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문제처럼 토론 자체가 안되는 주제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진지한 토론에서 성매매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혹시 나타나더라도 이들을 음지로 보내버릴 수 있는 '음란행위가 부끄럽지 않으냐?"는
윤리적 다그침이라는 좋은 카드가 있기 때문에 토론이라기보다는 윽박지름으로 끝나버립니다.
하지만 토론장은 현실과 다릅니다.
한국은 성매매가 가장 만연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서울 사시는 어지간한 분들은 자신의 거주지 수백미터 이내에서 돈을 주면 여자와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업소를 몇개 정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아파트에서 나오자마자 큰길을 따라 300미터 정도를 걸으면서 증기탕 1개, 아마도 퇴폐이발소로 생각되는 업소 두곳, 수상한 가요주점 두곳, 룸살롱 한곳을 보았습니다. 유흥가가 아닙니다. 그냥 아파트 근처의 평범한 상가입니다.)
성매매를 완전히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념하더라도 이건 너무 심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이렇게도 성매매가 근절되지 않을까요?
근절이 문제가 아니라 생활 속에 파고들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제 생각엔 토론이 없이 늘 윽박지름으로 끝나버리는 성매매에 대한 담론의 부재 탓이 아닐까 합니다.
대개 성매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매매는 죄악이라는 기본 전제를 깔고 시작하거나 죄악인 이유를 다분히 종교적인 신념에서 찾기도 하기 때문에 기본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나 종교적 배경이 없는 사람은 동의하지 않게 되거나 심한 경우 거부감이나 반발심을 느끼게 됩니다.
단순히 음란한 건 나쁘니까, 순결한 게 선한 거니까, 예수님의 뜻이니까, 가정이 파괴되니까 등의 이유만으로는 성매매를 허용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현재처럼 거의 어디서나 성매매를 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는 느끼지만 성매매가 합법인 많은 나라들(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보다 성매매가 더 만연한 상황을 보면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그래서 보다 근본적 의문을 던져봅니다.
1. 성욕의 충족을 목적으로 성적인 서비스를 사고 파는 행위는 비윤리적인가?
2. 비윤리적이라면 그렇게 규정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3. 모든 비윤리적 행위를 법으로 처벌하고 있지는 않은데, 성매매는 반드시 법으로 금지해야 하는가?
물론 이 세가지 의문에 대해 제가 답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세가지 의문을 생각하기 위해 성매매에 찬성/반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주장하는 근거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1) 성매매 찬성: 성매매는 성범죄의 발생을 억제한다.
성매매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가장 흔한 주장 같습니다.
"남자는 여성과 달리 생리적으로 성욕을 해소해야 하는데
성욕을 풀 길이 없는 사람들은 돈을 주고라도 해결을 해야 한다.
그것마저 좌절되면 성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
하지만 성범죄자들이 성매매를 할 여건이 안되어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 개인적 생각은 강간을 상습적으로 행하는 남성들은 다른 방법으로 성욕을 충족할 수 있더라도 강간을 해야만 그 부분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 같습니다.
2) 성매매 찬성: 암컷의 성을 매개로 한 물질 거래는 동물계에서 일반적 현상이다
일반적 현상까지는 아니라도 다른 동물에서도 구하기 힘든 귀한 먹이를 수컷이 제공하고 암컷이 교미의 기회를 주는 거래가 관찰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므로 동물계에서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해서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3) 성매매 찬성: 성매매에 대한 처벌은 피해자가 없는 사건에 대한 법적 개입이다.
성매매는 강제매춘이나 미성년자 성매매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없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없다고 해서 법이 개입하지 않느냐면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과속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없어도 규정속도를 위반하면 규제를 받습니다.
과속을 규제하는 이유는 과속이 뭔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근친간에 아이를 낳고 동거하는 것을 처벌합니다.
이는 근친상간이라는 대단히 인륜적인 문제와 유전병 발생 우려라는 두가지 측면의 이유가 있습니다.
성매매가 당장 피해자와 가해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벌받는 이유에도 이런 악결과에 대한 예견이 있어야 합니다.
반대측에서는 여러가지 악결과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성매매와 유사한 사례로 거론되는 것들은 대마초 금지, 도박금지 같은 것들이 있지만 상황이 완전히 같은 예는 없기 때문에 역시 논란의 대상입니다.
4) 성매매 반대: 윤락여성의 인권이 침해된다
윤락여성의 삶을 직접 관찰하지 않고는 판단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전혀 상반된 두가지 증언이 나옵니다.
한편은 아무리 윤락녀들의 인권을 보장하려고 해도 집창촌의 경우 구조적으로 착취구조라서 빚만 쌓이게 되고 윤락녀들은 수렁에 빠져든다는 주장이고,
다른 한편은 요즘은 그런 불공정 계약에 의한 노예매춘은 없고, 윤락녀들도 성노동자로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현재의 성매매 산업에 인권유린적 측면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만
(사채업자가 채무자에게 신체포기각서를 강요하고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성매매로 돈을 벌어 갚도록 한다든지...)
민성노력의 주장처럼 정말 건실하게(?) 성노동자로 일한다는 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5) 성매매 반대: 성병과 낙태 문제
성병과 낙태 문제는 성매매를 집창촌에 국한시키고 보건당국이 감시할 경우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조절가능합니다.
성병과 낙태는 성매매보다는 성지식이 부족한 젊은이들이 문란한 성생활을 할 때 더 문제가 됩니다.
이게 성매매 반대의 이유가 되기엔 부족합니다.
6) 성매매 반대: 청소년 유해 환경
호기심 많고 감수성 예민한 시절에 집창촌을 지나쳐 보면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저도 고등학교 시절 집창촌이 뭔지도 모를 때 야간자습 끝나고
늦은 시간에 택시를 탔다가
택시 기사가 좋은 것(?)이라도 보여줄려고 그랬는지
집창촌을 통과해서 집에 가는 바람에 상당히 마음이 심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0년전의 지방도시이고, 소규모여서 그랬는지 청소년 통제구역도 아니었음)
여기서 심란하다는 것은 단순히 성적으로 각성된다는 의미 외에도
거창하게 말하면
어두침침하고 붉은 조명 아래서 몸을 파는 여자들을 처음 본 뒤 느끼는 인간적인 고뇌(?)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서울의 집창촌은 원래 청소년 통제구역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청소년 유해환경이라는 것은 일반 상가와 주택가로 파고드는 변태업소들이지 제대로 관리되는 집창촌은 청소년 유해환경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19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검열하면서 청소년의 정서에 안좋을 수 있는 부분을 삭제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죠.
따라서 성매매와 청소년 유해환경의 상관성도 그리 깊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7) 성매매 반대: 인간의 존엄성 문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바라볼 때 인격적 존재가 아닌 단순히 성욕을 해소하는 도구로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성매매에 반대한다는 입장입니다.
인간을 인격으로 보지 않고 욕구 해소의 도구로 보는 시각이 궁극적으로는 성범죄의 심리를 가져온다는 것이죠.
성매매에 반대하는 입장 중 가장 공감이 가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 입장을 확대시켜보면 성욕을 자극하는 영상물이나 공연물, 저작물 같은 것들도 금지시켜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16미리 에로영화를 볼 때 여배우를 인격적 존재로 바라보는 남자는 없습니다.
야한 옷을 입은 레이싱걸들의 섹시화보를 보는 남자들은 어떨까요?
다른 인간을 성욕 해소의 도구로 바라보는 것이 비윤리적이라서 그렇다면 성매매 뿐 아니라 성욕을 자극하는 이런 매체들도 금지되어야 합니다.
8) 성매매 반대: 간음 반대
간음에는 성매매 이외에도 모든 혼전 성관계, 자위행위, 간통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아주 원리주의적인 19세기 개신교도들은 부부간의 성관계도 생식에 꼭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서
쾌락을 추구하면 간음으로 보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별로 코멘트할 게 없습니다.
종교적 관점은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만의 문제니까요.
9) 성매매 반대: 가정 파괴
유부남이 성매매를 하면 간통행위입니다.
따라서 성매매로 인해 가정이 파괴될 수 있습니다.
미혼남의 경우 상관이 없지만
성매매 습관이 결혼후에 근절되지 않으면 가정이 역시 파괴될 수 있겠죠.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기혼녀들이 성매매에 나서는 일도 가정의 파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10) 성매매 반대: 네 딸이나 창녀 하라고 해라
아마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자취를 감추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쉽게 찍어 누르고 싶다면 꺼낼 수 있는 카드지만
정말 진지하게 토론을 해서 상대방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고 싶다면 꺼내서는 안되는 카드라고 생각합니다.
생각나는대로 성매매에 찬성하는 입장들과 반대하는 입장들을 정리해봤는데 다른 분들은 어떤 이유로 찬성 혹은 반대를 하시는지 좀더 많은 의견들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