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이민우의 솔직한 이야기

배지은 |2008.04.14 12:04
조회 237 |추천 6


중2때부터 춤에 빠져, 평생 직업 될줄이야~
나의 데뷔기 드라마로 만들어도 될 걸요?… 10주년 공연때 찡한 감동, 난 행복한 사람^^
누구에게나 시작은 미약하다. 하지만 누구나 마지막을 창대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그룹 신화의 이민우는 '독종'이다. 무언가 빠져들면 꼭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려는 욕구가 강하다. 남들과의 경쟁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5세부터 춤을 췄고, 청소년기를 보냈던 전북 남원과 전주에서는 소문난 춤꾼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갖은 고생 끝에 연예계에 데뷔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민우는 6명의 신화 멤버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축은 아니었다. 그러나 묵묵하게 춤에, 그리고 작곡에 빠져들었다. 최근에는 공연 기획에 재능을 보이고 있다. 멤버 중에 처음으로 '엠라이징'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또 다른 꿈을 시험대에 올려 놨다.

이민우는 아직도 폭주기관차 같은 열정으로 부단하게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이민우와 소주잔을 앞에 두고 이민우의 터프한 매력에 폭 빠진 여기자(이재원기자ㆍ이하 이)와 이민우의 재테크 노하우에 귀를 종긋 세운 남기자(김성한기자ㆍ이하 김)이 함께 한 것은 지금까지의 성과 때문이 아니었다. 앞으로 펼쳐질 이민우의 꿈 때문이었다.

무대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이 남자의 사는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나눠봤다.

# 순익만 9억 냈어요▲ 신화 10주년 콘서트를 마치고 2주일이 지났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이)=병원에서 지냈어요. 3월 초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어요. 10주년 콘서트 준비도 준비였지만 제 앨범 발표도 있었죠. 몸살 기운도 있고 계속 피로가 쌓였어요. 공연이 끝나고 바로 다음날 몸이 못 이겨내더군요. 긴장이 풀렸던 거죠.

▲ 지금은 괜찮은 거죠.(김)=(박)명수형 결혼식에는 링거를 뽑자마자 갔죠. 퇴원한지는 3일됐어요. 괜찮을 것 같은데,마셔봐야죠.(웃음) 여기는 (홍)경인이 형이 하는 포장마차에요. 여기서 (류)승범이하고 친구가 됐죠. 혜성이나 동완이하고 도 가끔 와요.

▲ 술이 굉장히 셌던 걸로 기억해요.(이)=즐기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거짓말 같다고 하자) 술자리의 끝까지는 남는 것 같아요. 남들 챙기기 위해서라고나 할까,하하.

▲ 직접 회사를 운영해 보니 어떤가요. 소속 가수일 때와는 또 다르죠?(김)=1년 정도 됐네요. 이제야 감이 오는 것 같아요. '왜 예전에 제작자들이 그랬었나' 이해하기도 하죠. 예산을 적게 들이고 효율을 높여야 하는데 전 가수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음악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따져보기도 하고 '제2의 이민우'가 될 만한 사람도 찾아서 양성해보고 싶기도 하죠. 그게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니까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 어려울 때는 없나요.(김)=왜 없겠어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을 때도 많아요. 지출을 일일이 신경 쓰고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니까요. 부가가치세, 소득세, 따지다 보면 절세하는 법도 배워요. 얼마 전에는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현금영수증 신청해서 어딜 가든 가지고 다녀요. 지출 근거가 있어야 하니까요. 스트레스가 많다는 얘기죠. 음악만 하는 게 아니니까. 전 창작에 무게를 두고 경영이나 다른 쪽 일을 맡아서 해줄 정예멤버를 갖춰나가고 있어요.

▲ 와, 국세청에 현금영수증 신청하는 것도 알고, 대단한데요. 수익은 어느 정도 냈나요.(이)=작년에 순익만 9억원을 냈더라고요. 매출이 아니라 순익이니까 적은 돈은 아니죠. 앨범이나 공연도 열심히 했고 모자 같은 상품도 제법 팔렸어요. 올 여름에는 또 다른 사업 아이템을 궁리하고 있어요.

# 좌충우돌 데뷔기▲ 이민우의 춤은 언제나 강한 카리스마를 발산하죠. 춤은 언제부터 췄나요.(이)=다섯살 때부터 마이클 잭슨 흉내를 냈어요. 본격적으로 춤을 춘 건 중학교 2학년 때부터요. MC해머 뉴키즈온더블럭 같은 가수들 춤을 따라 했어요. 그렇게 시작했던 춤이 내 인생에서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할 지는 몰랐어요. 가수가 될지도 몰랐죠. 데뷔할 때까지의 과정은,정말 드라마라니까요. 나중에는 내 얘기를 드라마를 만들어보고 싶을 정도죠.

▲ 오호,드라마라. 어떤 이야긴데요?(이)=(갑자기 소주를 들이키며) 중학교 2학년 때였죠. 3학년 형들 2명하고 '제2의 서태지와 아이들'이 돼 보자고 준비를 시작했죠. 2년간 연습해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올라갔죠. 그때 처음 본 가수가 포지션과 터보였죠. '와, 저런 연예인이 되어야지'라며 대중목욕탕에서 발가벗은 채 연습도 해 보고 오디션을 봤죠. 같이 준비한 형 중 한명의 삼촌이 작곡가였거든요. 오디션은 다방에서 이뤄졌어요. 손님도 있는데,의자를 밀고 춤을 췄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죠. 춤을 어떻게 췄는지는 기억도 안나요. 그 때 삼촌 분이 그러는 거에요. "그림이 좋다. 1년만 더 준비해서 와라 그러면 받아주겠다"고요.

▲ 다시 고향으로 갔나요?(김)=네. 전주예고를 다녔는데 사실 디키덕키라는 4인조 팀을 꾸려서 활동 중이었죠. 전주에서는 나름 연예인 같은 존재였어요. 춤으로는 우리 팀을 따라올 사람이 없었어요. 당시에 H.O.T가 유행이었는데 제가 장우혁 같은 존재였어요. 그 때 H.O.T멤버들이 입던 브랜드의 도매업 하시는 분이 의상도 따로 준비해서 공급해 줄 정도로 유명했죠. 행사도 했어요.

▲ 와, 당시 행사비는 얼마였나요?(이)=고등학생이었으니까요. 20만원 정도였죠. 섭외가 오면 제가 그랬어요. '우리 4명이니까 짝수로 나눌 수 있게 주세요'라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자취를 했던 터라 생활비는 제가 벌었죠.

▲ 다시 상경한 건 언젠가요.(김)=그러다 고2때 서울로 다시 올라왔어요. 작곡가 삼촌이 우리에게 그랬죠. '연습생을 해 보자. 대신 이 길은 정말 험난하다. 매우 더럽고, 동시에 매우 화려한 길이다'고요. 월곡동 돌산을 뛰면서 발성연습도 하고 외대 학교 운동장에서 소리 지르면서 뛰면 술 먹던 형들이 같이 소리쳐주고 했어요.

▲ 외인구단 같은데요. (김)=돈 만원에 벌벌 떨었죠. 식중독에 걸리기도 했고 영양실조에 걸리기도 했어요. 3개월을 그렇게 살았는데 어느날 눈떠보니 형들이 없어진 거에요. 날벼락이었죠. 그 형들 때문에 담배도 피고 귀도 뚫고 했는데 쪽지 하나 달렁 남기고 사라진 거에요. 형들이 더 이상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도망은 간거죠. (잠시 생각하다) 형들 용돈 한다고 제 돈 20만원도 가져갔어요.

▲ 어머,배신을 당한 셈이네요.(이)=그러게요. 다시 전주로 내려갔어요. 그런데 학교 아이들 시선이 영 곱지 않은 거에요. '너 가수 한다며 어찌 된 거야?'라고요. 그때 제가 연극영화과 전공이었는데 같은 반 친구랑 다시 서울에 올라갔어요. 그 친구랑 둘이 같이 하려고 대학로에서 같이 춤도 추고, 붙어 다녔죠. 형들이 없어진 것처럼 다시 가 버릴까봐 조심조심 잘 해 줬는데 어느날 그 친구가 또 가버린거에요. 제가 전주로 내려가서 주먹 한 방 날리고 '됐다. 이제부턴 너랑 나랑 다시 그냥 친구다'라고 했죠.

▲ 호호. 남자다웠네요. 그 친구는 지금 뭐해요?(이)=지금은 가수 모세 매니저를 해요.

▲ 아하, 그 친구가 가수를 꿈꿨었구나. 이민우는 결국 어떻게 신화가 된 건가요?(김)=사실 포기했죠. 다시는 가수 안 한다고. 대학 준비를 해야 하는데, 당시 고등학교 선생님이 '어쩔 수 없다, 컨닝해라'라고 할 정도로 공부는 준비가 안 되어 있었어요. 그러던 중 디키덕키 멤버 한 명이 전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창작 춤 경연대회가 에버랜드에서 있다고, 한 번만 해보자고 하더군요. 가수의 꿈보다는, 300만원이라는 상금이 탐났죠. 저건 탈 수 있겠다, 싶어서 용인으로 향했죠.

▲ 그래서, 대상을 탔나요?(이)=자신감을 갖고 용인에 갔는데,세상에,음원을 준비해 가는 것을 깜빡 한 거에요. 당시 대학로마다 있던 레코드 가게를 샅샅이 뒤졌지만, 우리가 찾는 CD는 없더라구요. 결국 여기까지 왔는데 놀이동산에서 신나게 놀다가자,고 했죠. 근데 놀이기구가 눈에 들어올리가 없죠. 놀이공원 안에 레코드 가게가 딱 하나 있어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들어가봤죠.

▲ 설마, 그곳에 CD가 있었다?(이)=왜, 만화를 보면 소중한 것에 핀 조명(스포트라이트,국부 조명)이 좌악 비추잖아요. 꼭 그런 장면처럼 우리가 찾던 CD가 눈에 확 들어오는 거에요. 길게 늘어선 줄을 제치고, 양해를 구하고 겨우 접수를 해서 대회에 나갔죠. 800팀이 출전했었어요.

▲ 아하, 드라마 중의 드라마로군요. 물론,우승을 했겠죠.(김)=1차 예심이 끝나고 신발끈을 고쳐메고 있는데 SM의 김경욱이라는 분이 명함을 줬어요. 그날 밥도 사 주고, SM 사무실까지 구경시켜 주셨죠. 그야말로 꿈만 같았죠. 데모 테이프를 가져 와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데모 테이프가 뭐냐'고 묻자 노래방에서 에코 빼고 앞 뒤로 테이프에 녹음해 오라고 하셨어요. 4명 중 2명만이 되었어요. 결승날에는 SM의 당시 연습생들이 우리 대회를 보러 용인으로 왔어요. 나중에 S.E.S와 신화 멤버가 된 바다 수영 유진 앤디 신혜성 에릭을 처음 만났죠. 앤디는 당시 머리를 올백으로 좍 넘긴 터라 저보다 나이가 많은 줄 알았죠(웃음). 혜성이는 선글라스를 쓰고 선글라스만 살짝 내린 채 눈인사를 해서 솔직히 '어머, 거만한가봐' 이랬죠.하하. 에릭은 하늘색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착해보였어요. 1997년 그렇게 시작했죠.

# H.O.T는 존경의 대상▲ 그렇게 시작한 신화가 10주년이 됐네요.(이)=(잠시 생각하다) 그러게요. 멤버들 끼리 모이면 형제 같다는 얘기를 주고 받았어요. 10주년 공연 뒤풀이때 형제애 보다 더 진하다고 했죠. 아침 7시까지 같은 장소에서 술 마시고 결국 저는 병원에 입원하고,하하.

▲ 멤버들끼리 충돌은 없나요.(김)=초반에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요즘에는 워낙 오래돼서 그런지 한 멤버가 잘 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믿고 따르는 분위기죠. 제가 무대나 음악을 맡으면 에릭은 팀 전체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얘기해요. 동완이는 팬 입장에서 얘기를 자주 하죠. 사실 가장 고마운 건 (전)진이하고 앤디에요. 동생들이 자기 생각도 있을 텐데 잘 따라와줘서 지금의 신화가 있을 수 있었어요.

▲ 같은 소속사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H.O.T와 경쟁관계가 심했다는 얘기도 있었죠.(이)=멤버들끼리는 잘 지냈어요. 제가 곡을 쓴다고 했을 때 재원이가 장비를 주기도 할 정도였죠. 주변에서 자꾸 그런 식으로 두 팀을 붙인 게 아닌가 싶어요. H.O.T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었죠. 배울 게 많았던 팀이었어요.

▲ 신화 10주년 공연 때문에 정작 본인의 앨범 활동은 접었다고 들었어요.(김)=앨범활동을 할 수가 없었어요. 방송을 병행하면 내가 만족할만한 무대가 안 나오잖아요. 신화 10주년이 다시 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포기할 가치가 있었어요. 회사 직원들에게도 거기에 대해서 얘기 더 이상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죠. 스트레스 받기 싫거든요. 에릭이 가장 많은 신경을 썼어요. 저하고 곡을 만들다 보니 밤샘 작업을 둘이 할 때가 많았어요.

▲ 공연 막바지에 우는 멤버들도 보였어요.(김)=공연 때 정말 찡했어요. (눈가가 젖으며) 사실 그렇게 감동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첫번째로 모였던 팬들의 인터뷰 나오고 준비된 케이크가 '짠' 하고 나오는데 정말 감동적이더라고요. 제가 이벤트를 준비해서 하기만 했지. 누군가에게 받아 본 기억이 거의 없거든요. 그 순간에 10년의 세월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잠시 말을 멈추다가) 그 때 내가 정말 행복한 놈이구나 마음으로 느꼈어요.

# 시골소년 코난 내집 마련기▲ 고향이 전주인가요.(이)=아뇨. 남원에서 30분 정도 들어간 외딴 곳이에요. 완전히 시골이에요. 3면이 다 산이에요. 시냇물이 흐르고 지리산이 바로 옆이죠. 나중에는 제가 자란 곳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어요.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 때마다 그곳을 찾아요.

▲ 가정형편은 어땠나요.(김)=아버지가 석조사업을 하셨는데 잘 안됐어요. 가세가 기울었죠. 어머니가 뒤늦게 미장원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했어요. 아버지는 나중에 양봉업을 하셨고요. 아버지는 힘이 장사셨어요. 씨름선수 출신이시거든요. 그 때를 생각하면 코난 같아요. 시골소년 코난.(웃음) 집이 어려워도 기죽지 않고 모험 좋아하고 동물도 좋아했어요.

▲ 아, 그래서 그런지 생활력이 강해보여요.(이)=고등학교 때부터 자취생활을 하다보니 그런 것 같아요. 최근에는 사업을 하면서 경제관념이 생겼어요. 제테크에 관심이 많아졌죠. 그제는 아버지랑 처음으로 제 돈으로 마련한 집에 다녀왔어요. 데뷔 10년만에 제가 번 현찰로 청약 1순위 자격으로 분양을 넣어서 얻은 집이죠. 청계천 부근에 있는데 전망이 참 좋았어요.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아버지도 '좋더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아들로서 뿌듯한 거,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 오호, 가족에 대해 애틋해 보여요. 직접 가정을 꾸릴 생각은 없나요.(이)=38세면 너무 늦을까요,라고 아버지께 여쭸죠. (양)현석이 형을 보면 40 전에는 가야할 것 같아요. 아예 일하고 결혼하신 분이거든요.(웃음) 결혼은 일과 사랑 조절이 가능한 시기에 해야 될 것 같아요. 내 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을 것 같고요. 운명적인 인연을 따로 있다잖아요. 기다려봐야죠.

▲ 이제 30대인데 감회가 어떤가요. (김)=20대 10년을 가수로 화려하게 보냈어요. 30대는 가수로서가 아니라 또 다른 나의 꿈인 사업으로 승부를 걸고 싶어요. 20대는 앞만 보고 왔다면 30대는 여유를 가지고 주변도 잘 보면서 여러 가지를 추진해 보고 싶어요.

▲ 꿈이라면 어떤 것인가요.(이)=새롭게 만들어지는 신도시를 공연 예술 색깔이 묻어나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홍대하면 클럽이 떠오르듯이 도시 이름을 떠올리면 뮤지컬부터 콘서트 전시회 영화 같은 시설이 월등하게 잘 돼 있는 그런 곳이요. 아마 능력이나 재력이 다 뒷받침 돼야겠죠. 제 이름을 걸고 그런 곳을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추천수6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