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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가는 길 part.2 (2008.03.26)

이창석 |2008.04.17 05:29
조회 406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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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가는 길 part.2 (2008.03.26)


 


계룡산 관음봉에서 자연성능을 거쳐 삼불봉으로 향하는 산행이다.


자연성능...초보자가 산행하기엔 아찔한 곳이긴 하지만


계룡산의 풍미를 한껏 느낄수 있는 곳이라 여겨진다....자연성능을 따라 걸으면 한쪽으로는 동학사쪽 풍경이...다른 한쪽으로는 갑사쪽 풍경을 동시에 보면서 그 깊은 산세를 몸으로 느낄수 있을 것이다.


이날 계룡산을 오르면서 4계절을 다 경험한 듯하다...아래에서는 빨리 피어난 개나리가 있어 봄이 왔음을...산을 오르다보니 온 몸이 땀에 젖어 여름같은 기분이...산에는 아직 봄 새싹이 돋아나지 않고 바람마져 세차게 불어 가을같은 풍경이...그리고 산정상에서는 눈이 잠시나마 흩날려 겨울산행을 온 듯 했다...


삼불봉에서 본 고양이는 아까 은선폭포에서 봤던 그 고양이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이 고양이는 나보다 더 산을 잘타는 구나...


남매탑을 거쳐 동학사방면으로 내려왔다. 이 길은 국민학교 졸업하기 전에 반친구들과 헤어지는게 아쉬어 졸업기념으로 갑사에서 금잔디고개를 거쳐 동학사쪽으로 내려왔던 그 길이다. 모든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구비구비 지나치며 마주치는 돌길과 사이사이 계곡과 풍경을 보니 간간히 어린 추억이 떠올랐다.


그대로 산을 떠나는게 아쉬워 녹두전과 산채비빔밥을 시키고 인삼 동동주 한잔을 마셨다...부드러우며 고소한 녹두전이 입안에 도는데 옛 생각에 울컥 북받혔지만 그것을 동동주 한잔에 쓸어 넘겨 마셔 재쳤다. 시간이 그런 것이지. 정말 꼴값이야...


꽃피는 4월에 다시 와야겠다. 다시 만나자. 계룡산아!


 


 


 


[보물1284호]청량사지오층석탑


청량사터에는 칠층석탑(보물1285호)과 오층석탑(보물1284호) 등 2기의 석탑이 남아 있는데, 이 두 탑을 가리켜 오누이탑 혹은 남매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옛날에 상원이라는 승려가 어려움에 처한 호랑이를 구해주자, 호랑이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처녀를 업어다 주었다. 상원은 처녀와 남매로서의 관계만을 유지하며 수도에 정진하였고, 처녀의 아버지가 그 갸륵한 뜻을 기려 두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 탑은 그 중 오층석탑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얹은 모습이다.


바닥돌과 그 위에 둔 기단의 아랫돌은 각 4장의 돌로 짰다. 특이한 점은 기단의 가운데기둥을 별도의 돌로 끼워두었다는 것이다. 탑신의 각 층 지붕돌은 얇고 넓어서 균형과 안정감을 잃고 있다. 1·2층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2단인데, 모두 딴 돌을 끼워넣은 구조이다. 3·4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따로 한 돌씩이며, 4층의 지붕돌받침은 아래층들과 달리 1단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4층 지붕돌 위에 5층 몸돌이 있으나, 지붕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둥근 머리장식이 남아 있다.


전체적인 수법으로 보아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 비인오층석탑(보물 제224호)으로 이어지는 백제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일부 없어진 부분이 있지만 위로 올라가면서 과감하게 생략된 부분이 있고,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시대에 와서 한 절에 각기 특징있는 두 가지 유형의 백제탑을 세운 것은 역사적, 미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보물1285호]청량사지칠층석탑


청량사터에는 칠층석탑(보물1285호)과 오층석탑(보물1284호) 등 2기의 석탑이 남아 있는데, 이 두 탑을 가리켜 오누이탑 혹은 남매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옛날에 상원이라는 승려가 어려움에 처한 호랑이를 구해주자, 호랑이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처녀를 업어다 주었다. 상원은 처녀와 남매로서의 관계만을 유지하며 수도에 정진하였고, 처녀의 아버지는 그 갸륵한 뜻을 기려 두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 탑은 그 중 칠층석탑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세워 두었으며, 전체적으로 폭이 좁고 길쭉한 형태이다.


기단은 각 면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을 딴 돌로 세운 점이 특이하다. 탑신은1층 몸돌의 한 면에 직사각형 모양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새겼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층이 2단이고 7층이 1단이며, 2·3·4층은 후대에 만든 것이라서 원래의 모습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2층 지붕돌 낙수면의 경사가 1층 보다 급하고, 2∼7층까지 몸돌이 줄어드는 비율이 그리 크지 않아 탑 전체의 안정감과 균형을 해치고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모두 없어지고 이를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전체적인 수법으로 보아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 익산왕궁리오층석탑(국보 제289호)으로 이어지는 석탑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 없어진 부분이 있지만, 위로 올라가면서 과감하게 생략된 부분이 있고,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내용출처는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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