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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행복
카터 챔버스 (모건 프리먼)는 매우 가정적인 자동차 정비공이고 에드워드 콜 (잭 니콜슨)은 이혼 경력이 네 번이나 있는 재벌이다. 둘은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성격도 판이하게 다르지만 불치병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인 노인들이다.
살아가는 동안 전혀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은 두 남자가 죽음을 앞두고 한 병실에 입원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둘 다 암이라는 불치의 병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는데 서로 치료의 고통을 견뎌내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상대편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품게 되는 것이다.
카터에게는 아내 버지니아 (베벌리 토드)와 아들 로저 (알폰소 프리먼, 모건 프리먼의 친 아들)가 찾아와 가정의 화목함을 엿보게 하는 반면, 에드워드를 찾는 것은 헌신적이지만 다소 냉소적인 그의 비서 토미 (션 헤이즈)와 담당의사 홀린스 박사 (봅 모로우) 뿐이어서 좋은 대조를 이룬다.
둘은 성격도 극과 극이다. 막대한 부를 누리며 살아온 사람답게 에드워드는 즉흥적인 허무주의자이며 매우 이기적인데 비해 자수성가한 중산층 카터는 이성적인 기독교인이며 헌신적이다. 그러한 각자의 성격과 형편에 어울리게 카터에게는 생계유지를 위해 젊은 시절의 꿈을 포기한 아쉬움이 미련처럼 남아있고 에드워드에게는 관계가 멀어진 딸이 하나 있다.
어느날, 카터가 메모했다가 구겨서 병원바닥에 버린 'bucket list'를 에드워드가 보게되면서 이야기의 진행은 빨라진다. 에드워드는 마구 써버린다고 하여도 그 쓴 흔적이 별로 남지 않을 재산의 일부를 카터의 소원 이루기에 사용하면서 자신도 덩달아 즐거워지고 싶었던 것. 두 남자는 자의식에 가득차 세계를 누비며 기행같은 행각을 펼치지만 둘의 행복은 그들에게 익숙한 관계와 공간을 떠남에 있지 않았고 반대로 그것들의 가치를 깨닫고 겸허하게 수용함에 있었음을 알고 돌아가는데 있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와 [미저리(1990)], [어퓨굿맨(1992)], [미시시피의 유령(1996)] 등의 걸작으로 영화팬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했던 롭 라이너 감독은 다소 도식적인 플롯의 [버킷 리스트]를 훌륭하게 영상화했다.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두 명배우,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의 명연기는 더 말할나위도 없겠으나 인생의 진실에 다가가도록 관객을 이끄는 감독의 신중함과 유머도 탁월하다.
특별한 영상이나 혹은 화려하고 자극적인 그래픽효과는 발견할 수 없다. 진부하다싶을 정도의 이미지로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생이란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암이라는 불치의 병은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니다. 사실 인간은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므로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셈 아닌가. 그것을 다소 강조하기 위해 암이라는 병을 소재로 삼았을 뿐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두 남자가 세계를 좁다하고 공간을 이동하며 평소에는 맨정신으로 도저히 시도하지 못할 일들에 골몰하여 분주한 것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살이를 좀 극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다만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 명목아래 이치에 닿는 행동을 하느라 바쁘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다시 말해 [버킷 리스트]는 100분이 안되는 시간동안에 인간의 일생을 강조적으로 요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매순간 죽음을 의식하면서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좋은 인간으로 세상을 떠나기 위해 각자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스스로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두 남자의 모습을 묘사한다는 데 있다 (사실 그런 면에서 죽음이란 삶에 있어 최고의 동반자이다). 그리고 그 답이란 소유와 명예의 유무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에서 이루어지며 그 상호작용의 핵심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롭 라이너 감독은 이러한 메시지를 매우 유머러스하게 전달하는데 이를 위해 사용된 장치 중 둘을 예로 든다면 편안하게 일자로 누운 상태에서 높이 매달린 TV 수상기를 바라보도록 고안된 에드워드의 우스꽝스러운 안경이 그 하나이고 또 하나는 커피열매와 고양이의 체내분비물과 화학작용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최상의 맛을 내도록 한다는 커피 루악에 대한 에드워드의 열렬한 애정이다. 그 과시적인 안경을 쓰지 않고도 우리는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우리가 열렬한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들도 사실 알고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아닌 것이다.
감독은 인간이란 모름지기 겸손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매우 날카롭게 간파해 내는데 그것은 정비소에서 카터가 담뱃재를 털던 바로 그 인스턴트 커피캔에 카터와 에드워드의 유골이 나란히 담기게되는 것으로 표현된다. 훌륭한 통찰력이고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병실에서 만나 카터와 나눈 짧은 우정이 에드워드라는 한 인물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인간이란 모름지기 인간들 사이에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다는, 그래야만한다는, 인생의 진리가 깊이 느껴진다.
성숙한 버디무비이기도 한 [버킷리스트]를 보고나니 미국 영화에서는 특정한 활동을 함께 하면서 우정이 깊어지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비해 영국이나 유럽의 버디무비에서는 흔히 비밀을 서로 공유하면서 우정이 자라가는 것으로 표현되곤 하는, 뚜렷한 차이가 느껴진다. 이래서 영화보기가 참 재미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