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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김형주 |2008.04.03 13:47
조회 55 |추천 1



"와이 낫"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지요, 나는 조심스럽게 당신의 옷을 벗겼습니다. 그러자 현실과 상상이 기적처럼 맞아 떨어져, 난 살아 있는 밀로의 비너스 상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당신 가슴의 진줏빛 광체가 당신의 얼굴을 환히 비추었습니다. 나는 오래오래 아무 말 없이, 부드러움과 힘을 지닌 기적 같은 당신 몸을 응시했습니다. 쾌락이라는건 상대에게서 가져오거나 상대에게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 덕에 알았습니다. 쾌락은 자신을 내어주면서 또 상대가 자신을 내어주게 만드는 것이더군요.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었습니다.


나는 결혼을 부르주아 계급의 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에서 연유하는 것이 만큼 가장 비사회적인 부분들을 통해 두 사람이 연결되는 것인데도, 그 관계를 사회화하고 법적으로 문서화하는 것이 결혼이라 생각했던 거지요, 법적인 관계란 두 사람의 체험이나 감정과는 하등 상관 없이 자율화하게 마련이고, 또 그런 자율화는 그런 관계가 지닌 소명이기도 합니다. 난 또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우리의 종신계약이 십 년이나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도 우리가 원하는 계약이 될지 그걸 누가 증명할 수 있겠소?"

 

당신의 대답은 도망칠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와 평생토록 맺어진다면, 그건 둘의 일생을 함께 거는 것이며, 그 결합을 갈라놓거나 훼방하는 일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거예요, 부부가 된다는 건 공동의 기획인 만큼, 두 사람은 그 기획을 끝없이 확인하고 적용하고, 또 변하는 상황에 맞추어 방향을 재조정해야 할 거예요. 우리가 함께할 것들이 우리를 만들어갈 거라고요"


그때 나는 알았습니다. 더 생각해볼 말미 따윈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을, 이대로 당신을 떠나보내면 영원히 후회할 것임을. 당신은 내가 몸과 마음 모두를 사랑할 수 있고 함께 있으면 깊은 공명을 느끼는 최초의 여자였습니다. 한마디로 당신은 나의 진정한 첫사랑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내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면, 나는 결코 세상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입밖에 낼 줄 몰랐던 말들을 나는 찾아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함께했으면 한다는 마음을 당신에게 전할 수 있는 말들을.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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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납게 울고 매정하게 내리쳐 선명하게 칼자욱이 남아도

보듬어 감싸 안으면 부드러운 기운 온몸 휘감아...

다만 그것으로 충분, 쉼 없이 쉼 없이 귀히 여기라.


영원을 사는 이들과의 포옹, 가슴에 지문처럼 박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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