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역사탐방기 ]
윈저성에서..필자
― 전통과 영광과 쇠락의 노제국(老帝國), 영국 탐방기 ―(1999. 6.
29 ∼ 7. 14 ; 잉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지역)
보름동안을 영국만 집중적으로 여행한다는 기쁨과 기대의 설레임 속에 학기말 성적처리를 미리미리 번개처럼 해치우고, 한 학기동안의 찌든 심신을 달래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일기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부산팀은 그 전날인 28일 오후에 上京하여 한 모텔에서 잠을 자고 일찍 공항으로 나갔다.
어제 상경하여 공항에 맡겨둔 여행가방을 찾고 반가운 분들과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누며, 여행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쓰고 체크한 뒤, 11시 55분 ANA비행기에 올라 일본 오사카로 향했다.
우리가 런던까지 타고 갈 비행기는 일본비행기였는데, KAL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일본은 장마권에 들어서 大雨가 내리고 있는터라 비행기는 이상기류에 휘말려 뚝뚝 하강하며 덜컹댔다. 순간 아찔아찔함을 느끼며 온갖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도 비행기는 두시간여 비행 끝에 무사히 오사까 간사이공항에 착륙하였다.
全日空의 Gate Tower Hotel에 짐을 푼 다음, 가는 빗속을 뚫고 일행은 공항 근처의 키시와다죠(岸和田城)를 구경하고 간단한 저녁식사를 한 뒤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은 쾌적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의 깨끗하고 야무진 모든 것들에 대해 화가 났다.
30일 아침 9시 40분
호텔을 출발하여 11시 30분 보딩수속을 끝내고 탑승하였고 ANA비행기는 12시 런던을 향해 간사이 공항을 떠났다.
하바로스크 → 시베리아 벌판 → 모스크바 → 성 페테스부르그 → 스톡홀롬 → 켄터베리를 거쳐 열두 시간여 비행 끝에 비행기는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영국 현지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었다.
런던 야경
짐을 찾고, 준비된 bus로 Copthorn Tara Hotel에 도착, 짐을 풀었다.
5시 30분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Soho구역의 중국 음식점 밀집지역으로 이동하여 중국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피카딜리 서어커스 광장, 트라팔가 광장, 버킹검 궁전을 둘러보았다.
트라팔가 광장에는 네 마리의 사자가 떠받친 유명한 넬슨 기념탑이 있었는데, 그 열두개의 분수가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보며 대영제국의 영광과 그 잔영을 보는 듯 했다.
영국황실의 궁전인 버킹검 궁전에는 예의 그 빨간 제복에 곰털로 만든 모자를 쓴 위병이 한 명 서 있었고, 궁전 앞 광장에는 빅토리아 여왕 기념탑이 우뚝 서 있었다. 황혼속에 우리는 런던대교를 건너 테임즈강변의 국회의사당 등 아름답고 오래된 건물들을 구경하며 호텔로 돌아와 영국에서의 첫밤을 맞았다.
영국도착 후 단지 6시간동안 보고 느낀 점은 다음의 몇가지다.
공항직원들의 태도는 매우 불친절했다. 관광이 1,2위 산업인 이 나라가 이래도 되는걸까?
우리들이 아시아계 유색인종이기 때문일까? 그리고 공항이나 거리 어디에서나 인도인, 파키스탄인, 아랍인, 검은 아프리카인들이 굉장히 많다는 점이다.
물론 옛 식민지에서 온 유학생들도 있겠지만, 영국자신이 만든 죄의 씨앗이 그들을 종국적으로는 위협할 것임이 분명했다.
넓은 평원에 양들이 뛰놀고, 아담하고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붉은 지붕과 붉은 벽돌로 된 그림같은 집들은 매우 아름다웠다. 또한 지붕마다 줄서듯 서있는 굴뚝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거리는 고풍창연하고 좁고 깨끗하고 창가와 가로등마다에 예쁜꽃들로 장식되어 있었지만, 어제 느껴본 일본에 비해 왠지 후지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2주일간 돌아보아야 확연해지겠지만 20세기를 끝내며 대영제국은 해체되고 퇴락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는 없었다.
7월 1일 (목). 7-8-9. 흐림, 비, 안개 .
7시 기상, 8시조식. 9시 출발.
여행하면서 처음 받아보는 룸서비스로 잉글리쉬 Breakfast를 먹었다.
(왜 방에서 식사를 하게 했는지는 아리송하다. 손님이 많고 식당 자리수가 모자라서일까?
아니면 동양인과 서양인에 대한 차별때문일까?)
9시. 일행 23명은 50인승의 좋은 Bus를 타고, 현지 쓰루가이드(through guide) 캐롤라인과 든든한 기사 죠지를 소개받았다. 캐롤라인은 늙고, 목소리 나쁘고, 여성답지 않고, 마치 늙은 여우같고(좀 심한 표현이지만)……. 아무튼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결국 여행내내 우리들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했다.
테임즈강의 길이는 45km나 된다는데, 유럽의 강들이 보통 그렇지만 강폭은 넓지 않았다.
차는 이튼스쿨을 지나 윈체스터 윈저궁을 주마간산하듯 지나고, 휴게소(break)에서 잠시 쉰 뒤 스톤헨지를 보기 위해 속력을 내 달렸다. 끝없이 녹색의 초지와 밀밭이 펼쳐졌다. 초지엔 양떼나 소떼, 말들이 그야말로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밀, 보리는 누렇게 익어 수확기에 접어들었다. 농촌의 아름답고, 전형적인 영국풍경이 펼쳐졌다.
그런데 날씨는 종잡을 수 없었다. 영국의 하루에는 4계절이 다 있다고 할만치 다양했다. 안개끼고 비오고 구름끼고 햇볕나고 또 비오고, 아침저녁은 쌀쌀하고 춥고, 해가나면 한여름 같았다. 버버리코트와 우산이 왜 필요한 것인지 절감할 수 있었다.
스톤헨지에서 친구와 함께
스톤헨지에 도착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이 유적은 청동기시대 거석 문화유적이다. 둑과 도랑으로 둘러싸인 직경이 100m정도의 평원에 몇 개의 큰 돌기둥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중에는 높이 6m가 넘는 것도 있고 그 위에 돌이 가로질러 얹혀 있어서 신전의 형태를 보여준다. 장엄하고 경이로웠다.
이들은 여러대에 걸쳐 세워졌으리라 추정되며 가장 오래된 것이 B.C.1800년 경이라고 한다. 돌을 짜맞춘 모양이 四季의 태양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되어있음을 볼 때 농업이나 종교와 어떤 관련이 있으리라 보여졌다. 참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일행은 다시 Bus를 타고 샐리스베리(Salisbury)의 평원을 넘어서 옛로마의 목욕장 유적이 있는 유명한 베스(Bath)로 향했다. 에이본강 유역 평원에 발달한 도시 Bath에 도착한 후 2시경 점심식사를 했다. 메뉴는 감자 튀김속에 넣은 육고기볶음과 당근과 껍질콩 삶은 것이었다. 샐리스베리의 Cathedral에 보존되어 있다는 그 유명한 Magna Carta의 원본은 보지 못했지만 마음속에 새겨 두었다. Bath는 영국 最古의 온천이며 또한 유일한 온천이라고 한다.
그 역사는 매우 깊어서 로마군이 영국에 침입하자마자 만들어진 곳으로 그 당시에는 아쿠아 소리스(Aquae Solis)라고 불렀으며 목욕을 좋아하는 로마인은 곧 浴場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그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어서 놀라웠다. 돌 회랑이 있는 웅대한 건물이 露天의 온천을 둘러싸고 있고 그 속에는 대욕장, 한증탕과 뜨거운 온천이 치솟는 湯元 등이 있었으며, 일부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많은 출토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몇 년전까지도 이 욕장은 실제 사용되었으나 어린아이가 여기서 사망한 이후 현재는 목욕을 금하고 있었다. 온천수가 오늘날도 하루에 엄청난 수량으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곳에는 긴 전화기같이 생긴 유물·유적 설명기구가 비치되어 있었는데, 영어·스페인어·독일어·일본어 등이 있었다.
정말 곳곳에서 일본인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일본인의 영국여행은 大Rush를 이루고 있었다. 영국을 닮고 싶은 일본. 그 역사에서도 흔적을 볼 수 있지만, 자동차 운전대가 오른쪽에 위치한 점, 군주제가 계속되고 있는 점, 좁은길과 정리된 모습, 끈기와 잔인함, 신사의 예절과 그 굴곡된 이면 등 오늘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두 나라의 많은 닮은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5시. 우리 차는 브리스톨을 지나 웨일즈의 수도 카디프(Cardiff)로 향해 출발했다.
시차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일행은 달리는 차속에서 모두 졸고 있었지만 캐롤라인은 이재기 사장(의 통역)과 함께 우리들에게 새로운 지식이나 역사적 사실을 알려 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름 웨일즈의 긴 다리를 지나 카디프에 도착했다.
카디프 성
길거리, 가로등 등 산과 해안은 아름다웠다. 곳곳에 있는 아름다운 꽃장식들, 소박하고 작은 인형같이 예쁜 집들, 그 창가에 드리워진 레이스 커텐과 꽃화분들. 아름다운 도시다. Forte post House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저녁엔 호텔 식당에서 세트메뉴로 포크와 생선 샐러드를 먹었다. 카디프성을 창밖으로 내어다 보며 편히 잠들었다. 이제 어느정도 시차를 극복했다.
7월 2일 (금). 흐림, 맑음, 22℃. 7-8-9.
오늘은 상업도시이며 대학도시이며 항구인 카디프의 자랑거리인 카디프성 관람부터 시작했다. 날씨는 시원하여 계속 긴옷차림으로 다녀도 땀한방울 나지 않아 아주 좋았다. 카디프성은 당당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이 성에 살았던 사람은 존 후작이며 1세기 로마군단의 성채로 축조된 이래 14C까지 웨일즈인에 의해 개축되어 19C이후 본격적으로 개수, 축조된 성이라고 한다. 1시간 30분간 성 구석구석을 관람하였다.
다시 일행은 버스를 타고 달려 남웨일즈의 철강산업 중심인 아름다운 항구 스완지(Swansea)를 통과하여 펨브로크(Pembroke)를 향해 달렸다. 아일랜드로 가기 위해 스완지에서 펨브로크로 가는 고속도로 양변에는 푸른 녹지와 초지(草地)가 한없이 펼쳐져 있고 양떼와 소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노닐고 있었다.
날씨는 개었다 흐렸다를 계속했는데, 그야말로 하루에도 4계절이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펨브로크에 도착하여 배에 타기 전에 아담하고 맛있는 음식점에서 쇠고기볶음에 감자 으깬 것과 샐러드와 cake를 먹었다. 처음부터 책을 통해, 사람들의 말을 통해 각오는 했지만 영국요리는 정말 맛이 없고 개성이 없다. 그래도 오늘 점심은 좀 나았다.
서둘러 점심을 끝내고 3시에 아이리쉬해를 건너 우리를 아일랜드(에이레 공화국)로 실어다 줄 큰 페리인 인이스프리호를 탔다.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암 버틀러 예츠'의 시에서 따 온 배이름이다. 배가 어찌나 큰지 수많은 승객과 수십대의 승용차와 10여대의 Bus와 컨테이너가 실렸다. 배는 4시간동안 망망대해를 달렸다.
아이리쉬해가 참으로 넓었다. 도버해는 유도 아니었다. 배 위에서 우리는 안개낀 바다, 빗발치는 바다를 보며 즐기고 담소하며 맥주를 마셨다. 아일랜드는 1년에 半은 비가 온다고 한다.
드디어 7시경에 아일랜드의 로즈레어(Roselare)항구에 도착하여 다시 버스를 타고 한적한, 오랜 옛마을 트레모어의 한 호텔(Grand Hotel)에 짐을 풀었다. 그 예의 아일랜드 특유의 안개비가 으시시하게 내리고 있었다. 트레모어로 오는 버스속에서 캐롤라인은 분주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일랜드는 본토와 동식물의 종류도 달라서 뱀은 없으나 까마귀는 있고, 그레이하운드 개의 본산지며, 양들의 천국이며, 농업·낙농업·양조업·컴퓨터 산업·관광이 주산업이며, 땅이 습하고 날씨가 변덕스럽고 사람들이 강해서 로마인도 쳐들어오지 못한 곳이며, 이곳 사람들은 시와 음악을 좋아하여 큰 하프연주를 많이 하고, 또 하프는 이지역 지형과 비슷하여 많이들 하프를 연주하는데 그래서 하프는 동전이나 지폐, 기타 여러 곳에 하나의 상징으로 그려져 있다는 얘기다.
Green Ireland로 표시되는 이 지역의 날씨는 하루에 4계절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한시간에 4계절이 다 있다고 했는데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오고, 또 안개끼고, 또 햇빛나고 무지개 서고, 구름 끼고…….
이같은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다혈질의 변덕스런 기질을 Irish Temper라고 할 정도란다. 역시 아일랜드 사람은 다혈질임을 우리는 실감할 수 있었다. 깊은 밤 호텔 주변에선 크게 떠들며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여늬 영국의 도시에선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소리다.
호텔에서 주는 이날 저녁밥은 스튜였는데 양고기 구린 내음새가 코를 찔렀다. 이 지방의 얼굴만 검은 흰 양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참으로 요리도 못하고 양념종류도 발달하지 못한 나라다. 이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무얼 했을까? 싸움질만 했나? 무식하게스리도 음식솜씨가 없는 나라다.
7월 3일 (토). 7:15 - 8:15 - 9:15.
안개 낀 아침 바닷가를 한바퀴 돌면서 차고 맑은 바닷바람을 쐐고나니 아주 기분이 상쾌했다. 아일랜드의 아침바다는 어쩐지 망망하고 쓸쓸했다. 아침메뉴는 잉글리쉬 브랙퍼스트. 그래도 영국이란 나라에선 아침밥이 제일 낫다.
W. Surmerset Maugham의 말처럼 "영국에서 좋은 식사를 하려면 아침식사를 세 번하라." 즉, 점심·저녁은 천편일률적으로 별볼일 없다는 얘기다. 감자 삶은 것·구운 것·튀긴 것, 돼지·닭·쇠고기 구운 것, 생선 튀긴 것, 당근과 껍질콩 삶은 것이 모두다.
그런데 또 언제나 식당에선 요리 종류와 디저트를 고르라고 어려운 요리이름을 쓴 메뉴판을 돌리니 귀찮기만 했지 먹고 싶은 요리는 없다. 재미있는 것이 점심이나 저녁식사때가 되면 일행은 모두들 소, 닭 본 듯이 멀건히 치킨이나 포크나 감자·당근 삶은 것, 그리고 수북히 담아 온 디저트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맛도 없고, 양은 많고 …
영국에서의 보름간 가장 인기없는 것이 요리였다.
도대체가 요리솜씨도 양념 종류도 발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이사이 중국음식을 먹었는데, 곳곳에 중국음식점이 많았고 또 그곳은 영국인과 외국손님으로 북적댔다. 영국이 이민정책에서 중국인을 다소 우선시킨 면은 요리때문이었다는 얘기를 할 정도니 자국의 요리가 시원찮다는 것은 익히 아는 모양이다. 이상하게도 한국음식점은 런던이외에는 거의 없었다.
식사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아무튼 아침식사 후 일행은 유명한 Waterford의 크리스탈 공장을 방문하였다. 정교하게 만드는 공정을 하나하나 다 보고 최종적으로 매장을 보았다. 많은 수공이 들어서 비쌀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가격이 너무 비쌌고 또 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일행은 거의 사지를 못했다.
다음 도시 Cork로 가는동안 광활한 草地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일랜드는 95%이상이 캐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이혼을 금지하며 낙태를 금지하고 대가족제를 유지한다고 하며, 사람들은 기후의 변화속에도 밝고 친절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우리는 블래니(Blarney)에서 점심으로 닭고기와 당근, 껍질콩,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리고 블래니성 구경을 갔다. 꼬불꼬불한 성안의 나선형계단을 올라가며 헤아려보니 107계단. 성위에 올라 빗속에서 젊은이들은, 입맞추면 말이 능해진다는 Blarney Stone에 입을 맞추었다. (여기에서 Blarney : 감언이설, 아첨이라는 말이 유래됨) 낡은 성 사방으로 둘러쳐진 푸른 초원과 숲은 정말 그린 아일랜드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비는 계속 왔다, 개었다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또 미끄러운 나선형계단을 휘청거리며 내려왔다. 어두컴컴한 성안의 계단들을 내려오며 그 옛날 이 성 속에서 벌어졌을 갖가지 음모와 비밀스런 로맨스를 상상해 보았다.
이 성은 1440년에 지어졌으며 메카티왕이 블래니스토운으로 만들었는데 높이가 9 feet나 되었으나 크롬웰의 대포에 맞아 망가졌다고 한다. 성에서 내려와서 근처의 Blarney Woollen Mills에서 간단히 각자 쇼핑을 했다. 울과 직물이 주종을 이루는 쇼핑 mill에는 Pub(선술집)도 함께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우리는 산을 넘어 케리읍의 중심지인 킬라니(Killarney)를 향해 달렸다. 오랜만에 우리는 캐롤라인의 목쉰 소리 대신 아일랜드의 민요를 들었다. 정현백 선생님이 mill에서 샀다는 Shamrock singers의 아일랜드 민요가 coach안에 울려 퍼지자 우리 모두는 아일랜드 정서에 흠뻑 빠져들었다.
Irish Soldier Laddie, 오 데니보이, 메기의 추억, Bold Donaghue, Fields of Athenry. 경쾌하면서도 애잔한, 귀에 익은 멜로디는 우리 일행에게 활력을 주었다. 손뼉도 치며 변화무쌍한 날씨속에 아일랜드 숲속을 달리면서 아일랜드를 깊이 느끼게 했다.
아일랜드 농촌
아일랜드는 길이 나쁘고 좁았다. 그래서 올해 대대적인 건설사업으로 도로확장과 도로포장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킬라니에 도착하여 우리는 킬라니 Heights 호텔에 들었다. 호텔이 매우 아름다웠다. 지은지 오래지 않은지 나무 냄새가 솔솔 났으며, 어릴 때 소꼽놀이하던 시절 꿈에 그리던 집같이 예쁜 호텔이었다.
예쁜 창가의 체크무늬 커텐과 같은 감으로 된 침대보, 창으로 내려다 보이는 꽃과 푸른 잔디로 덮인 정원……. 호텔에 준비된 포트를 꺼내 뜨거운 물을 끓여 홍차를 한잔 타 마시고 잠시 피로를 풀며 아름답고 평온한 정서에 젖었다.
저녁은 호텔에서 비프스테이크를 먹고 디저트로 요거트생과자를 먹었다. 이날 저녁은 호텔 안의 Pub에서 세 부부팀이 한데 모여 아일랜드가 자랑하는 기네스 흑맥주를 한잔씩 하며 담소하였다.
7월 4일 (일요일). 7-8-9.
Good morning! 아침밥은 아이리쉬 Breakfast를 즐겁게 든든하게 들었다. 짜지도 않고 맛있었다. 늙은 여군조교같은 가이드 캐롤라인도 조금씩 정들며 다소 이뻐 보이기 시작했다. 운전기사 죠지는 언제나 든든하고 신사같다. 킬라니 시내 관광에 나섰다.
오늘은 일요일에다 미국 독립기념일이기 때문에 가게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도심거리 곳곳에 미국 성조기가 주황색·흰색·녹색의 아일랜드 삼색기와 함께 펄럭이고 있었다.
아일랜드는 매우 미국 친화적인 나라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19C중반 아일랜드에 감자기근이 들었을 때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는데, 개중에는 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뒤에 안 일이지만 지금 현재 2억 미국인 가운데 아일랜드계 핏줄을 가진 사람이 4000명이나 된다니 그 이유를 알만했다. 또한 성씨 가운데 Mc', O'(例 : O'neill, O'cornor, Mc'Namara, Mc'donald)자가 앞머리에 붙은 이름은 대부분이 아일랜드 선조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또한 미국 대통령 가운데 아일랜드 선조를 가진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케네디, 닉슨, 레이건, 클린턴 등이며, 또한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은 많이들 옛조상의 고향인 아일랜드를 찾아 엄마의 품을 찾듯 관광온다고 한다.
시내는 꽃화분들을 곳곳에 집집마다 달아놓아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는데 늘 안개비(Drizzle)이 내리는 이곳에선 화분에 물 줄 필요도 없어서 저렇게 잘 자라는 것일까 하고 혼자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화분마다에 작고 검은 수도관이 이어져 있어서 시간마다 물을 주고 있었다.
Kerry지역은 정말이지 한시간에 4계절이 다 있었다. 큰 반도의 해안을 따라가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했다. 그곳은 영화 [라이언의 딸]을 촬영한 곳이라고 한다. 신숙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귀국하면 그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다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가는 길 좌우엔 땅에 검은 토탄이 많이 보였다. 왜 초지만 있고 밭이 조성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토탄 때문에 곡식이 잘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토탄은 또한 이 지방의 중요한 땔감이라고 한다. 몰아치는 바람속에 안개비가 뿌렸다.
고개위의 한 휴게소(Ring of Kerry)에 차가 정차했다. 많은 다른 나라 관광객과 함께 아이리쉬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그림엽서를 샀다. 아이리쉬커피는 커피+위스키+설탕으로 된 것으로 피로회복제이며 추위를 녹일 수 있는 안성맞춤의 위티였다. 한잔 마시고 알딸딸한 기분이 되었다.
사실 CCC멤버로서 여름여행을 여러번 했지만 여름에 내복을 입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춥고 비오고, 안개끼고, 흐리고. 이런 날씨 속에 아일랜드인 半이 이민가고 싶다고 하는 말은 진실일것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기후와 자연조건 속에서 Jonathan Swift, Oscar Wilde, George Bernard Shaw, William B. Yeats, Samuel Becket, James Joyce같은 유명한 문인들이 탄생하였을까? 이들은 정말 아일랜드가 낳은 가라성같은 문학가들이다.
그 역사 때문일까? BC 4C에 들어온 켈트족은 8C 바이킹의 침입을 받았고, 12C 노르만의 침입과 영국의 침입을 받았으며 그후 앵글로-노르만 지주들에게 착취당하였고, 또한 크롬웰의 강압정치를 받았으며, 종교적·문화적 박해를 받다가 19C초 대브리튼왕국에 완전병합되어 그이래 20C초 영국과의 전쟁으로 겨우 26개주(카운티)의 독립을 부여받고 1948년에야 결국 에이레 공화국을 선포하고 영연방에서 분리될 수 있었던 그 투쟁의 역사가 그들을 강인하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이 짖궂은 날씨와 척박한 토지에서 얻어진 강인함일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문학작품 속에는 고통받았던 역사와 기후가 다함께 녹아있는 것이리라. 아무튼 여러 가지 이같은 악조건이 훌륭한 문인을 배출한 것이라면 이들은 환경과 역사의 어려움을 문학으로 극복한 것일 거라고 느꼈다.
잠시 해가 드는 속에 우리는 아담하고 예쁜 스칼릭스 마을을 통과했다. 독립운동가의 동상도 보였는데, 이 마을엔 Pub이 150개나 있다고 하니 으시시한 날씨속에 그들도 Pub에 모여 담소라도 나누어야 삶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작은 마을엔 일요일이라 모두 성당에 모였는지 늘어선 자동차들이 성당 주변에 가득 보였다.
우리 일행은 스텔릭 해안가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고 점심식사를 했다. 나는 아일랜드 해안의 조약돌 3개를 기념으로 주워서 간수했다. 이곳은 챨리 채플린이 살았던 곳이라고 하는데 그의 코믹한 동상이 서 있었다. 우리도 웃으며 함께 팔장을 끼고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해안가
점심은 양고기스튜와 샐러드, 그리고 아이스크림이었다. 기네스(Guiness)맥주와 함께 먹으니 다소 먹을 만했다. 비교적 양호한 셈이었다.
다시 Coach를 타고 달렸다. 어느 해변가 언덕위에 도착하자 마치 폭풍 속 겨울비처럼 찬비와 바람이 휘몰아쳤다. 거기에는 일가족과 어린양을 데리고 나와 앉아 기타를 연주하는 농부가 있었다. 앞에는 동전이 모여 있었다. 일행중 한 분이 동전을 희사했다.
추웠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름도 모를 아일랜드의 두메산골을 달리며 오성 선생님이 산, 또다른 Irish love song을 들었다. 박토, 돌산, 흐리고 안개끼는 악천후, 푸른 들판에 풀을 뜯는 양들, 구절양장의 시골길, 애조띤 아이리쉬 멜로디는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며 우리들을 우울한 듯한 회상에 젖게 했다.
전체 음악의 분위기는 미국 칸츄리음악의 대가인 존 덴버의 칸츄리 송 같았다. 역시 미국의 칸츄리 송의 원류는 아일랜드일까? 지금도 나는 아일랜드에서 사온 Irish Folk Song CD를 내내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결국 우리는 경치가 좋아서 세계의 사진작가들이 모여든다는 Iveragh 페닌슐라를 한바퀴 돌아 오후 4시가 되어 다시 킬라니(Killarney)로 돌아온 셈이었다. 시내는 일요일 오후라 아침과는 달리 교통체증이 가증되었고, 킬라니 시내를 겨우 벗어나 고속도로를 타고 다음 지역 리메릭(Limerick)으로 향했다.
다소 차멀미를 느꼈지만 사실 한국인으로선 이 코스를 관광한 것은 처음일 것이라는 자부심을 느꼈다. 도중에 아데아 민속마을을 경유하였는데, 옛날 우리 나라 초가집과 꼭같은 집들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 지역 성당도 구경하였다. 때 맞추어 햇빛이 나고 푸른 하늘이 보였으며 자연은 거짓말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였다.
저녁 6시 부자도시 리머릭의 Ryan Hotel에 도착하였다. 샤논(Shanon)강변의 이 도시는 인구가 7만 7천이며 아일랜드의 세 번째 도시로 베이컨 산업과 전자산업이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호텔도 좋았고 포도주와 곁들인 갈비스테이크도 괜찮았으며 좀 짜긴 해도 옥수수당근스프와 파이 디저트도 괜찮은 셈이었다.
그러나 사실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저녁이었다. 호텔 도착후부터 단장님 내외분의 여행가방이 행방불명된 사건이었다. 저쪽 호텔에서 싣지 않은 것일까? 이쪽 호텔에서 짐이 바뀐 것일까? 아까 얼정거리던 아랍인들의 소행일까? 노심초사. 이 가방을 찾지 못한다면 나머지 우리의 여행은 먹구름이 가득 끼일 수 밖에 없는데…….
돈을 얼마씩 출연하여 팬티랑 내의를 사드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잠이 오기는커녕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렇다고 단장님 방에 전화를 걸어 볼 수도 없고... 재키 사장님과 오성 선생님 방에만 전화를 걸어봐도 못찾았다는 소식 밖에는 없다. 낭패, 낭패... 그런데 11시가 넘어 재키 사장님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가방을 찾았다고. 아이고 맙소사! 너무나 다행이었다. 저번 호텔의 방 넘버를 적은 쪽지가 가방에 계속 붙어 있어서 호텔 보이가 그 넘버의 방에 갖다 놓았다는 것이다. 결국 호텔방 전체를 다 뒤진 결과였다. 우리 일행은 그 이후 모두 다음 호텔로 갈 때마다 그전 호텔에서 붙인 딱지들을 부지런히 떼었다.
한밤중 새벽에 잠시 잠이 깨었다. 검푸른 하늘에 떠 있는 하얀 반달을 보았다. 아! 음력 스무하루 하현달이구나! 오랜만에 보는 달이다. 그런데 창문 벽쪽에 붙어 있는 라지에이터에선 따뜻한 훈기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7월에 난방된 방에서 자는 아일랜드! 신기한 그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7월 5일 (월요일). 7-8-9 .
참으로 오랜만에 맑게 갠 푸른 코발트빛 하늘을 보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잠이 깨었다. dry하고 맑은 날은 참 오랜 만이다. 상쾌한 아침 산보를 했다. 큰 나무들, 잘 다듬어진 잔디, 그 위에 파어난 희고 노란 작은 들꽃들, 조용한 아침 거리. 마치 천국같다.
오늘은 아일랜드 동부에 있는 더블린까지 몇시간을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아이리쉬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했다. 에니스(Ennis)에서 성당을 관람한 뒤 Scenic Route인 Gort → Galway로 달렸다. W. B. 예츠의 고향으로서 예츠 가문의 사람들이 산다는 Gort에서는 잠시 쉰 뒤, 계속 달려 겔웨이에 도착하여 한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감자 삶은 것과 스튜와 크림친 파이였다.
강가에서 연어낚는 모습도 보고 十자 모양의 특이한 내부를 가진 성당도 보았다. 햇빛이 빛나는 오늘같은 날은 공원이나 길거리 도처에서 웃옷을 벗은 아일랜드인이 일광욕을 즐겼다. 파라솔을 쓴 우리는 구경거리였다.
다시 차가 출발하면서 우리 일행은 CCC특유의 이동강연을 듣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신숙원 교수의 영문학사 강의는 그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내용도 매우 좋았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쵸서나 셰익스피어에서부터 시작하여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20세기 제임스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 버나드쇼의 비평에 이르기까지의 영문학사를 구슬꿰듯 줄줄이 이어나갔다.
그 다음으로 김영한 교수의 강의가 이어졌다. 중세의 피라밋사회와 공·후·백·자·남의 5등급 작위 및 귀족의 책임의식과 사명의식에 관한 내용이었다. 다음에 이어진 강의는 정현백 교수의 강의였다. 15∼16C까지 아시아 우위였는데 그 이후 왜 유럽이 더 발달하였는가? 유럽의 물질만이 그 관건이었는가? 전쟁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한 극도의 긴장과 대책 마련이 필요했고, 17C이후 야만적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 manner의 변화를 가져와 체통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이 내용들을 필자는 다 기억할 수도 없지만, 세 분 선생님이 갑자기 나오셔서 강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고 고마운 일이었다. 훌륭한 세분 교수의 강의 내용은 [비교문화] 제 7호에 실릴 예정이므로 다시 복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는 간단한 각자의 소개와 장기자랑이 이어졌다.
드블린 카테드랄
그러는 사이 어느덧 버스는 더블린(Dublin)에 도착하였고 영국의 유명한 체인 Hotel인 Forte Post House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여기서는 이틀간 묵을 것이기 때문에 빨래도 하고 다소 느긋한 밤을 지냈다.
7월 6일 (화). 6-7-8. 비교적 맑은 날씨.
오늘은 에이레 공화국의 수도로서 리피(Liffey)강변에 위치한 더불린city를 종일 관광하는 날이다. 아침 출근시간의 더블린시내는 사람도 차도 많았으며 복잡하고 교통체증이 심했다. 우리는 캐롤라인 대신 현지 가이드 딜과 만났으며 기사도 죠지에서 톰으로 바뀌었다.
현지인이 가이드한다는 것도 있었지만 노동법에 따라 캐롤라인과 죠지는 하루 쉰다는 명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딜은 비교적 목소리는 여성스러워서 캐롤라인보다는 나았다.
도시 더블린의 전체적 인상은 다소 어둡고 삭막한 느낌이었다. 발코니나 창가에 걸려있는 꽃도 훨씬 숫자가 적었다. 도시도 오래된 듯 침침한 색깔이었다. 시내를 한바퀴 돈 뒤 죠지안 공원에 들렀다.
공원의 한쪽바위 위에는 오스카와일드의 해학적이고 코믹한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1990년대 그의 손자가 세운 동상이라고 한다.
더블린은 오스카와일드 뿐만아니라 버나드쇼, W.B.예츠, J.죠이스 등 유명한 문인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며 많은 문인들이 이 도시에 살았다고 한다. 다음에 가본 곳은 성페트릭 성당이었고, 이어서 더블린 Castle에 갔다.
Drawing Room, Picture Gallery, The Appollo Room 등 1204년 John왕의 명으로 건립되었다는 이 성은 잔잔하고 소박하고 고상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더블린 성을 본 뒤 우리는 오랜만에 중국집에서 식사를 했다. 일행의 눈과 입은 생기가 돌았다. 새우케찹볶음, 송이볶음, 피망과 고기볶음, 죽순볶음, 옥수수계란 스프, 탕수육, 고추기름 등 우리 입맛에 꼭맞은 음식을 만나 모두들 열심히 먹었다.
잠시 쇼핑을 한 다음 우리는 National Museum에 갔다. 청동기 시대부터의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금으로 만든 장신구가 많아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음에 간곳은 국립미술관이었다.
국립미술관엔 좋은 그림이 아주 많았다. Caravaggio(1571∼1610)의 작품, Orazio Gentlileschi(1565∼1647)의 작품, Richard Doyle(1824∼1883)의 작품뿐만 아니라 특히 Paul Gauguin(1848∼1903)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Yeats Museum이 3월부터 함께 열리고 있었는데, Yeats가족 중 특히 죤 바틀러 예츠, 잭 바틀러 예츠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예츠가문의 예술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이후 신숙원 선생님, 김영한 선생님, 길희성 선생님 팀은 더블린 극장에서 매일 수없이도 많이 공연된다는 연극을 보기 위해 별도로 먼저 떠났다.
그 문제의 애비 티어터에서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나머지 일행은 1594년 엘리자베스여왕의 칙령으로 세워졌다는 유서 깊은 트리니티대학(일명 Dublin University)을 구경하였다.
그러나 시간도 늦었고, 관람료도 너무 비싸서 Colonnades도서관에 소장중인 세계 最古의 책중의 하나인 Book of Kells(AD800년으로 추정됨)는 보지 못했다.
일행은 일단 호텔로 돌아와 씻은 후 옷을 갈아입고 Fish전문점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타르타르소스에 생선을 찍어서 감자튀김과 함께 기네스 맥주를 마시니 아주 기분이 좋았다.
식당밖으로 나오니 8시가 되어도 훤했다. 우리는 이제 아일랜드의 마지막 도시 더블린에서는 꼭 한번 Pub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근처의 적당한 크기의 선술집인 Pub에 들어갔다.
각자 아이리쉬 coffee도 마시고 기네스맥주도 마시고 하면서 Pub에 앉아있는 아일랜드 사람과 담소하며 우리는 제법 흥겨워져 아일랜드 민요인 '아, 목동아'도 부르고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하면서 메기의 추억을 합창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며 우리 곁으로 모여 들었다. 드디어 오성 교수의 Korean 트롯풍 독창이 이어지고 우리들은 매우 신이 났다. 단장님께서는 오늘 밤 Pub에서의 술값을 흔쾌히 내셨다.
점점 손님이 더 많이 모여들고 생음악의 아일랜드 민요가 울려 퍼지며 분위기는 더욱 흔쾌해졌다. 영국소설에 그처럼 많이 등장하는 Pub이라는 것이 아, 이런 것이구나 실감했다.
10시가 넘어 나왔는데 아직도 리피 강변의 도시 더블린은 밝은 보라빛 황혼에 쌓여 있을 뿐 해가 다 지지 않고 있었다. 일행은 오코늘다리 근처에서 모두 모여 한 컷의 사진을 찍었다. 이제 더불린의 밤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신숙원 교수팀도 매우 뜻깊은 애비티어터에서의 연극공연에 심취한 모양이지만 우리팀쪽도 그 유명한 애비티어터에 못간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을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다.
7월 7일 (수요일). 흐림. 6-7-8 .
아침부터 부지런히 호텔을 떠나 영국 본토로 가기 위한 페리를 타기 위해 서둘렀다. 이번 배는 저번에 탔던 배보다 더 넓고 깨끗하고 손님도 많지 않고 한적하고 훨씬 좋았다.
우리는 각자 모여 앉아 서로서로 담소를 나누었다. 우리팀은 교육과 종교의 두 기둥이 다 부실한 우리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모두들 한마디씩 소감과 우려를 표명하였다.
아이리쉬 바다는 망망대해다. 바다구경하고 배안에서 연주하는 생음악도 들으며 기네스 맥주를 마시고 하는 사이 점심시간이 되어서 뷔페식사를 했다. 골라 먹는 메뉴라서 비교적 괜찮았다. 식사를 마친 뒤 coffee도 마시고 짐도 챙기고 하는 사이 어느새 엔젤쉬섬의 홀리헤드에 도착했다.
9시 30분에 탔는데 페리에서 내려 Bus가 출발할 때 시계를 보니 1시 20분. 저번보다는 조금 빠른 셈이어서 약 3시간 50분이 걸린 셈이다. 잠시 소변도 보고 약간의 쇼핑도 한 뒤 우리 버스는 부지런히 홀리헤드를 떠나 브리타니아 다리를 건너 본섬에 도착하여 북 웨일즈 지방으로 향했다
다시 콘위(Conwy)를 지나 잉글랜드의 Chester에 도착했다. 최강을 자랑하던 로마 20군단의 총사령부가 있었다는 이곳은 지금도 붉은색 사암으로 된 성벽이 구 시가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오랜 옛 시가는 조금도 파괴된 흔적이 없이 옛 경관을 그대로 보존시키면서 침착하고 아름다운 중세의 무드가 짙게 감돌고 있었다.
흰색과 검정의 조화로운 도시 건물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작은 古都 체스트! 정말이지 여기서 쉬며 꼭 하룻밤을 자고 싶었다. 멋진 도시다.
스티븐슨이 만든 기관차가 리버풀에서 맨체스터 사이를 처음으로 달렸다는 얘기, 그리고 산업혁명 이전의 장원의 구조에 대한 얘기를 듣는 가운데 볼콘(Bolcon)의 한 호텔에 도착했다. 재미있게도 호텔 입구에는 Macdonald Hotel ; The Last Drop Village & Hotel이란 간판이 붙어 있어서 으시시했으나 호텔은 매우 아름다웠다.
밝은 녹색톤의 체크무늬커텐, 양탄자, 소파등이 아기자기하고 아담하였다. 음식은 시원치 않았지만 저녁마다 선택의 고민을 안은채 점치듯 식사를 주문하였다.
오늘저녁은 우리 일행만이 모인 식당에서 긴 저녁시간을 가지면서 웃고 담소하며 즐거운 만찬을 가졌다.
7월 8일 (목요일). 맑음. 7-8-9
볼튼을 떠나 고속도로로 진입하면서 윈드메어, 그리스메어 등 호수 지역으로 향하였다. 우리는 지금 William Wordsworth의 고향 Lake District로 가고 있었다. 호수지역으로 들어서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아!!! 정말 아름다웠다.
I wonder lonely as clouds.
골짜기나 언덕위에 떠도는 안개
나혼자 방황하듯 걸어가면
눈의 띄는 한 무리의
황금빛으로 빛나는 수선화
물가 나무밑에서
미풍에 나부끼듯, 깃발을 흔드는 듯…
워즈워드는 여기서 태어나 이곳 우체국에서 일하기도하며 일생을 대부분 여기 이지방에서 지내며 자연에 대한 사랑을 시로 표현하였다. 이지역은 참으로 시가 저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을만큼 아름다웠다. 사실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워즈워드의 묘지에도 가보고 워즈워드가 살던 집 Dove Cottage에도 갔다. 그런데 점심도 굶고 소박한 그집 안 속속들이를 혼자 다녀온 신숙원 교수의 설명은 더욱 사실감이 넘치고 감동스러웠다.
여동생 도로시의 일기 이야기며 폐렴으로 죽은 두 아이의 이야기며 워즈워드가 쓰던 가방 이야기들은 신고전주의를 끝내고 낭만주의의 기점을 연 워즈워드를 우리 가슴 속에 생생히 남아 있게 하였다.
아름다운 호수가에 있는 그림같은 음식점에서 Pork stake를 먹었다. 음식맛 보다는 아름다운 호숫가 풍경에 우리는 심취될 뿐이었다.
스코트랜드 전통의상과 백파이프
다시 버스를 타고 우리는 잉글랜드 경계선을 넘어 스코틀랜드의 Moffat Wollens를 경유하였다. 어느새 버스속에서는 스코틀랜드 진입을 환영하는 백파이프 음악을 Tape로 틀어주었다.
회색과 흰색의 예쁜 집들이 펼쳐지고 스코틀랜드는 고원지대라 산세도 제법있고 초원과 녹색의 초지이외 전나무 숲이 끝없이 우거져 있었다. 이 지역이 윌리암 스코트가 쓴 아이반호의 작품배경지역이었을까?
우리는 드디어 대망의 에딘버러에 도착하여 Royal Scot호텔에 짐을 풀고 이틀 묵을 생각을 하고 다소 마음이 푸근해졌다.
오늘 저녁은 중국요리다. 중국요리도 맛있는데 거기에다 그 비싼 마오타이주를 신숙원 교수가 한턱 낸다는 것이었다.
에비티어터 관람과 도브 카티지 관람으로, 영미문학가로서의 최대의 현장학습을 할 수 있었다는 감동과 기쁨의 한턱이라고 했다.
우리는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다. 중국음식이 다소 모자란 듯하긴 했지만 오늘 하루는 퍽 좋은 날이었다.
7월 9일 (금요일) 맑음. 7:15-8:15-9 .
오늘은 전일 스코틀랜드의 정치·학술·문화의 중심지인 에딘버러 city를 관광하는 날이다. 가이드도 퀼트차림의 건장한 남자여서 분위기가 쇄신되었다. 우선 먼저 에딘버러 성에 도착하니 관광객들이 빽빽하였다. 9시 30분에서 11시 30분까지 각자 성 구석구석을 관람하기로 했다.
성 입구에는 예쁜 퀼트치마를 입은 젊은 가아드가 똑바른 자세로 서 있었다. 가까이 가서 웃겨 보아도 웃지 않았다.
에딘버러성
해발 140m의 작은 언덕(구릉)위에 솟아있는 성의 경관이 특이하게 아름답기도 하였는데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와 흡사하여 [북방의 아테네]라고 일컬어진다고 한다.
성위에서 시가지를 내려다 보는 경관도 좋았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곳곳을 돌아본 뒤 메리 여왕이 살던 Holywood House에 도착하여 들어가지는 못하고 입구에서 쳐다만 보며 그 성에 얽힌 옛 여왕의 아름답지 못한 애욕행각을 얘기들으며 오늘날 영국왕실의 여러 가지 일들을 떠올렸다.
성에서 내려오니 거리는 유명한 프린시스 스트리트를 경계로 북쪽의 신시가지와 남쪽의 구시가지로 구별되어져 있었다.
우선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는 5시까지 거리구경, Gallery구경, 쇼핑등을 위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각자 헤어져 몇몇씩 무리지어 프린시스 스트리트를 헤메며 우선 스코틀랜드 머플러를 몇 개씩 샀다.
거리는 관광객으로 미어터지고, 오늘따라 날씨는 더워서 29℃를 오르내리는데 물가는 비싸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Gallery로 갔다. 다소 조용하게 마음을 안정시키며 다리도 쉬고 그림 감상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에딘버러에서 제일 많이 한국 배낭여행학생들을 만났다. 모두 영국물가가 비싼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B&B(bed and breakfast)의 민박집에 자고 아무리 싼 요리를 사먹어도 하루에 우리돈 10만원이 더 든다고 한다. 영국은 정말 모든 것이 비쌌다. 음식값도 관람료도 택시값도 모두모두
비쌌다.
성(윈저성, 와윅성 등)을 한번 관람하는데 근 10파운드라니 우리돈으로 2만원에 가깝다. 참으로 조상덕을 톡톡히 보는 사람들이다. 성(Castle) 하나만으로도 먹고 사는 도시같다.
국립미술관을 나와서 프린시스 스트리트를 거닐며 다소 거리구경도 하며 우리가 만날 장소로 향했다. 거리 한가운데는 윌리암 스코트의 모뉴먼트에 "The most writer of the day" 라는 플래카드가 길게 늘어뜨려져 있었다.
에딘버러라는 도시는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캐롤라인은 아주 고풍창연하였다. 저녁식사는 미리 우리를 다시 버스에 태워 전망이 아주 좋은 Calton Hill로 데리고 가서 넬슨 기념탑도 보여주고 황혼녘의 에딘버러의 경치를 볼 수 있게 배려했다.
7월 10일 (토요일). 흐림. 6-7-8.
아침 일찍 안개속의 에딘버러 거리를 돌아 떠나면서, 항상 머리속에 상상하던 그대로의 안개낀 영국도시의 모습이 재연되는 것 같았다. 그 유명한 에딘버러를 우리는 안개속에서 떠났다.
아름다운 스코틀랜드의 변방길을 따라 일글랜드 쪽으로 이동하던 도중 폐허가 된 제드버그 수도원에 들렀다. Jedburgh Abby는 1150∼1250년에 걸쳐 세워진 것인데 그 양식은 로마네스크식과 Norman식을 함께 혼합한 매우 장대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폐허가 된 수도원에서 신숙원교수와 함께
16C 영국에 의해 파괴된 채 큰 골격만 남긴 그 모습 그대로도 아름답고 신비하고 장엄하였다. 입구에 들어 가면서 들려오던 장엄한 미사곡과 함께 어울려 폐허가 된 수도원은 영국에서 본 것 중 최고였으며 가장 아름답고 좋았다. 오래오래 있고 싶었다.
헨리 8세를 거쳐 엘리자베스 1세 여왕대에 이르러 성공회를 강력하게 통일시킨 후 결혼지연 정책을 쓰면서까지 영국을 부강하게 만든 훌륭한 여왕의 정략과 책략에 관한 얘기를 김영환 교수로부터 듣는 동안 버스는 뉴캐슬을 통과하고 있었다. 멀리로 보이는 뉴캐슬은 다른 도시와는 달리 고층아파트도 보였다.
우리 일행은 하드리안 Wall을 보기 위해 캐롤라인과 몇번이나 실갱이를 하였으나 결국 놓쳐버리고 보지 못한채 더램(DuRham)에 도착하였다. Hadrian's Wall은 카알라일(Carlisle) 서쪽에 있는 보우네스 해안으로부터 브리튼 섬을 횡단, 동쪽의 벽끝까지 全長 약 123km에 미치는 古城壁으로 영국의 만리장성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그 규모는 높이 5m 남짓한데다 너비 2m반의 석조방벽(防壁)으로 122년에 시작하여 128년에 완성을 본 것이라 한다. 당시는 1마일마다 감시소가 설치되고 각 감시소의 중간에는 두 개의 소감시소를두었고 모두 15개의 대요새가 건축되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카알라일 동방 약 30km 지역에 있는 그리인해드 부근뿐이라 한다.
고속도로에는 상당히 차가 많았다. 점심은 조용한 작은 마을 Newton Hall에서 닭고기 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은 뒤 일행은 더램 카테드랄로 갔다. 13∼14C의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의 900년된 성당은 매우 아름다웠다. 이 대성당은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Castle에서는 토요일이라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결혼식도 있었고 광부들의 예배도 있었고 토요일 교회행사도 있었다. 우리는 여러 행사들을 구경한 후 York로 이동하였다.
우선 요크시내에 있는 대성당 요오크민스터를 관람했다. 627년 목조로 세운 교회가 그 시초였는데 13세기부터 대주교에 의해 본격적으로 건축이 시작되어 15C에 완성된 교회로서 현존하는 중세 건축의 성공회 교회로서는 영국에서 가장 큰것이라고 한다.
요오크 사원
특히 120여개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매우 유명한 것으로 남쪽 입구에서 본 의 아름다움은 실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아름다운 요크 Minster를 구경한 뒤 일행은 Forte Post House Hotel에 짐을 풀고는 동네 Pub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다소는 야외복풍의 옷들로 갈아입고 버스를 탔다.
저녁노을에 아름다운 푸른 들판을 보면서 제법 피로하긴 했지만 Pub에서 즐길 저녁시간을 기대하며 즐거워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