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온에어다. 드라마 제작이라는 소재도 그렇고, 배우들의 연기도 그렇고, 카메오들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간간히 보이는 패러디적 요소도 그렇고. 여튼, 오늘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런 내용이 아니다.
오늘 온에어의 주요 내용은 4회까지 방영된 드라마 '티켓투더문'. 이전에 서작가를 찾아와 채리분량이 적은 것에 대해 항의했던 진대표는 채리를 도중에 빼려고 한다. 이에 제작은 중단되고, 각 부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입장에서 화를 내게 된다. 드라마 국장, 외주제작사 대표 및 제작 PD, 작가, 연출PD, 각 배우 및 스텝. 한 사람 채리가 빠짐으로 인해 저마다 문제가 생기게 되고, 이 문제는 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서로간의 문제가 된다. 정작 문제의 원인이었던 채리와 진대표는 실질적 문제와는 멀리 있는 듯하고, 오히려 나머지 인물들은 서로간의 반목을 일으키게 된다.
자본주의가 현대 사회를 이끌어 가는 대표적인 이념이라면 그 중심에서 방송 또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제도권 방송은 상업적 이윤 추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산업이다. 때문에 나는 온에어를 통해서 다시한번 자본주의의 무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17회에서 발생한 사건의 중심에는 진사장이 말하는 방송의 속성이라는 '모양새', '돈'이 있다. 채리를 뺀다는 결정을 한 것은 주인공인 채리의 비중이 적다는 '빠지는 모양새'였고, 이에 따라 야기되는 각종 이미지를 비롯한 실제적 '수입'의 감소가 그 원인에 있다. 또한 진대표가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채리를 빼면서 발생할 수 있는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능력이, 채리가 빠짐으로서 외주 제작사와 방송국이 겪게될 손해를 감수하는 능력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자본(돈으로서의 자본이든, 힘으로서의 자본이든)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진대표는 지극히 자본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채리를 뺀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한 피해는 함께 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남겨진 이들은 각종 물질적 피해와 정신적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만약 진대표가 정말로 채리를 뺐다면, 그리고 서영은이란 작가의 능력이 채리가 빠지는 과정과 그 이후의 스토리를 충분히 이끌어나갈 수 없다면 이로인한 피해는 얼마나 컸을까? 당사자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내용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에서 이익 추구라는 것은 당연한 명제이고, 이 과정에서는 자본을 더욱 많이 소유한 사람의 횡포가 직·간접적으로, 의식·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이 되는 듯한 조짐이 보인다. 현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은 대본을 수정하는 것이겠지만, 이감독은 채리를 빼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여기까지는 전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것은 드라마 속에서나 해피엔딩을 향해 갈 수 있는 것이지, 실제사회에서 설사 대본의 내용이 잘 나오고, 잘 찍는다고 해도 제작비 문제를 비롯해서, 언론상 이미지 문제등 다양한 시스템이 맞물려있는 방송상황에서 그리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드라마국장의 결단이다. 국장은 외주제작사에게는 1억2천의 계약을 채결해주는 한편, SW에게는 SBC출연정지라는 카드를 내놓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졸이던 가슴을 펴고, 비로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여전히 나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왜냐면 여전히 자본주의의 무서움을 발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대표의 결정에서 오는 어려움을 대해 방송국과 외주제작사 측이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올바른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식의 밝고 명랑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방송국이 가진 또다른 자본이었을 뿐이다. 진대표는 자신의 선택으로 오는 피해를 방송국 측이 감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즉 SW 자본의 힘이 방송국과 외주제작사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었겠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드라마국장의 대사에서 보여지 듯, 정확한 힘의 우위는 확신할 수 없지만 시장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볼 때에 매니지먼트보다는 방송국의 힘이 아직은 강해보인다. 때문에 드라마국장은 진대표의 결정에 대해 승부수를 던질 수 있었고, 우리는 이로인해 문제가 해결될 것임을 예상하게 되며 안도한다.
내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바로 이러한 안도감이다. 우리는 이 안도감의 배경에 올바른 신념과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생각이 숨어있는 것을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적어도 이번 온에어에서 보여지는 모습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또다른 자본이다. 우리는 이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때문에 자본을 가지지 못한 채 노력하는 이들의 어려움들은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그들 자체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회구조를 조금만 살펴보면 그것이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지금 순진한 생각으로 이 사회를 바라보다가는 나 자신이 자본의 폭력에 당할 수도, 내가 타인을 향해 자본의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자본의 폭력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단순히 실패한 인간으로만 여기며, 묘한 우월감 속에서 이 사회에서 그나마 적응하고 있는 나 자신에 만족하며 살아갈지도 모를 거라는 불편한 마음을 오늘 온에어를 보면서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