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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버스예찬

강성진 |2008.05.19 01:59
조회 33 |추천 0

20080518 0151i "버스예찬"


 


서울에서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행하였는데- 그 중에서 버스에 대한 재미를 붙인 건 참 흥미로운 일이다. 난 버스가 참 좋다. 막히고 밀릴 일 없고, 한번 들어가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지하철에 비해 효율성 면에서 한없이 떨어지는 버스이지만, 이왕이면, 이용할 수 있다면 버스를 타고 가고자 하는 버스 예찬자이다.


지하철은 버스와 더불어 대중교통수단의 양대산맥이지만, 효율적인 사용에 있어서 버스와 비교할 수 없는 첨단 수단이다. 인식하지 못하고 살지만, 지하철은 매 분단위로 정확하게 역을 지나는 시각이 정해져있다. 그러나 버스는 아니다. 정말이지 어떨때는 30분, 또 어떨때는 50분, 심할때는 1시간 반. 그게 버스다. 일단 서울 도로 교통이 막힐것이라는 기본 전제를 무조건 깔고 봐야하기 때문에 빠듯한 약속 장소를 위해 버스를 이용한다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지하철은 노선도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원하는데로 갈 수 있지만, 버스는 익숙한 노선 외에는 이용하기가 힘들다. 파란버스 빨간버스 초록버스, 마을버스, 노란버스까지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정류장도 천차만별, 심지어 몇 미터 간격을 두고 같은 종류의 버스들이 다른 정류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버스가 좋다. 지하철에 비해 떨어지는 효율성에 반하여 지하철이 따라 올 수 없는 것은 바로 밖이 보이는 창문때문이다. 물론 지하철도 구간에 따라서 지상으로 다니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버스 자체의 본질적 성격에는 따라올 수 없다. 버스를 타면 언제나 그것은 여행이다. 다 똑같은 모습의 서울 하늘 아래라지만, 분명한 건 어느곳이나 같은 모습은 없다. 비슷할 뿐. 그러나 그 비슷함에서 오는 차이가 있어 시내버스도 여행이 된다.


비록 지상을 다니는 지하철이라 하더라도 버스만큼 진짜 우리 생활 속으로 지나가며 그곳의 풍경과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진 못한다. 버스는 때로는 강남대로를 지나가기도 하고, 서울역 앞을, 동대문 앞을, 노량진 학원가를 지나간다. 어느 곳을 어느 시간에 어느 계절에 어느 상황에 지나가느냐에 따라서 창 밖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모두들 출퇴근하기 바쁜 직장 밀집 지역의 모습을 볼 수도 있고, 동대문 앞의 수 많은 오토바이와 상인들의 쉴새없는 움직임, 노량진 학원가의 때로는 암담한 분위기, 그러나 곧 그것은 희망, 정신없이 휘몰아 치는 거리의 네온사인, 종로에서부터 이어지는 각양각색 초 고층 빌등들, 여명이 밝기 전 누구보다도 아침해를 기다리는 부지런한 움직임, 풋풋한 학생들의 잠이 가시지 않은 등교길, 거나하게 한잔 하고 기분좋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혹은 사람을 마신 술로 온 세상을 호령하거나, 심지어는 서울 전체를 침실삼기도, 또 때로는 울분이 가득 찬 시위나 문화제의 현장, 이런저런 행사들, 우두커니 경계근무 중인 전경대원들의 모습, 도로나 건물 공사하고 있는 모습, 사고가 난 모습, 장난치는 아이들, 두손 꼭 잡은 연인들 등..등..등..


이게 사람 사는 세상, 이 세상을 보는 창인것이다. 별 것도 아니다. 그냥 흔하디 흔한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들, 또 때로는 독특한 모습. 정말이지 끝도 없는 그냥 우리네의 삶을 버스를 통해 볼 수 있다. 비록 서울이라는 제한된 지역을 다니는 '시내버스'를 얘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저러한 모습을 통해 지역의 특색, 현실의 상황을 인식하는데는 충분하다.


'창'이라는 것이 외부와의 소통의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지하로 다니는 지하철의 창은 전혀 의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실내의 모습을 다시 비추어 창 밖에 형상화 시킨다. 밖을 내다보아도 다시 안을 보는 역설적이고 답답한 창의 역할이다.


지하철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없지 않아서 한 버스 안에 있는 이들에게 괜시리 연대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특히 반복되는 싸이클에 의해 매번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는 이들은 분명 낯이 익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버스에서 살짝 드는 알토란 같은 잠은 참 맛깔난다. 부족한 잠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하는 그 순간이나, 아니면 반대로 게으름을 울부짖으며 느즈막히 일어나야 하는 그 순간보다도 더 일어나기 싫고 깨기 싫은 잠이 버스에서 창문에 기대어 자는 잠이다. 정말이지 지하철 2호선 마냥 순환한다면 그냥 내 잠이 아쉽지 않을 때까지 푹 자고싶을때도 있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비좁은 곳에서 자는 그 잠이 왜그리 맛있는지, 특히나 피곤한 하루를 기분좋을 만큼의 술 한잔으로 마친 뒤 대략 한시간 전 후로 타고 오는 버스에서 의외로 깊이 잠이 드는 오늘과 같은 날은 더욱 나를 강렬한 버스 예찬론자로 만든다.

 

버스 예찬론자로써 가장 좋은 좌석을 이미 오래전부터 파악하고 그 자리에 앉기를 매번 정류장에서 저만치 오고 있는 버스를 바라보며 기대하고 있던 바. 버스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맨 뒤 긴 좌석 바로 앞의 좌석이다.

 

얌체같은 생각이지만 뒤로 갈수록 자리 양보에 대한 부담감이 감소되고 그것은 맨 뒤칸 양쪽 창문가에 이르러서는 절대안정의 신성터이다. 그러나 그 바로 앞의 좌석이 더 훌륭한 이유는 맨 뒤의 안정성 만큼을 유지할 수 있으며 다리를 놓는데 편하다는 점이다.

 

일단 자리 차지 안정성에서 떨어지는 앞쪽 좌석은 접어두고, 내리는 문 기준으로 뒷자리를 보면, 일단 내리는 문 바로 뒷자리는 다리 위치는 편안하나 자리 차지 안정성이 거의 앞쪽 1인좌석과 다름없이 낮다. 그 뒷자리는 서서 가는것 만큼은 아니겠으나 굉장히 불편한 자리다. 버스의 바퀴가 있다는 특성상 의자 바로 밑 부분이 올라와 있어 다리를 상당히 접어 둔 채로 불편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는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피곤한 자리이며 창쪽에 있다가 통로쪽 사람보다 먼저 내릴 경우는 체육시간 못지 않은 번거로움이 있다.


이제 남은 맨 뒤쪽 자리와 그 바로 앞 자리를 비교해보면, 자리 차지 안정성은 거의 같다고 보겠으나 맨 뒤쪽 긴 좌석은 상당히 높은 턱 위에 있어 다리 처리가 그 앞좌석의 경우보다 불편하기 때문에, 버스 내 가장 좋은 자리가 바로 맨 뒤 바로 앞의 좌석이 되겠다.


이렇게 저렇게 하는 이유로 버스를 참 좋아한다. 비록 정해진 시간약속에 빠듯할 때라면, 도로교통 상황에 따른 시간의 비정확성과 생소한 곳에서의 노선 파악이 거의 힘들다는 점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끝내고 돌아오는 여유로운 길에서는 주로 버스를 탄다. 때로는 버스 안에서 틀어주는 허무맹랑한 라디오 마저도 집중해서 듣기도 하며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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