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인천여성영화제에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함께 장애여성의 性과 사랑을 주제로 을, 이주여성쉼터와 함께 진행했다. 특별전이라고 해서 별건 아니고, 장애여성이, 이주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를 상영하고 특별히 장애여성과 이주여성들을 영화관에 초대해 영화관람 후 잡담회를 가지는 정도였다.
처음 해보는 일인지라 어떻게 진행될지 가늠도 되지 않았고, 그래서 여기저기 구멍도 많이 나고 어설프기도 했지만, 무척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작년의 기분좋은 경험을 토대로, 올해는 다종다양한 특별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있는 영화제'를 추진하고 있다. 여성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영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영화제를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장애여성, 이주여성, 노인여성, 성폭력피해여성, 가족, 연애와 sex, 청소년이반, 여성노동, 또 뭐가 있더라... ㅡㅡ;;
아무튼 우리 영화제가 시대를 선도하는 선구자같은 역할을 하거나 혹은 큰 규모로 영화계 혹은 문화예술계에 여성문화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만큼 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그럴 욕심도 없다. 다만 지역여성영화제인 만큼 관객과 더욱 밀착하는 영화제를 만들어보고픈 욕심은 자꾸 커진다.
영화에 문외한인 사람도, 아니, 극장나들이 해본 지 40~50년 된 할머니들도, 아예 극장나들이가 처음인 사람도, 영화제를 핑계삼아 집 밖으로 나와 자신과 다른 처지, 혹은 비슷한 처지의 자매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야기가 있는, 수다가 있는 특별전을 중심으로 영화제를 고민하다 보니 상영작 선정이 더 어려워졌다. 잘나가는 서울여성영화제에서 귀동냥 눈동냥해서 채워넣는 것으로는 관객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더 부지런히 발로 뛰어야 하는데, 객관 상황이 별로 따라주지 않는다.
어찌됐든 프로그래밍을 핑계삼아 봄에 왕창 열리는 영화제를 두루 섭렵할 요량이었는데, 2008인디다큐페스티발은 유야무야 놓쳐버리고 말았다.
도무지 짬이 나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무엇보다도 구상 중인 다종다양한 특별전에 어울릴 법한 영화들이 눈에 띄지 않아서였다. 역시 요구가 절실하지 않으니 몸도 무거워졌던 게다.
작년엔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꽤 많이 건졌는데, 아쉽다. 덕분에 올해 영화제 상영작 중 다큐멘터리가 많이 줄 것 같다. 다행인가? 글치... 작년은 너무 다큐에 편중된 경향이 있었지. ^^;;
아무튼 장애인인권영화제마저 놓치면 올해 프로그래밍에 차질이 많을 것 같아, 여기저기서 욕먹을 각오를 하고 시간을 짜내서 명동까지 먼 행차를 했다. 그러나 첫째날엔 주차와 약속 등 여러 가지가 꼬이고 꼬여서 초단편 2편밖에 못 보고 돌아와야 했다. 그나마 둘째날 늦은 오후부터 밤 늦게까지 내리 네 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다행히도 모두 괜찮은 영화들이었다. 올해 장애여성특별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대략의 윤곽이 잡히는 것 같기도 하고, 뿌듯했다.
작년 장애여성특별전에서 '장애여성의 性과 사랑'에 대해 장애여성들과 함께 잡담회를 했는데, 올해는 아무래도 장애여성의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
날 닮아 기분좋은 우리 아이들 (2006)
기획·제작·감독 : 김선영 / DV6mm, color, 다큐 13분 8초
장애인엄마라고 특별할 것 없다니까!
4일 오후 6시가 개막식이었지만, 개막식 전에도 영화는 상영됐다. 지난 영화제 다시보기였다. 우리 영화제가 최신작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볼 만한 게 있을까 두리번거리다 선택한 영화.
영화 첫 장면에서 감독이자 주인공인 김선영씨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함박 웃음이 피어올랐다. 아, 저 얼굴, 낯익은 걸!
그랬다. 김선영씨는 작년 상영작이었던 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장애여성이었다. 두 작품 모두 경남장애여성연대에서 제작한 것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마치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듯 반가움이 앞선다.
지난 영화에서 장애여성의 연애와 섹스, 결혼에 대해 털털하게 이야기하던 선영씨, 이 영화에서는 그 결과로 태어난 두 아이에 대해,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에 일상에 대해 털어놓는다. 아침마다 아이들 등교준비와 출근준비로 전쟁을 치르고, 장애 때문에 하지 못했던 공부를 하기 위해 칭얼거리는 막내를 품에 안고 사이버강좌를 듣는 그녀의 일상은 사실 특별할 것이 없다.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15분도 채 안 되는 짤막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선영씨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쩌면, 장애인엄마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불편하게 했던 것은 특별할 것 없는 그녀의 일상을,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색안경을 끼고 쳐다보는 시선이었는지도.
사실, 장애여성운동단체에서 상근하는 활동가이기도 한 선영씨의 일상은 비장애 기혼여성보다 오히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기까지 하다. 그녀의 밝고 힘찬 기운을 가져다 내 주변 비장애 기혼 언니들에게 나눠주고 싶을 정도다.
한부모이고 장애여성이고, 세상이 색안경 끼고 쯧쯧 혀를 차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엄마로서 여성으로서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는 선영씨의 일상을 통해 같은 여성으로서 기분좋은 자매애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노을소리 (2001)
감독 : 홍두현 / 35mm, color, 극 18분
아찔한 영상이 빚어내는 노을소리
이 영화 역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역대 상영작 다시보기 중 하나. 아주 짤막한 단편 극영화인데, 화면이 장난 아니다. 눈부신 색감, 선명한 화면, 눈앞이 아찔하다.
이 영화의 화면이 눈부시게 느껴졌던 것은 어쩌면 청각장애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이 영화가 그려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소리는 없고 빛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이 떠올랐다. 일본에 살고 있는 청각장애 소녀가 클럽에 갔을 때, 시끄러운 클럽음악에 몸을 흔드는 사람들 사이에 홀로 섬처럼 서 있던 소녀, 순간 소음은 사라지고 어지러이 흔들리는 클럽의 사이키조명과 사람들의 몸짓만 보였다. 핸드헬드로 찍어서 빛의 노출이 심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소녀의 시점으로 보여진 이 짧은 장면은 내가 본 최고로 어지러운 화면이었다. 의 그 장면이 소리를 거세한 화면이 어지러움을 극대화시켰다면, 이 영화에서는 엄마가 외출한 사이 청각장애아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재개발지역의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그래서 난 이 영화를 소리의 영화이고, 빛의 영화라고 느꼈다. 하기에 이 영화가 굳이 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될 필요가 있었을까 의아함이 남았다. 장애인이 나온다고 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다는 건 좀 억지스럽지 않은가?
내 사랑 제제 (2008)
감독 : 박배일 / DV6mm, color, 다큐 70분
맞아, 연애는 정말 예쁜 거였지!
둘째날 다시 명동에 갔다. 첫날은 이래저래 사정이 꼬여서 단편 2편 보고 내려와야 했기에 이날만큼은 오후부터는 내리 극장에서 지내야지 다짐했다. 어차피 셋째날이자 마지막날인 6일은 상경이 불가능하므로 이날 뽕을 뽑아야 했다.
서둘러서 올라갔지만 첫 영화는 5시. 내 사랑 제제였다. 홈페이지를 훑어보면서 장애인 남녀의 연애이야기라고 해서 골랐다. 연애는 영화의 단골소재지만, 장애인의 연애를 다루면 꼭 칙칙해지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제목도 귀엽고, 시놉시스도 아기자기해서 좀 다르게 그리지 않을까 기대됐다.
그리고 영화는 정말 말 그대로 풋풋한 연애이야기를 풋풋하게 그리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지만 다큐멘터리같지 않은 뽀송뽀송한 느낌. 서른아홉 노총각 우영씨와 이십대 후반 제제의 연애를 지켜보는데 자꾸만 웃음이 났다. 맞아, 연애는 정말 예쁜 거였지! 연애랑 담쌓고 산 지 너무 오래돼서 잠시 까먹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물론, 부산과 양산에 살고 있는 지체장애인 두 남녀가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데이트에는 장애인이 세상 바깥에 나왔을 때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들,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에서 휠체어를 끌고 부산과 양산을 오가는 일이 얼마나 지독한 전쟁인지, 결혼을 두고 갈등할 때도 상대의 장애등급을 따져야 하는 현실 등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부딪혀야 하는 녹록치 않은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그 쉽지 않은 현실마저도 우영씨와 제제의 짧은 만큼 달콤한 연애 앞에서 힘을 잃는다. 이 영화는 연애, 사랑이 가진 에너지를 어떤 영화보다도 강력하게 보여주는 진짜 연애영화인 셈이다.
영상으로 전하는 스피크 아웃 잘있어요, 이젠 (2008)
기획·제작 : 장애여성공감 한국성폭력상담소 / 감독 : 반다 / DV6mm, color, 다큐 5분 49초
고통에 짓눌려 보낸 5분, 그 후…
은폐될 수밖에 없었던 성폭력 피해자들이 사회적 발언을 함으로써 치유를 도모하는 치료요법을 '스피크 아웃'이라고 한다. 은 공장 동료들로부터 약 2년간 수차례의 성폭력과 왕따를 당한 지적장애여성 성폭력 피해자 해바라기님의 치료과정, 즉 사회적 발언을 영상으로 엮은 것이다.
해바라기님은 가해자들을 고소했지만, 재판부는 지적장애여성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가해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해바라기님은 재판부를 향해, 이 사회를 향해 거짓말을 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 아저씨(가해자)라며 그들이 감옥에 갇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어눌한 말투의 피해자 육성증언은 치료과정에 그린 해바라기님의 그림과 함께 그 당시 해바라기님이 겪어야 했던,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또 한번 겪어야 했던 절망과 고통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1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영상이었지만, 5분이 한 시간 한나절처럼 길게 느껴질 정도로, 영상이 전해주는 고통은 깊었다. 영화가 끝난 뒤 감독과의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영화 보는 내내 묵직하게 느껴졌던 가슴의 통증이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작년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을 본 뒤 감독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이 감독에게 물었다. "한 오라기의 희망도 남겨놓지 않은 채 한 시간 내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듣게 한 것은 잔인한 것 아니냐?" 감독은 되물었다. "그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피해자 여성들은 상처를 끌어안고 평생을 살고 있는데, 한 시간 동안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쯤은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래, 기꺼이 경청해야 한다. 경청의 경험이 아무리 끔찍한들 피해자들의 경험만큼 끔찍하진 않다. 피해자들의 사회적 발언을 경청하는 것은 피해자들을 지지해주는 치료행위이자, 이 사회가 성폭력에 대해 예민한 감수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첫 월경 (2007)
기획·제작 : 장애여성공감 / 감독 : 이준애 / DV6mm, color, 드라마 7분 12초
나도 축하받고 싶었다고!
이 영화를 만든 이준애 감독은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이다. 영화가 끝난 뒤 감독과의 대화가 있었는데, 고작 두 가지의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이준애 감독의 답변은 한참이 걸려서야 한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진행자의 통역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사실 7분 남짓한 짤막한 꽁트같은 이 영화는 다소 어색한 배우들의 연기 때문에 피식피식 웃음이 나기까지 했는데, 감독과의 대화를 하면서 그 웃음은 숙연한 끄덕임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이 짤막한 꽁트를 만들기 위한 감독과 배우, 제작 스텝들의 사투가 눈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내가 피식거리며 웃은 장면은 한 지체장애여성의 첫 월경을 두고 비장애인인 엄마와 언니가 너무나 노골적으로 불편한 반응을 보였을 때였다. 내게 가족들의 뜨악한 반응은 너무 과장되게 느껴졌다. 그래서 감독과의 대화 때 이준애 감독에게 물었다. "가족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좀 심해 보인다. 과장되게 표현한 거냐?" 그러나 감독의 대답은 내 예상과 달랐다. 이 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은 감독이 이끄는 장애인 연극반 반원들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단다.
아, 내가 가진 견고한 비장애인 중심의 사고방식이 내게서 웃음이 나게 했구나. 월경을 시작하면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이런, 저 몸으로 가임여성이 되다니, 쯧쯧" 이런 반응부터 보아야 하는 게 장애여성들의 현실이었구나. 비장애인 중심의 사고를 떨쳐내기에 아직 한참 멀었다. 쯧쯧.
진옥언니, 학교 가다 (Jin-Ok Sister Go To The School, 2007)
감독 : 김진열 / DV6mm, color, 다큐 52분
진옥언니, 아자아자 화이팅!
이번 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가장 큰 기대를 가지고 본 영화다. 김진열 감독은 1회 인천여성영화제 상영작이었던 로 이미 일면식이 있던 데다가 몇 주 전 영상워크샵 관련 상의를 하느라 직접 만나보기도 했던 나와는 동갑내기인 감독이다. 전작들이 말해주듯 감독은 여성들의 생애사를 영상에 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리고 그 방면에 꽤 능력이 있는 듯하다. 비록 김진열 감독의 작품은 밖에 본 적이 없어서 섣부른 판단일까 했는데, 이번 영화를 보고 확신했다. 다큐를, 여성들의 일상을 이렇게 맛깔나게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은 어쩌면 타고 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진열 감독은 이미 로 진옥언니가 결혼하기 전부터 진옥언니와 카메라로 인연을 맺어온 사이였다. 제목을 얼핏 보고는 장애여성이 학교에 진학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착각하게 했던 는 전작에서 결혼한 김진옥씨가 결혼 후 아이를 출산하고 그 아이가 자라 학교에 들어가면서 학부모가 된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그렇다고 장애인 엄마의 학부형 되기에만 초점을 맞춘 다큐는 아니다. 끼 많고 활동력 왕성하던 한 여성이 결혼과 출산, 육아로 사회와 단절된 채 완전 아줌마가 돼 가는 모습, 그런 와중에 생기는 부부간의 갈등, 그리고 사회활동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진옥언니의 재기발랄한 성격만큼이나 재치 넘치는 화면으로 담겨 있다.
참 재미있는 것 하나. 결혼할 무렵 진옥언니는 정말 예뻤다. 얼굴에서 빛이 났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지난 후 남편과 신발가게 노점을 하며 아이키우기에 전념하는 아줌마가 된 진옥언니에게서는 그 시절의 빛을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다큐의 말미, 다시 장애인단체 활동을 시작하려 이것저것 배우고 시도하는 진옥언니의 얼굴에는 예전의 그 광채가, 아니 젊은시절부터 더 환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함께 이 영화를 본 친구도 동의하는 걸 보면 나만 느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장애여성이라는 특수한 조건을 가진 여성의 육아이야기라기보다는 결혼과 출산, 육아로 사회생활의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싶은 친구들, 언니들의 얼굴이 떠올라 빙그레 웃음이 난다.
여름비 (Summer Rain, 2007)
감독 : 엄세윤 / DV6mm, color, 극영화 26분 40초
한바탕 쏟아지고 지나가는 사랑과 이별
꽤 만듦새 있는 극영화다. 여름비, 집, 담배연기 등 다양한 이미지들이 의미를 품고 얼기설기 이야기를 엮어가는 품새가 꽤 근사하다. 지적장애인 소년 대우, 역시 지적장애인 소녀 영희, 치매노인여성 복실, 그리고 그들 뒤치다꺼리하느라 한숨 가실 날 없어 보이는 엄마, 이렇게 네 사람만의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대사, 주고받는 눈빛, 사소한 행동들은 마치 시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전날 본 와 마찬가지로 왜 이 영화가 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있는지는 도통 모르겠다. 장애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은 시적인 영상언어를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영화를 베스트극장 같은 텔레비전 단막극장으로 만났다면 훨씬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것 역시 나의 좁아터진 편견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장애인을 수단으로 사용한 영화를 보기는 참 불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