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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이다!"

이장연 |2008.05.01 17:22
조회 73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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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이다!"
118주년 세계 노동절(May day)에 부처 : 한국노동운동의 역사와 의미

5월 1일, 세계노동절(May Day)이다.
1889년 국제사회주의회의(International Socialist Congress)가 메이데이를 세계노동절로 지정한지, 118년이란 세월동안 전세계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연대와 자본주의.제국주의.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을 지속해 오고 있다.

세계노동절의 기원과 한국의 노동절

세계노동절의 기원은 자본주의가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던 18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6년 마르크스가 제1차 인터내셔널 강령에서 8시간 노동제의 법제화를 요구했고, 이는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이행하던 19세기 후반 세계노동운동의 중심적 문제였다. 이 요구는 미국의 노동운동에도 수용되어 광범위한 노동자 운동이 전개되었다고 한다.

특히 1884년 5월 1일 미국의 방직노동자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쟁의를 시작하고 각 노조가 이에 호응하여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죽거나 부상당하거나 체포당했고, 미국 노동자들의 시위가 1889년 파리에서 열린 제2차 인터내셔널 대회에 보고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미국의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기 위해 국제적인 시위운동의 날, 바로 메이데이로 결정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각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를 중심으로 5월 1일을 노동절로 정해 행사를 치러왔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가 미군정의 좌익 탄압으로 와해된 뒤 형식적인 행사만 치러져 왔고, 군사정권이 드러서면서 그 명칭마저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의 날'로 변경되었다.

1963년 4월 17일 군사정권은 노동조합.노동쟁의조정법.노동위원회법 등 개정을 통해 노동통제의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노동' '노동자'라는 개념속에 내포되어 있는 계급의식을 희석시키기 위해 '근로자의 날'을 제정에 관한 법률도 공표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노동계급의 진출이 확대되고 노동운동이 급격히 활성화 되면서, 대한노동조합총연맹의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해 행사를 치뤄온 것을,  5월 1일 메이데이로 복원시켰다.(브리태니커 사전 참조)

87년 노동자대투쟁 관련 사진자료


한국노동운동의 역사

관련해 한국의 노동운동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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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들을 살찌우기 위한 이윤의 도구로 기계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이제까지 짓눌러 왔던 모든 억압과 착취와 지배로부터 완전해 해방되길 바랬던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있었던 다음 해 1971년은 민주화운동뿐만 아니라 노동쟁의도 급증한 한 해라고 한다.

87년 노동자대투쟁 관련 사진자료


하지만 노동운동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더 큰 어려움에 처해 직면했는데, 1970년 '외국인투자기업에 있어서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조정에 관한 임시특례법'으로 노동기본권이 제한받았고, 1971년 12월 제정된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단결권은 인정하면서 사실상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은 원천 봉쇄했고, 유신독재와 대통령긴급조치 또한 노동운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했다고 한다.

당시 군사정권은 11개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1961년 8월 급조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대한노총과 비슷하게 반공주의.국가우선주의를 전제로 한 노사협조를 강조했고, 유신권력에 영합해 노동운동을 억압했다고 한다.

87년 노동자대투쟁 관련 사진자료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노동자의 증가에 따라 노동조합원 수는 크게 늘어나 1971년 49만여 명이던 것이 1979년에는 109만명이 되었다. 이는 '노동운동 없는 노동조합원의 증가'였다. 한국노총은 노동운동을 노동조합의 이름을 걸고 억압했지만, 노동자의 급증과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열악한 노동환경은 억압된 노동운동에 불을 지폈다.

한국은 주당 근로시간이 1970년대 52.3시간, 1980년대에 53.1시간으로 싱가포르나 대만보다 3~4시간 많았다 한다. 당시 자본과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노조를 홍보하는 플래카드조차 못 걸게 할 뿐 아니라, 노조에 대한 비방과 흑색선전은 물론, 노조 가입 권유를 위해 노조 간부가 개별 공장을 방문하면 아예 공장 문을 걸어 잠그는 등 치밀하게 노조무력화 공작을 펴나갔다.

87년 노동자대투쟁 관련 사진자료


87년 노동자대투쟁 관련 사진자료


그 속에서 전태일 열사의 인간해방 사상은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작용해, 1970년대 중반부터 조합 내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쟁취하기 위해 유신권력. 자본.노동자 상급조직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원풍모방노조, 동일방직 인천노조, 반도상사노조, YH무역노조, 콘트롤테이타노조, 청계피복노조 등 민주노조가 생겨났는데, 섬유산업 등 경공업이 대부분이고 여성노동자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1975년 전태일 정신을 이어받은 청계피복노조의 노동교실 사수투쟁과 1976년 이후 2년간에 걸친 동일방직 인천노조의 민주노조 사수투쟁, YH여성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사건은 기업주의의 비도덕성과 민주노조의 간난신고가 집약되어 있고, 유신독재 붕괴에 일역을 맡았다 한다. 그리고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잦은 파업, 농성, 태업 등에 자본과 권력이 어쩌지 못했던 것은 바로 노동자, 조합원들의 단결된 힘과 투쟁력의 근간이 된 '민주성' '자주성' '인간성'에 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관련 사진자료




유신독재가 붕괴된 뒤 등장한 전두환과 신군부는 산업노동자의 대량 증가 추세에 맞춰 민주노동운동이 거세질 것을 예상하고 이에 대하 대비책들을 내놓았다. 1980년 12월 31일 국가보위입법회의는 노동조합.노동쟁의에 노동운동가 개입을 금지한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을 신설하고, 산업별.지역별 연대를 차단하기 위해 기업별 노동조합만 인정하며, 노동조합 설립요건을 강화하고, 쟁의해위를 제한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노사협의회법을 제정했다.

또한 해고노동자 명단을 바탕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해고노동자 또는 노동운동가의 취업을 막고, 청계피복노조.원풍모방노조 등을 강제해산시키고 파괴해 민주노조를 제거코자 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관련 사진자료


이런 신군부의 민주노조 파괴공작 속에서도 학생들은 노동현장에 투신하거나 노동야학 등으로 노.학연대를 강화시켰다. 1980년 81년 '무림.학림' 논쟁으은 변혁의 주력이 학생이냐 노동자냐의 논쟁이이고 했는데, 그만큼 학생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관심은 커가고 있었다 한다. 1980년 5월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이 조직되었지만, 군사정권의 탄압이 워낙 거세 노동운동은 침체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노동운동이 활기를 찾기 시작한 때는 1984년이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은 한국 사회운동을 반독재 민주화운동 수준에서 변혁운동적 차원으로 발전시켰고, 1980년대 민주노조운동도 이 흐름을 같이 했다.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과 같은 경제적 요구나 투쟁 그 자체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민주노조운동은 그러한 경제적 요구나 투쟁을 매개로 노동자들을 정치적.계급적으로 의식화.조직화하여,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해 나갈 수 있는 주체세력을 형성하는데 그 목표를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198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세력이 형성되었다. 바로 학생운동세력의 '노동현장 투신'이 그것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 관련 사진자료


1980년대 상반기 수도권 공단 지역에 '위장취업'한 학생 노동운가만 약 3~4천 명 정도 되었는데, 이들의 활동도 작용해 1984년 134개 노조에 17,091명이 새로 조직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 노동투쟁을 선도한 이들은 택시기사였는데, 1984년 5월 대구에서 택시 기사 1천여 명이 사납금 인하 등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간 것을 신호로 구미.대전.서울.강릉 등지에서도 택시 기사들이 투쟁을 벌였고, 6월에는 부산에서 1천여 택시기사들이 시위를 벌였다 한다. 이렇게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자 군부정권은 대량해고, 블랙리스트 강화, 노조 설립 봉쇄 등으로 대처했다.

1985년 노동운동은 더욱 불타올라, 부평 등지의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1984년 8월부터 투쟁을 시작해 다음 해 4월 10일간의 파업투쟁 끝에 사주 측과 합의에 도달한 것은 막강한 공권력과 재벌 기업에 대한 승리였다. 그리고 노동자연대투쟁과 정치투쟁도 불타 올랐다.

87년 노동자대투쟁 관련 사진자료


1987년 7,8월 노동자대투쟁은 울산.창원.거제 등 경남 지역 대기업이 주도했지만, 지역과 산업, 사업체 규모에 관계없이 전국에서 전 산업에 걸쳐 일어났다. 섬유봉제.전기전자 등 경공업 여성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이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기점으로 자동차.조선.기계공업 등 중화학공업 분야의 대기업 생산직 남성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으로 전환되었다.

1989년 싸늘한 공안정국에서 교사들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를 5월 28일 출범시켰고, '교육민주화선언'을 발표하고 민주교육운동, 교육민주화운동을 군사정권의 탄압속에서도 전개해나갔다. 또한 민주노조운동을 불순한 운동으로 매도한 정부와 사용주(기업)들의 대대적인 공세와 탄압속에서, 민주노조운동세력은 한국노총에 맞설 수 있는 전국적인 중앙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1990년대 1월 지역별 노동조합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을 조직했다. 전노협에는 6백여 노조, 20여만 명의 조합원이 가입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관련 사진자료


1991년 하반기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했는데, 전노협 등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국제노동단체의 지원과 협력을 이끌어내며, 19995년 11월에 단위노조 862개, 조합원 418,154명으로 이뤄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결성한다. 1998년 4월에 민주노총 조합원은 54만 명으로 증가했고, 그 중 99%인 53만 명이 20개 산업별 연맹에 가입한 조합원이었다 한다.

위와 같은 민주노조운동의 양적 성장과 달리, 민주노조운동은 1993년 이후 전노대, 민주노총을 거쳐 '권력지향'적인 합법.개량주의 운동으로 변화해 가면서 점차 그 내용이 후퇴되었다. 그 결과 지금은 민주노조운동의 기본 정신과 원칙에 따라 조합원들을 의식화.조직화해나가는 노조들은 손에 꼽을 정도라 한다. 변혁적 지향을 포기하고 권력 지향적인 합법.개량주의 운동으로 나아가게 된 민주노조운동은 경제적 실리와 합법적 활동을 추구하는 데 중점을 둘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그 결과 전계급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투쟁보다는 자기 사업장 위주의 경제적 실리를 중심으로 한 기업별 이기주의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관련 사진자료


덧. 세계노동절에도 국가.자본권력에 의해 착취당하고 억압받으며 쉼없이 일하고 있을 수많은 노동자, 농민, 민중들을 떠올리며 아래 참고문헌을 뒤져가며 정리해 봤습니다. 비정규직 임시계약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날로 기력을 잃어가는 노동운동, 노동자운동, 노동조합운동이 왜 필요하고(망할 한미FTA,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공공부문 민영화 등을 막기 위해 사회변혁적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대중과 연대해야 한다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도 짧게 생각해봅니다. 118주년 세계 노동절 기념 노동자 대회가 한창 열리고 있을 지금, 일터에서~

* 참고문헌 :
- 전노협 청산과 한국 노동운동, 김창우 저, 후마니타스, 2007
- 한국 현대사 60년, 서중석 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역사비평사, 2007

* 불편한 꼬리표~
- 모든 차별과 인권침해.탄압을 반대한다 -
- 장기투쟁사업장.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라! -
- 조화롭고 생태적이고 불편한 삶(블로깅)을 권한다 -
- 새만금을 되살리자! 막장식 온갖 개발을 반대한다! -
- 버마와 티벳, 이라크의 민주화, 독립, 평화를 바란다 -
- 뻔지르한 포스코의 인도 현지 인권탄압을 규탄한다 -
- 신자유주의 한미FTA 공공부문(물) 사유화 를 반대한다 -
- 탐욕스런 롯데의 인천 계양산 골프장 개발계획을 반대한다 -
- 이랜드, 삼성, 롯데, 한국타이어 등 나쁜기업 제품을 불매하라 -
- 한국사회를 갉아먹는 삼성 등 재벌비리,부정을 철저히 밝혀라 -
-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한반도대운하, 경인운하 개발을 반대한다 -
- 기성(득)정치와 기만적인 대의민주주의(선거, 투표)를 거부한다 -
- 정부와 자본(기업)의 돈받아 시민운동하겠다는 이들을 의심하라 -
- 리얼정글고 광명진성고등학교와 재단의 학생인권침해를 규탄한다 -
- 추잡한 환경운동연합 횡령사건을 묵인하는 기성시민단체를 규탄한다 -
- 운동사회 성폭력과 권위주의를 양산하는 시민단체,인사들은 각성하라 -
- 개인프라이버시와 정보인권을 침해하는 전자여권, 지문날인을 반대한다 -
- 추악한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동참.사대하는 한국정부를 규탄한다 -
- 한반도 평화 위협하는 전쟁전초기지 미군기지와 주한미군은 당장 철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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