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좋은 추억이 될듯..
이하 뉴스에서 발췌
2008년 K-리그가 개막한지도 벌써 한 달, 주말마다 벌어지는 리그 경기와 주중의 컵대회 덕분에 리그의 팬으로서도 무척 마음이 바쁜 나날입니다. 그런 리그 소식으로 풍성한 최근의 축구 뉴스 속에서, 이달 초 "교생선생님 박주영"이라는 타이틀을 단 기사가 무척이나 눈에 띄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K-리거로 뛰면서도 고려대 체육교육과에서 학업을 계속했던 박주영 선수가 4학년이 되어서 사범대생의 필수 코스인 교생실습에 참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박주영 정도의 유명세를 가진 스타가 일반 고등학교에 교생으로 근무하는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해당 학교인 동북고에서 벌어진 일련의 소동과 취재 러시는 이해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K-리그의 일정이 일반적인 대학의 수업을 모두 소화할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다는 점, 그러니 어느 정도는 대학 측의 양해를 얻어 학업을 계속했을 박주영이 실습 기간 중에도 K-리그 출전과 팀 연습에의 참여에 대해 동북고의 양해를 얻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는 다소는 특혜라는 논란이 될 지도 모릅니다. 박주영 정도의 입지를 가진 선수이기에 대학과 실습 학교의 양해도, 팀의 양해도 얻을 수 있다는 비아냥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박주영 선수의 교생실습에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축구를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아이들의 최종 목표는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일단 대학에 진학했더라도 프로팀으로의 진출 기회가 오면 쉽게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축구선수들의 상황입니다.
박주영 역시 프로팀에 입단하면서 다른 선수들처럼 학교를 떠났지만, 재입학이라는 절차를 거쳐 굳이 학업을 계속했습니다. 제아무리 학교와 구단의 양해가 있다고 하나,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거기에다 노상 팬에게 시달려야 할 정도의 유명세를 가진, 그러나 그것을 즐기는 성격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이 선수로서는 학생들에게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야 하는 교생실습을 감수하는 데도 상당한 마음의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주영이 그 길을 선택한 것을 바라보면서, 이 선수가 단순히 그라운드에서만 영리한 골잡이가 아니라 먼 미래를 준비할 정도로 철이 들었다는 점이 무척 기특하게 느껴졌습니다. 현재의 위치, 수입, 인기에 안주하면서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많은 선수들을 보아왔으니까요.
K-리그의 파이가 커지고, 선수들의 연봉이 올라가면서 보통의 또래 젊은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입을 올리는 20대 초반의, 혹은 10대의 선수들까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대학의 졸업장을 가진 선수는 줄어들고, 이따금은 초등학교 졸업을 최종 학력으로 가진 선수들마저 눈에 띕니다.
예, 저도 대한민국 운동선수들이 정규 수업 과정을 모두 소화하면서 학교의 졸업장을 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학원 스포츠의 열악한 현실도 알기에 운동선수로서 좀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프로 구단으로 일찌감치 오고 싶어 하는 마음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제가 걱정스러운 것은, 그렇게 서둘러 프로선수가 된 아이들이, 더 이상 축구선수가 아니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자연스러운 은퇴라 해도 일반적인 직업의 사람들보다는 훨씬 빠른 30대 중반, 심한 부상을 당하거나 선수로서의 기량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20대 중반이건 초반이건, 언제든 갑자기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뛰지 못할 위험은 늘 있습니다.
보통 학생들과 같지는 않다 해도, 운동선수로서나마 정규적인 교육과정을 마쳤다면 그런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선택의 폭은 좀 더 넓어질 것입니다. 굳이 졸업장이 아니라 해도,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만이 아닙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상식과, 축구선수가 아닌 보통의 또래들과의 교우 관계, 즉 축구장 밖에도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가장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곳이 학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운동선수들의 학업에 대한 태도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유소년 클럽으로 한국 축구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차범근 축구교실은 육성반 학생들을 용강중-여의도고 축구부로 진학시키면서 축구부라고 해도 일반 수업을 대부분 받도록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수원의 유소년 클럽으로 새로 출발한 매탄고 역시 소속 선수들에게 오전 수업은 필수적으로 참가하고 운동은 방과 후에, 그 외 담당 교사에게 영어와 한문 과제까지 추가적으로 받아서 공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축구 선수도 결국은 사회인이며, 인성 교육이나 국제 무대로 나가기 위한 교육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매탄고 황득하 감독의 말처럼, 이런 기본 교육은 축구선수로서 뛰는 동안에도 결코 의미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더 이상 선수가 아니게 되는 미래를 위해서는 더더욱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까지도 축구선수들에게 미래의 계획을 물으면, 천편일률적으로 지도자라 대답하곤 했습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유소년 클럽이 많이 생겨나 다소 폭이 넓어졌다고는 해도, 선수 경력을 가진 모든 이들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자리가 많지는 않습니다. 거기에 그 자리의 불안정함과, 선수 시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는 보수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평균수명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길어진 지금, 30대 이후의 미래를 그런 틀 안에만 가두어야 한다는 것은 조금은 서글픕니다.
지금 뛰고 있는 그라운드가 소중하고, 축구를 자신의 존재 가치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 것과는 별개로, 축구장 밖에도 넓은 세계가 있음을, 또한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한다 해도 꼭 그라운드 안에만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아직 젊은 선수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도 축구장 밖의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스스로를 축구만 잘 하는 축구 기계가 아니라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자격과 소양을 갖춘 존재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을요.
그런 의미에서, 교사자격증을 따기 위해 교생실습에 참가하는 박주영의 모습이 보기 좋고, K-리거 경력과 함께 U-17 월드컵 조직위원회 운영팀의 직원으로 일했던 독특한 이력으로 눈길을 잡아끌면서 궁극적인 목표를 FIFA에 들어가 전체 축구판을 바꿀 수 있는 행정가가 되는 것이라 말하는 K3리그 부천 FC 1995의 플레잉 코치 김태륭의 앞길이 기대가 됩니다. 독일 2부리그에서 선수로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자기 이름으로 된 재활센터를 세워서 자칫하면 은퇴할 수 있는 선수들의 선수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는 확실한 목표를 세우고 그 준비를 착실하게 해 나가고 있다는 차두리의 소식 역시 반갑습니다.
"선수 생활보다 그 뒤의 인생이 훨씬 길고 재미있을 것"이라 입버릇처럼 말해왔다는 차두리처럼, 더 많은 우리 선수들이 축구선수가 아니게 된 다음의 스스로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축구장 안에서의 그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 만큼, 먼 훗날 그라운드가 아닌 어디에선가 마주쳤을 때의 그들 역시 행복한 사회인이기를, 축구장 밖에서의 꿈도 가질 수 있고 그것을 이루어나가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글=신명주(스포탈코리아 객원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