니메이션'이 별의 목소리와 신카이 마코토 감독에게 붙는 타이틀입니다.
별의 목소리는 음악을 제외한 모든 부분의 제작을 신카이 마코토 감독 혼자 도맡아 완성된 작품.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테죠. 이제는.
이런 체제는 감독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체제이지만, 그 감독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얼마든지 졸작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대부분의 작품들은 자기세계에 빠져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사이코 영화'가 되고 말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공감하래야 도저히 할 수 없게 만드는 영화들을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무엇인가를 창작할 때의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만 인정하는 스스로의 성취에 도취되어 버리는것이죠.
하지만 별의 목소리는 달랐습니다.
겨우겨우 상영을 결정해준 소극장은 입소문에 힘입어 관객들이 몰리는 바람에 장기 상영을 맞는 대박을 맞았고, DVD는 25분이라는, DVD로 제작되기에는 약간 짧지 않나 싶은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발매 당일 1만장이 팔리고 해외로도 수출이 훨훨 됐다고 하니 대박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죠.
하지만 왜?
별의 목소리는,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것이 갖춰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저는 최근 우리 나라에서 만든 원더풀 데이즈를 끝까지 보고 난 뒤
뭐랄까,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원더풀 데이즈는 가히 한국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화면을 스크린에 그려냈고
그 작화의 완성도 또한
신카이 감독 한명이 만들어낸 별의 목소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하며, 그 점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스토리의 완성도를 문제로 들고 있습니다.
별의 목소리에는 로봇이 등장합니다.
메카닉물로도 볼 수 있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소년과 소녀.
사람이죠.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날 몰랐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 SF적인 요소를 사용했었다."
영화에는 수많은 장르가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 중심에는 사람이 서있고, 영화를 보는 이 또한 사람이 아닌가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 기억되는 영화는
사람들의 감성을 움직이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기술이 발달하여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화로 아직도
찰리 채플린의 대사 하나없는 흑백 무성영화가 꼽히고 있는 것은 결국
영화에 있어 특수효과란 것은 사람과 영화를 이어주는 교두보일뿐이라는 것.
그 감성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별의 목소리에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에 중요한 영화적 장치가 등장합니다.
바로 휴대폰 문자메시지죠.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정도의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미카코와 노보루, 둘은 평범한 중학생으로서의 일상을 즐기지만 그것도 잠시, 미카코가 타르시안이라는 외계생물들을 추적하는 함대에 일종의 '군인'으로 선발됨으로써 둘은 우주와 지상으로 갈라지고 둘은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 받습니다.
하지만 타르시안 추적이 가속화될수록, 노보루와 미카코는 빛의 속도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만큼 떨어지게 되고, 그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되죠.
그들에게 당연했던 일상의 즐거움들은 아련한 것들이 되고
서로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메시지가 전돨되는 시간도 길어지게 됩니다.
"20세기의 국제편지 같은거지."
메시지가 전달되는 시간이 6개월로 늘어나버린다는 미카코의 메시지를 본 노보루는
그렇게 생각하자고 마음먹죠.
서로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 문자 메시지...
그것마저 놓아버리면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지만 둘의 거리는 계속 멀어지고..
(건물 옥상에 앉아 문자메시지를 기다리는 노보루의 모습은 이전에도 나오는데
[위로 다섯번 째 캡쳐사진 참고] 노보루는 같은 장소에 같은 모습으로 앉아있지만
계절은 달라져있습니다. 노보루의 기다림을 이렇게 표현하는거죠.)
결국 노보루는
어느 순간부터 미카코의 메시지를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이것이 약 중후반부까지의 이야기.
휴대폰이라는 기계로 주고 받는 문자 메시지는 자칫하면
주고받기 쉬운 현대문명의 상징처럼, 가벼운 것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별의 목소리 이야기 속에 스며든 문자메시지는,
둘의 어긋난 시간 속에 존재하는 문자메시지는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도저히 닿지 않는 곳에 떠있는 구름처럼
서로를 확인하면서도 더 이상은 옛날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에
서로를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기다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더 없이 가슴아픕니다.
군데군데 흠집이 난 휴대폰.
저렇게 낡도록 휴대폰을 버리지 못하게 만든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문자메시지라는 영화적 장치는
오케스트라의 협주처럼 이야기 속에 너무나도 잘 스며듭니다.
슬픔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만을 나열하기만 하고는
"어때 슬프지? 울어! 울란 말이야."
라고 외치며 강요하는 기타 영화와는 확연히 다르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영상에 대해 굉장한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의 정점으로 이끌어내죠.
영화는 어쩔 수 없이 현실의 것을 찍어내야 하지만
(요즘은 CG가 발달해서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요. 어쨋든 그것들은 영상을 '실사'처럼 보이게 도와주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실사'라는 전제하에서 일어나는 것들에는 제약이 있기마련이죠. 상상력을 표현하는데에 있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애니메이션은 그렇지 않습니다.
화면 안에 무엇을 그려내든 그것은 만드는 이의 자유,
만드는 이의 상상력은 그대로 스크린 위에 그려집니다.
'빛의 마술사' , 신카이 감독의 역량은 그래서 더욱 돋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카이 감독이 영상에만 치중했다면 '원더풀 데이즈'와 같은 전철을 밟을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원더풀 데이즈를 자꾸 안좋은 예로 들어서 죄송하지만, 원더풀 데이즈의 스토리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이 부분만 고쳤다면 충분히 훌륭한 애니메이션이 될 수 있었을 거라는 뜻으로 이해해주시길.)
하지만 신카이 감독은 영상 못지 않게 그 영상이 그려내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도 상당한 비중을 둡니다.
많은 사람들이 별의 목소리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영상뿐만 아니라,
그 영상속에 존재하는 등장인물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요.
리고 또 하나,
'영화의 절반은 음악이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
신카이 감독은 일전에 저런 말을 했습니다.
혹자는 '시네마 천국에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울릴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같은 영상이라도 거기에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느냐에 따라
그 영상에 대해 갖게 되는 느낌은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신카이 감독은 그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별의 목소리부터 최신작 초속 5cm까지 '텐몬'이라는 음악감독과 함께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텐몬이라는 분에 대한 자료를 찾아볼 순 없었으나
그가 신카이 감독의 작품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는
작품을 직접 보면 알게 됩니다.
별의 목소리 마지막 장면에 이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는 것은 전 도저히 상상이 안됩니다.
저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가 나오기 전 그 예고편에 흐르는 바이올린의 선율만으로도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별의 목소리는 영상, 음악, 이야기라는 세 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원스'라는 영화의 성공이 시사해주는 점은 무엇일까요.
2002년, 어린 지금보다도 더 어렸던 그 때 별의 목소리를 보고난 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름을 알고 있는 감독은 별로 없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감독이 되버렸습니다.
5년만에 이만큼 명성을 쌓게 된 감독님.
그의 작품에 담긴 서정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까 생각해 봅니다.
[출처]카이 마코토의' 별의 목소리, 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작성자 케이모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