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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

김호진 |2008.05.13 14:35
조회 209 |추천 0

 

 

 

사람이 살아있을 때와 죽었을때를 비교한 사진.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도서 12:1)

 


여러분들이 지금 이 시간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아마 한 번도 창조자를 생각하지 않고 지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해야 합니다.

젊을 때는 희망이 있고 용기와 패기도 있지만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이도 다 빠져 버리고 기력도 없는 사람은 낙이 없습니다.

음식이 맛이 있습니까.

좋은 데 가도, 신나는 음악이 즐겁게 들리기를 합니까?

마음이 곤고하고 아무 낙이 없는 노년에 이르기 전에, 젊을 때 창조주를 기억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보십시오.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도서 12:2)

 


태초 이래로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진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노인네들은 가끔씩 “얘, 오늘 날이 왜 이렇게 침침하냐”라고 말합니다. 눈이 어두워져 잘 안 보이는데도 태양과 별이 좀 침침해진 것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라는 말은 그것을 제대로 식별 못하는 나이가 되기 전이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3절 보겠습니다.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전도서 12:3)

 


제가 처음에 사람이란 흙으로 만들어진 흙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흙집에는 창문, 굴뚝, 식당, 화장실 등이 다 있습니다.

성경에 곤고한 날이 이르면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집 지키는 자가 무엇입니까? 나이가 많으면 이 흙집을 지키는 자가 떤다고 했는데 무슨 말입니까?

 

두 손이 집 관리인입니다. 지붕도 만지고 식당 청소도 해 주고 어디 아프면 붕대도 발라주고 목욕도 시켜줍니다. 이 두 손이 집 지키는 자입니다. 나이가 많으면 왜 손이 떨릴까요? 혈관이 막혀서 피가 모세혈관까지 못 가기 때문에 손이 떨리는 수전증에 걸리는 것입니다. 곤고한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떤다고 했습니다. 손이 떨리는 것입니다. 그 다

음 보겠습니다.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사람의 힘은 허리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늙으면 허리가 이렇게 굽게 됩니다.

 

“맷돌질하는 자들(치아)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눈은 마음의 창이니까 눈을 가리킵니다.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이건 귀입니다. 오고 가는 모든 소식을 들었던 문이 딱 닫혀 버리니까 귀가 막히는 겁니다. 귀가 먹은 것입니다.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이가 빠져 버리면 잇몸으로 씹어야 되니까 맷돌 소리가 안 납니다.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나이가 많으면 잠도 없어집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앉아 있습니다. 창가에 새 울 때부터 잠에서 깨어난 노인네들이 아랫사람들이 하루 종일 일하고 늦게 일어나면 “젊은 게 무슨 잠이 그렇게 많은가” 하고 잔소리합니다.

 

“음악 하는 여자들(우렁차고 아름다운 목소리)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나이가 많으면 감나무에 감 따러 올라갈 수 있습니까? 나이 많으면 높은 데 못 올라갑니다. 귀가 먹기 시작하면 중심을 못 잡습니다. 걸어갈 때도 기우뚱 기우뚱합니다. 그런 사람이 감나무에 어떻게 올라가겠습니까?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합니다. 또 길에서도 놀랍니다. 길 건너다니는 것도 두렵다는 뜻입니다.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머리에 백발이 덮이는 것입니다. 하얗게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나이 들면 무게를 잘 이기지 못하므로 길을 걸어갈 때 “눈썹도 빼 두고 가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기력이 떨어지니까 입은 옷도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러니 작은 메뚜기도 짐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욕이 그치리니”

 

그 왕성하던 정욕도 다 쇠퇴해져 버립니다.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사람 속에 진짜 자기가 산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니 왔던 곳이 있습니다. 분명히 어딘가 내 영혼이 출발한 곳이 있습니다.

영혼은 죽는 게 아닙니다. 영혼은 불멸입니다.

 영혼이 몸 속에 있다가 자기 왔던 곳으로, 영원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자기 고향 땅 아랫목에 누워 있어도 “내 고향 남쪽바다”하고 노래 부르면 영혼은 어딘가 멀리 가고 싶습니다.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본능을 일으킬 때 우리는 집에 못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집을 스르륵 나와 어디론가 걸어가 봅니다. 밖에 나와 있으면 또 집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마음은 정처가 없이 방황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죽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영혼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을 봅시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린도후서 5:1)

 


이 육신의 흙집이 무너지면 영혼이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가끔 괴롭고 답답할 때 ‘죽어버리자.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괴로워할 것도 없고 남의 빚 갚을 것도 없으니 죽어버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죽으면 괴로움이 더 심합니다. 괴로움은 육신이 느끼는 게 아닙니다. 이 속에 살고 있는 영혼이 느끼는데 영혼은 안 죽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 큰 괴로움의 도피처라고 생각하지만 죽어도 여전히 괴롭습니다. 절대로 죽음이 괴로움의 도피처가 될 수 없습니다.

 

 

손영수의 "주여 내가 믿나이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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