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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이양자 |2008.05.10 11:09
조회 62 |추천 0

 

 

                            "혁명의 구호를 짓밟고 너를 사랑하리"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장편소설|김태성 옮김|웅진지식하우스ㅣ253쪽|1만원


 

 

 

이 소설은 중국 문단에서 하나의 추문(醜聞)이었다. 2005년 2월, 이 작품이 실린 광저우(廣州)의 문예지 '화청'(花城) 봄호는 출간 즉시 회수돼 중앙선전부의 긴급명령으로 모두 폐기됐다. 이어진 조치는 더 가혹했다. 소설은 향후 중국 내에서 출판은 물론, 홍보, 게재, 각색, 비평을 할 수 없는 가장 무거운 금서 조치인 이른바 5금(五禁)에 처해졌다. 오직 해외 판권만이 열려 있었다.

소설은 문화혁명기를 배경으로 인민해방군 사단장의 젊은 후처와 그녀의 사택에 배정된 취사병이 벌이는 격정적인 사랑을 다룬다. 문제는 그 사랑이 문혁(文革)을 비판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마오쩌둥(毛澤東)을 철저하게 능멸한다는 데 있었다.

사단장이 두 달 일정으로 출장을 간 사이, 그의 후처 류롄은 취사병 우다왕을 유혹해 질펀한 육욕의 파티를 벌인다. 육욕으로 시작된 관계가 사랑으로 발전하자 그들은 서로를 향한 마음이 누가 더 절실한가를 증명하기 위해 위험한 불장난에 빠져든다. 사단장의 침실에서 우다왕은 마오의 석고상을 부수고 짓밟으며 "내 사랑을 못믿겠다면 보위부에 신고하라"고 한다. 류롄도 질세라 벽에 붙은 마오의 초상화를 갈기갈기 찢는다. 두 사람은 경쟁적으로 마오의 어록을 찢고 초상화의 눈을 후벼 파며 외친다. "네가 더 반동이야, 아니면 내가 더 반동이야?"(168쪽)

문혁 시기 중국 공산당은 국가개조라는 미명 아래 문명을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작가 옌롄커(閻連科·50)는 당시를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영혼의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소설 속 두 남녀의 사랑 행위는 그 감옥의 벽을 넘어 자유를 얻고자 하는 인간의 아름다운 의지로 격상된다. 인간성에 대한 작가의 확고한 지지는, 망설이고 타협하며 배반하는 두 사람의 허약한 사랑마저 그대로 인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농촌 출신인 우다왕은 사단장의 아내를 이용해 출세하고 싶은 마음과 그녀를 향한 순수한 갈망 사이에서 번민한다. 류롄 역시 사단장의 아내로 화려하게 살 것인가, 사랑을 택할 것인가를 두고 인간적인 갈등에 빠진다. 이처럼 굳건하지 못한 사랑을 작가는 "자신이 처한 사회환경에 대한 우리 인간들의 어쩔 수 없는 흐느낌"이라는 말로 옹호한다.

반면 문혁의 온갖 거룩한 구호들은 철저히 모욕당한다. 마오의 어록에 실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라는 문구를 새긴 편액은 두 사람의 밀회를 위한 암호로 쓰인다. 류롄이 편액을 옮겨 놓을 때마다 우다왕은 그녀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 사랑을 나눈다.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소설을 "인간의 존엄에 대해 영원한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라고 말했다. 맹목적인 국가주의에 빠져 서울 한 복판에서 난동을 부린 일부 중국인들과, 그런 행위를 "의도 자체는 선량했다"고 옹호하는 이들에게, 〈마오쩌둥 어록〉을 들고 독선적 정의감으로 무장했던 40년 전 홍위병들의 잔영이 어른거린다. 그들에게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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