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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들의 집회 참여를 비난하는 시선에 대해서

이재선 |2008.05.08 01:47
조회 18 |추천 1

 

완전히 다 알고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불가능합니다. 누군가 다 안다고 말한다면 그거야말로 누군가의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일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아는 바에 의해서 그리고 자신의 지적 역량 하에 의한 판단 아래서 행동합니다. 이것이 개개인이 지닌 한계입니다. 그렇다고 섣불리 조금밖에 모른 체 행동하는 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경계해야하지요.

 사람들에게 지적일 것을 요구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옳은 것이고 신중한 행동이야 말로 실수가 없고 본인에게 손해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사람일 수록 지적으로 성숙하고 신중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고 모기불님의 우려 이해합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모든 개인은 자신이 최대한 아는 바에서 행동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 또한 알고 있어야 하고, 이들에게 한 개인의 현명함의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무리한 요구이고 비현실적이기조차 합니다. 그리고 어떤 뛰어난 개인의 지적 역량보다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다소 무지한 대중이 움직이고 거리로 나올 때에 역사의 전환점이 있었다는 것은 모기불님은 인정해야 합니다. 지적으로 신중한 사람의 단점이라면 행동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필연적으로 관망자가 되기 쉽습니다. 지적으로 뛰어날 수록 확신보다는 회의를 항상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10대의 행동들이 중국에서 10대들이 벌이는 행동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고 말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동학농민운동, 광주학생운동, 4.19.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등에서의 학생들이 현재의 10대보다 지적으로 성숙하고 신중하였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이들은 역사적 뱡향이 옳았기 때문에 높게 평가받는 것입니다. 옳았던 이유는 물론 우연은 아니고, 이들이 직접적으로 자유와 생존에 위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자유를 넓히고 생존권을 보장받으려는 투쟁은 항상 옳았고,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읜 10대는 그 때보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경험하였고, 지적인 산물들을 접할 기회가 많고, 스스로 견해를 밝히는데에 익숙하며, 한 개인으로서 대접받고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이지 않습니까. 또한 지금의 집회는 생명권 생존권 자신의 먹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정보에 대한 접근의 자유 등 그 큰 방향이 옳습니다. 자신들의 권리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자발적 투쟁이라 옳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려는 우려를 하는 데서 끝내길 바랍니다. 우려를 넘어서서 역사의 올바른 방향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비난을 가하는 것은 "아는 체 하는" 지식인의 자소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신중한 관망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러한 사람들은 역사에 차고 넘쳐서 길에 다니는 돌멩이수보다 많을 지경입니다. 물론 역사에 올바른 방향이냐고 함부러 말할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였다는 것이야말로 저는 한 개인으로서 위치와 존재에 대한 각성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그전 세대가 10대 시절에 거리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 말입니다. 전체주의가 농후한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각성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말입니다. "총칼과 폭력 죽음 고문 등의 직접적인 위협"이 아닌 "일상의 정치의 위협"에 이렇게 의사를 표현한 적은 없었고 과거의 10대들에게는 불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 10대들 저는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http://rkqmfldpf.egloos.com/1681029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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